경주시민 여러분, 여러분은 경주의 미래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공공기관이 추가 이전되고 인구가 유입되면 쇠퇴하던 도심이 활력을 되찾을 수 있을까요? 아니면 지금의 추세가 이어질까요? 물론 미래에 대해서 알고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다만, 미래를 만들어가기 위한 도전과 시도는 많습니다. 지금도 시청과 관계기관, 그리고 주민들 모두 우리 경주의 밝은 미래를 위해 열심히 노력하고 있다는 점을 먼저 말씀드립니다.
제가 이번에 제안하고자 하는 것은 좀 더 과감한 시도에 관한 것입니다. 아마 이 시도가 실현되기 위해서는 넘어야 할 산이 많을 것입니다. 현실을 너무 모르는 말도 안 되는 상상이라고 치부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 상상을 하면 기분이 좋아집니다. 그럼 제 머릿속 아이디어에 대해서 말씀드릴게요. 먼저 고도 제한의 틀에서 벗어나는 것입니다. 고도 제한으로 높은 건물을 지을 수 없으니 기존 건물을 다시 지으려 해도 경제성도 없고 여러 가지 한계가 있었겠죠. 하지만 수직 방향이 아닌 수평적인 폭을 넓히는 것을 생각해보십시오. 사실 서울을 비롯한 대도시의 쇼핑몰은 높이보다 수평적 이동이 많습니다. 유모차를 끌고 다니는 가족뿐 아니라 사람들은 대부분 위아래로 엘리베이터를 타는 수직이동을 최소화하는 것을 선호하거든요. 폐역된 경주역사 부지는 바로 이 수평적 공간을 만들 기회의 땅입니다. 높은 빌딩 몇 개보다 옆으로 이어진 수평적 이동에 최적화된 복합공간이 되길 바랍니다. 그리고 필요하다면 경관을 해치지 않는 범위에서 시내에 높은 건물도 랜드마크로 고려해볼 수 있습니다.
황룡사 목탑은 9층이나 됩니다. 목탑을 복원한다고 하는데 고도 제한을 걸 것은 아니잖아요? 그리고 건물을 새로 지을 때 지하에 묻힌 유적들은 어떻게 할까요? 서울 종로의 공평동에는 이와 관련된 사례가 있습니다.
이 지역은 재개발을 위해 발굴을 시행하였는데, 조선시대의 집터와 길의 흔적이 선명하게 나왔습니다. 유적을 보전하자니 위에 건물을 지을 수 없고, 그렇다고 건물을 짓지 않을 수도 없어 생각해낸 방법은 건물 지하에 옛 조선시대 도시의 유적을 그대로 구현하는 것이었습니다. 서울 종로에 가실 일이 있으면 조선의 폼페이라 불리는 종로의 공평도시유적전시관을 다녀오시는 것을 추천합니다. 물론 그 위에 올라간 높은 빌딩이 경주에 어울릴지는 모르겠네요.
다음으로 경주역사에서 중앙시장까지의 길을 완전 보행자전용도로로 만드는 것을 제안합니다. 물론 비상시 응급 차량의 통행은 가능하게 해야겠죠. 보행자 전용공간이 되니 우리 아이들이 길을 건널 때 차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경주역사 부지에는 멋진 랜드마크가 복합문화공간으로 사람들을 불러 모으고, 도시재생으로 재정비된 시장과 아기자기한 상점, 그리고 경주읍성과 안쪽 동네가 들려주는 조선시대 이야기들로 활기찬 곳이 될 것 같습니다. 그리고 보행 전용공간이니 보도와 도로의 높낮이가 없어지게 되니 당연히 휠체어나 유모차가 다니기 쉬운 곳이 되겠죠?
지금까지가 제가 지면을 통해 늘 말씀드린 보행 중심의 도시입니다. 하지만 보행자 공간으로 만드는 것까지는 좋은데 문제가 있습니다. 그동안 이곳을 지나던 차는 어디로 다닐까요? 그리고 내부로 차가 다니지 않으면 가게의 물건은 어떻게 싣고 내릴 수 있을까요? 경주 중심부를 오기 위해서는 외곽에 주차 공간을 만들고 내부로 이동하는 것은 지능형 이동 수단(스마트 모빌리티)을 이용하는 것입니다. 짐이 있다고요? 짐을 싣고 원하는 곳으로 옮겨줄 화물 로봇도 대기하고 있으니 걱정하지 마십시오. 유럽의 스마트시티 탈린에서는 이미 이 로봇이 도시를 활보하고 있습니다. 가게에 내릴 상품과 식자재는 보행 전용 도로 이면도로로 정해진 시간대에 배송될 수 있도록 하면 됩니다. 차가 없으면 공기도 더 맑아지고 탄소배출도 줄어들고 걸어 다니니 건강에도 좋습니다.
지금까지는 필자의 행복한 상상이었습니다. 어떠신가요. 불가능해 보이는 일 같은가요? 하지만 지금까지 말씀드린 내용들은 모두 실현된 사례가 있습니다. 심지어 대도시도 아니고 우리 경주와 비슷한 환경과 여건을 가진 곳에서요. 상상만 하고 시도하지 않으면 혁신은 어렵습니다. 같이 상상하고 만들어갑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