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경전(集慶殿)은 태조 이성계의 초상화를 봉안한 전각을 뜻하며, 임금의 초상을 모신 공간은 시대의 변천에 따라 어용전(御容殿)․수용전(晬容殿)․태조진전(太祖眞殿)․집경전(集慶殿) 등으로 불렸다.
『연려실기술』을 보면, 태조의 어진을 모두 5개 장소에 봉안하였으니, 송경(松京)의 목청전(穆淸殿), 서경(西京) 평양의 영숭전(永崇殿), 동경 경주의 집경전(集慶殿), 영흥의 준원전(濬源殿), 전주의 경기전(慶基殿)이다. 사가 서거정(1420~1488)의「경주부객관중신기(慶州府客館重新記)」를 보면, 세종 때에 태조의 영정을 집경전(集慶殿)에 안치하였다고 전한다.
몇 해 전만 하더라도 경주읍성 내 경주여자중학교 자리에는 집경전 터와 비석 그리고 하마비 및 여러 석물이 산재하였다. 비석에는 [崇禎紀元後三戊午四月日立]이라 각석되어 1798년 4월에 세워졌음을 알 수 있고, 하마비(下馬碑)에는 [대소인원하마(大小人員下馬)] 지위와 상관없이 모두 말에서 내리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다.
[경주읍성전도] 그리고 [집경전구기도]를 통해 그 위치와 규모를 상상할 수 있지만, 실제 세종년간의 집경전 원형은 알 길이 없는 실정이며, 경주에 집경전이 설립된 배경은 아마도 역대 왕조의 도읍이었던 평양․개성․경주 등의 이점이 작용한 듯 보인다.
집경전에 관한 기록은 [조선왕조실록]․[동국여지승람]․[동경잡기]․[동경통지] 등 여러 문헌에 등장하지만 조선후기의 기록이 지배적이며, 경주읍성의 객관 북쪽에 위치하였다는 것이 정론이다. 태조 7년(1398) 3월에 판삼사사(判三司事) 설장수(偰長壽,1341~1399)를 보내어 임금의 진영(眞影)을 계림부에 봉안하였다. 임금이 유후사(留後司)에서 형조전서 이귀령(李貴齡,1346~1439) 등에게 명하여 일을 보게 하였다.
태종 12년(1412) 11월에 계림의 어용전을 태조진전이라 고쳐 불렀다. 세종 24년(1442) 6월에 경주의 영전에 집경전 칭호를 내리고 각기 전직 2인을 두게 하고, 세종 25년(1443) 11월에 의성군(誼城君) 용(容)을 보내 태조의 수용(晬容:초상)을 경주 집경전에 봉안하게 하였다. 성종 25년(1494) 3월에 집경전 전사청(典祀廳)에 화재가 발생하였고, 임금의 초상을 관리하는 방식을 궁리하였으며, 이후 임진왜란에 강릉으로 옮겨 보관하였다고 전한다. 청허재(淸虛齋) 손엽(孫曄,1544~1600)의 「용사일기(龍蛇日記)」를 보면, 8월 2일 참봉 지헌(芝軒) 정사성(鄭士誠,1545~1607)과 함께 집경전에 모신 강헌대왕의 수용[초상]을 수운정에 임시로 봉안하였다(同參奉鄭士誠 權奉集慶殿康獻大王晬容于水雲亭). 8월 4일 수용을 모시고 예안으로 향하였다(陪晬容 向禮安). 8월 5일 죽장에서 묵었다(宿竹長). 8월 7일 봉사 이영도(자 성여) 서당에 도착해 오른쪽 방에 봉안하였다(到李奉事聖與詠道 書堂 奉安于西室). 이후 8월 14일 다시 수운정으로 돌아와 전투에 참가하였다고 전한다. 왜놈이 쳐들어와 경주부가 위태해지고 태조의 수용 역시 화를 당할 지경에 처하자 참봉과 부윤 등은 이를 안전한 곳으로 옮기는 조치를 취하였다.
이후 강릉의 집경전도 화재가 발생해 영흥의 준원전 영정을 모사하여 다시 강릉에 봉안하였고, 임란 이후 경주를 떠난 태조의 수용 역시 고초를 겪는다. 이때 이후부터 경주의 집경전은 건물이 소실되고 기능이 상실되어 공허한 적막감을 안고 경주읍성의 한 곳에서 지금도 쓸쓸히 세월을 감내하고 있다. 정조 20년(1796) 11월에 집경전의 옛터에 문소전(文昭殿)의 예대로 비석을 세워 기록하라고 명하고, 1798년 4월에 집경전의 비각 건립을 감독한 경주부윤 류강(柳焵.재임기간 1797.07~1798.06)에게 표피(豹皮)를 내려주고, 장교와 공장(工匠) 등에게 차등 있게 시상하라고 명하였으며, 11월에 비각을 완성하였다. 미뤄보면 집경전은 태조년간에 임금의 초상[어진(御眞)]을 모셨고, 세종년간에 집경전이 개수되었으며, 임진왜란 이후 양좌동 수운정과 예안을 거쳐 강릉으로 옮겨진 역사적 사실은 경주시민들도 알아야 할 문화상식으로 판단된다. 황량(荒涼)히 돌구조물만 남은 지금의 집경전 터에는 근거 없는 이야기만 무성할 뿐 태조의 초상화는 여전히 경주에 남아 있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