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을 키우면서, 교육에 대한 관심이 많은 엄마들을 만났다. 나 역시 아이들 교육에 관한 많은 공부를 했고, 고민을 거듭하고 생각했다. 조카들을 키울 때부터 시작된 고민은 엄마가 되면서 점차 깊어졌고 절박해졌다. 많은 책과 강연, 자료들을 찾아다니며 오랜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내린 나의 결론은 잘 놀아야 한다는 것이다. 아줌마의 결론이 생뚱맞은가? 미래사회에 꼭 필요한 창의성과 융합, 공감 능력은 사람(친구)들과 만나고 놀면서 생기는 것이다. 그래서 아이들이 사람들과 밖에서 자유롭게 뛰놀 기회를 만들어주려고 노력한다. 스마트 게임도 놀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놀이의 개념을 어디에 두느냐의 문제일 것이다. 그러나 아줌마는 생각한다.‘혼자 노는 게 노는 건가?’ 가슴 아픈 일이 일어났다. 할로윈의 기쁨을 만끽하려 이태원을 방문했던 많은 젊은 친구들이 어이없게도 생을 마감한 일이었다. 십대의 젊음을 오롯이 책상 위에서만 보내는 것을 추구하던 삶에서 20대가 되었을 때 마음껏 자유를 만끽하고 싶었을 것이다. 오래전, 나 역시 대입을 마쳤더니 어느 날 갑자기 20대가 되어버린 나이에 억울했던 기억이 난다. 그래서 대학 신입생 때 즐겁게 놀고 싶었다. 그러나 놀 줄도 모르고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 지 막막했던 기억이 난다. 이태원의 젊은 친구들 역시 그 놀거리의 목마름으로 갔던 것은 아닐까? 우리 아이들은 어떤가? 맞벌이 부부라서 돌봄 공백으로 인해 학원으로 시간 돌려막기를 하는 아이들이 있는가 하면, 엄마의 불안감으로 인해 초등학교 저학년부터 학원을 몇 개씩 다니고, 놀 시간은커녕 잘 시간이 부족한 아이들도 있다. 놀이터에는 아이들이 있어야 한다! 놀이는 창의적이다. 아이들이 무(無)에서 유(有)를 만들어내는 것을 가장 쉽게 발견할 수 있는 것이 놀이기도 하다. 어른은 최소한의 안전지킴이로 옆에 있어 주기만 하면 된다. 간혹 놀이터에서도 스마트폰을 갖고 게임을 하며 미끄럼틀을 장악하는 아이들도 있다. 그러면 아줌마는 한소리한다. ‘놀이터에서는 몸을 쓰고 놀자, 하고 싶지 않으면 의자에 앉아서 하면 좋겠다. 이곳은 다른 친구들이 놀아야 하는 곳이니까’ 물론 요즘 같은 세상에 다른 집 아이에게 말하는 것이 썩 내키는 일은 아니다. 그러나 아줌마는 믿는다. 아이는 혼자 키우는 것이 아니라 마을이 같이, 어른들이 같이 키워야 하는 것이라고. 그래서 나는 한소리하는 아줌마로 살아간다. 또 그렇게 살다보니 쭈뼛쭈뼛하던 아이들도 선뜻 먼저 내게 인사를 건네고, 미끄럼틀 터널 위를 위험하게 올라갔던 아이들도 아줌마가 나타나면 슬그머니 내려온다. 자전거를 위험하게 타는 아이들을 혀를 차며 못마땅하게 보던 다른 어른들도 이제는 아이들을 불러 조용히 타이르신다. 처음에는 남의 집 아이에게 괜히 한소리했다가 얼굴 붉히는 일이 있을까 주저하셨지만 아줌마의 오지랖이 여기저기 생긴 것이다. 그래서 어른들이 놀이터에 나타나면 아이들은 위험한 행동을 주저한다. 아이들은 놀이터에서 처음에는 기구를 이용해서 단순히 놀다가 아이들이 모이면 서로가 함께 할 수 있는 게임을 만들어낸다. 한 어린아이가 울면서 소동이 일어나면 그 아이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 고민하고, 어린아이들이 있을 때는 아이들이 같이 놀 수 있는 게임을 한다든가, 돌아가면서 동생들을 따로 놀게끔 유도하는 역할을 맡는 아이를 정하기도 한다. 이렇게 아이들은 놀이터에서 노는 것뿐만 아니라 창의적으로 두뇌를 쓰며 문제를 인지하고 해결점을 모색하고 약한 아이를 배려하는 것까지, 결코 책상 위에서 배울 수 없는 것들을 배우고 발전시켜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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