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웠다, “고품격 서평처럼 쓰지 마시고요. 좀 쉽게 써주세요” 이 말을 듣기 전까지는. 근데 어려운 숙제였다. 쉽고 재미있게 쓰는 일이 이렇게 어려울 줄이야. 기억을 떠올려보았다. 처음부터 책을 읽는 일이 즐거웠던 일은 아니었던 것 같다. 본격적인 시작은 초등학교 2학년쯤이었나보다. 여름 방학이라 공부는 뒷전이고 마을 개울가에서 노느라 얼굴 색깔은 까마귀와 비슷한 시절이었다. 그날도 아침부터 멱감을 요량으로 보리밥을 미어터지게 넣고 있을 때였다. 아버지께서 아침 먹었거든 같이 나가자며 나를 자전거 뒤에 태우고 학교로 갔다.   국민학교에서 근무하셨던지라 학교 도서관에 나를 내려주시며 집에 갈 때까지 책 한 권이라도 읽고 그 내용을 들려줘야 한다는 임무를 부여받고 고른 책이 앙드레 모로아의 ‘뚱보 나라 키다리 나라’였다. ‘어깨동무’, ‘소년중앙’, ‘새소년’같은 어린이 잡지, 그것도 만화로 된 별책 부록밖에 관심이 없었던 나에게 ‘뚱보 나라 키다리 나라’는 거의 글뿐인 책도 재미있을 수 있다는 사실을 일깨워 주었다. 재미있었다. 아버지와 함께 소풍을 갔다가 우연히 바위 구멍으로 이어지는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지하 세계인 뚱보 나라와 키다리 나라를 방문하게 되며 겪는 뚱뚱한 형 에드몽과 날씬한 동생 체리의 모험담이 ‘뚱보 나라 키다리 나라’의 주요 내용이었다. 나이가 들고나서야 이 책에는 타인을 보는 시선, 외모에 대한 집착, 자존감, 전쟁에 대해 침략자와 피침략자의 이해관계 등 많은 풍자와 위트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지만, 당시에는 작가도 같은 문고집에 단편이 실렸던 아나톨 프랑스로 오해하고 있었을 만큼 에드몽과 체리에만 푹 빠져 있었다. 비슷한 재미를 찾아 도서관의 독서 카드 뒷면을 메워가던 나의 독서 습관은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책에 도통 취미가 없다는 아이들을 만나면 지금도 이 책을 이야기하곤 하지만 불행히도 절판되어 운 좋아야 도서관에서 만날 수 있는 귀한 책이 되어버렸다. 사람에게는 몇 개의 필터가 있는 듯하다. 자신에게 유리하고 좋은 것만을 기억하고 불리하고 나쁜 것은 걸러버리는 필터, 걸러버렸다는 사실조차 잊게 만드는 세월의 필터 등등. 신영복 선생님은 ‘마지막 강의 담론’에서 설득하거나 주입하려고 하지 말라고 이야기한다.   사람의 생각은 자기가 살아온 삶의 결론이므로, 남을 설득하는 일은 어렵고 설령 설득한다 치더라도 그 생각이 언제나 옳은 것인지 알 수 없는 일이다. 따라서 강의의 상한은 공감이라고 한 것 같다. 선생님이 담론에서 언급했던 노인 목수 이야기는 지금도 기억이 난다. “그분 성함이 문도득입니다. 길 도자, 얻을 득자입니다. 이름 때문에 도둑이 되었다고 불평했습니다. 왕년 목수 시절의 이야기를 시작하면서 집을 그렸습니다. 땅바닥에 나무 꼬챙이로 아무렇게나 그린 집 그림을 보고 놀랐습니다. 집 그리는 순서 때문이었습니다. 주춧돌부터 그렸습니다. 노인 목수 문도득은 주춧돌부터 시작해서 지붕을 맨 나중에 그렸습니다. 엄청난 충격이었습니다. 일하는 사람은 집 그리는 순서와 집 짓는 순서가 같구나. 그런데 책을 통해서 생각을 키워온 나는 지붕부터 그리고 있구나”   이 이야기를 읽으면서 나도 모르게 편견에 사로잡혀 살고 있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는 순서가 지붕이 먼저건, 주춧돌이 먼저건 그리는 순서가 중요하지는 않다. 다만 나도 모르게 지붕부터 그리면서 다른 이들에게 (특히 아이들에게) 지붕부터 그려야 한다고 압력 아닌 압력을 행사하지는 않았는지. 오늘 내 인생에서 생각나는 한 권의 책을 이야기하면서 “고품격 서평처럼 쓰지 마시고요” 라는 말이 계속 귓가에 맴돈다. 남들이 인정할만한 책을 아주 논리적으로 써보리라는 나의 엄큼함을 기자는 알고 있었던 걸까?   처음으로 돌아가 봤다. 내가 책을 좋아하고 많이 읽게 된 계기는 그저 재미였다. 감동도 지식도 무엇도 아닌 그저 재미, 나머지는 그 이후에 생긴 결과물이었다.   내 인생에서의 한 권의 책 모르겠다. 그저 시작은 ‘뚱보와 마른보’였다.
주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