짙어져 가는 가을을 상징하듯 은행잎이 누렇게 변하고 있다. 녹색 잎이 샛노랗게 변해서는 그 또한 언제였나 싶게 장렬하게 와락 떨구고 시원한 나목으로 변할 게 뻔하다. 가을은 단풍과 낙엽의 변화로 어느 계절보다 변화를 더욱 느끼게 하는 것 같다. 짙은 단풍잎 색깔로 계절의 변화를 쉬이 느낀다. 한 해가 가고 또 한 해가 오고, 세월은 잘도 흐른다. 이 유수 같은 세월은 시시각각 무뎌져 가는 장년의 한 인간의 감각기관으로도 읽을 수 있지만 사회 곳곳에서 쉬이 변화를 감지할 수가 있다. 생활 물가가 천정부지로 오르고 있다는 소식이다.
붕어빵 하나에 1000원이라는 기사를 보았다. 개인적인 경험치로 60년대 말부터 70년대 초엔 1원이었다. 1000배가 오른 셈이다. 당시 경주지역에선 국화빵이라고 하고 일명 풀빵이라고도 했었다. 10원에 10개 살 수 있었다.
팥 앙금이 들어간 국화빵이 당시의 학생들에겐 이 가을부터 겨울까지 최고의 군것질거리였었다. 초등학교 시절을 연상하자니, 이 가을 초등시절의 추억이 연상 작용으로 회억된다. 학창생활 중, 가을의 이벤트로는 추석 전후로 있었던 가을운동회가 압권이다. 그 시절 가을운동회는 온통 지역민이 참석하는 온전한 지역축제였다. 호기심에 코로나 이전에 지역 초등학교의 운동회를 가본 적이 있었는데, 사회가 변한 만큼 운동회 또한 다양성이나 자율성에서는 훨씬 나아진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역시 6·70년대 운동회의 정겨움엔 비할 수가 없다. 지나간 것은 모두가 아름답게 느껴진다는 것을 감안하고서라도 말이다.
그 당시의 운동회는 꽤 풍성했었다. 평소 학교 근처에 얼른거리지도 않으시던 부모님은 물론이고 가령 재학 중인 학생이 없는 동네주민들까지도 이날 만은 고운 차림에 색색의 양산을 받쳐 들고 학교로 달려와 동네 어린애들의 재롱 경연을 참관하며 모두가 즐거워 한 가을잔치였다. 추석 전후에 벌어지는 운동회라 그런지 찰밥에 송편을 빚고, 고구마에 밤까지 삶아 와서 참석한 식구들과 친지들이 하루 동안 흥겹게 어울리는 말 그대로 축제였다. 점심때면 교실이고 복도에 발 디딜 틈 없이 각자 정성스레 준비해온 음식들을 펼쳐놓고 먹었었다. 점심 전후 식수를 받기 위한 수돗가의 긴 줄이 체면 없이 야속하던, 하루가 짧은 그런 잔칫날이었다.
베이비붐 세대라 늘어난 인구 덕분에 청군 백군에 홍군까지도 있었다. 주로 백미터 개인경주와 단체경주로 계주와 오부자 경기, 동별대항 경기 등의 트랙경기가 있었고, 필드에는 공굴리기 풍선 터뜨리기 기계체조, 곤봉체조, 매스게임, 차전놀이 등 권위주의 시대에 걸맞는 메뉴들이 하루 내 분주하게 치러졌다. 어쩌다 흥미 있는 필드경기라도 볼라치면 목 좋은 곳을 골라 앉아야만 될 정도로 구경꾼이 바다를 이루고 학생과 학부모와 지역주민이 한마음이었다.
요즘의 운동회는 경주는 물론이고, 게임, 퀴즈대회, 각종 놀이에 댄스, 전통풍물, 연극까지 어울려 가을잔치란 이름에 걸맞게 하고 재미있다. 조직적으로 준비해서인지 어지간한 지역축제를 뺨칠 만큼 볼거리가 많고 주민과 학부모들의 참여도를 높이는 프로그램도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왠지 예전의 그런 신명과 흥미는 많이 줄어든 것 같다. 변화에 대한 보이지 않는 저항감으로 인해 현대의 삶이 많은 것을 얻었음에도 또 많은 것을 잃어가고 있음을 실감하는 순간이다.
그런 차원에서 학교 운동회를 내 자녀, 내 모교라는 이해관계를 떠나 지역축제와 연결해서 주민 잔치로 발전시켰으면 어떨지 고민해볼 만하다. 코로나 이후로 열지 못했던 신라문화제 등 각종 축제가 제법 성대해 개최되었다는 소식을 접했다. 인간의 삶에 리듬을 제공해주는 축제의 기능을 새삼 말할 필요가 없다.
세계적 팬데믹 속에서도, 생사가 난무하는 전쟁 속에서도 축제는 있어야 하는 것이 인간 생활의 철칙이다. 삶과 사회 속에 떼놓을 수 없는 것이 놀이와 축제이다 보니 이제는 축제의 기능을 통해 지역사회를 살리고 산업을 활성화하는 효과도 기대된다. 가진 것이 별로 없었던 어린 시절의 운동회 추억을 되새겨 보더라도 축제는 역시 자신이 주인공이 되어 참여할 때 의미가 커진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가 없다. 경주의 축제가 축제를 통해 경주시의 경제와 살림을 살찌우고 지역을 활성화 시킨다는 대전제에는 축제에 경주시민이 참여할 기회가 많아져야 한다는 의미도 포함된다. 오래전 가을운동회만큼 경주시민이 주인이 되는 축제가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