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대 유명한 정치인 한 사람이 떡고물 시비에 휘말렸다. 당시만 하더라도 정치를 하거나 공직에 있다 보면 뒤로 뭐가 좀 생기는 시절이었다. 정확하게 기억나지는 않지만 기자 한 사람이 당시 유명한 정치인에게 이와 관련하여 질문을 하니 떡을 만들다 보면 떡고물이 생긴다는 발언을 해서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다. 실제로 떡을 만들다 보면 떡고물이 생긴다. 떡만이 아니고 세상만사 모든 일을 하다 보면 조금씩 뭐가 생겨나게 되어있다. 톱으로 나무를 자르다 보면 톱밥이 생기고 대패로 나무를 다듬다 보면 대패 밥이 생겨난다.
옛날 할머니나 어머니가 칼국수 만드는 것을 옆에서 지켜보면 아주 재미있고 흥미로웠다. 밀가루 반죽을 해서 주물러 공기를 빼내고 이를 홍두께에 말아서 얇게 펴서 밀가루를 살짝 바르고 다시 차곡차곡 접어서 부엌칼로 썰고 나면 칼국수가 만들어진다. 이 때 국수꼬리(경상도에서는 ‘국시 꼬랑대이’라고 한다)가 생긴다. 이것도 칼국수를 만들 때 생겨나는 부산물로써 고물에 해당된다. 이것을 받아 챙겨서 숯불에 구워 먹기도 했다. 그런데 근래는 떡이나 칼국수를 만들어도 떡고물이나 국수꼬리는 구경도 못한다. 왜? 요즈음은 이들을 집에서 만들지 않고 모두 떡 방앗간이나 국수 공장에서 기계로 만들기 때문이다.
대학원에서 석사나 박사학위 논문은 어떤가. 학계나 정계에서 늘 문제가 되는 것이 표절시비다. 누가 논문을 표절한 것으로 의심이 되니 이를 검증 하고 학위를 취소해야 하느니 마느니 늘 설왕설래한다. 이것을 검증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 하나 있다. 논문을 작성하고 나서 ‘논문 고물’이 얼마나 생겼는가를 보면 된다. 위에서 떡과 칼국수 예를 든 것처럼 학위 논문이건 학술지에 게재하는 논문이건 논문을 작성하는 과정에서 반드시 고물이 생겨나게 되어 있다. 논문을 작성한 후에 고물이 생겨나지 않았다면 표절을 했거나 논문 공장에서 찍어낸, 소위 대필을 했을 가능성이 높다.
석/박사 학위 논문을 작성하면서 생기는 논문 고물은 대체 무엇인가. 논문을 작성하다 보면 애당초 저자가 계획했던 것 이상으로 자료를 수집하게 되고 그 과정에서 새로운 주제나 연구자들이 간과했던 것들이 튀어나오게 된다. 여러 가지 내용들 중에서 처음 계획했던 논문 주제에서 벗어나거나 한 논문 안에서 모두 다룰 수 없는 주제나 아이디어가 논문 고물이다. 나중에 이 고물을 이용해서 제 2, 제 3의 논문을 작성하고 이를 학술지에 발표하게 되는 것이 논문 고물인 것이다. 석사나 박사학위 논문을 작성하면서 학생이 제대로 공부를 한다면 여러 가지 새롭게 발생한 연구 주제 목록이 만들어지게 된다. 제대로 공부를 하면 석사는 몰라도 특히 박사학위 논문을 작성한 후에 남은 인생 동안 이용할 수 있을 정도의 연구주제나 아이디어 목록이 생긴다.
학위 논문을 작성하는 과정에서 연구주제와 관련하여 얼마나 많은 자료를 수집하고, 얼마나 많은 논문과 책을 섭렵하고, 얼마나 많은 곳을 답사하고, 얼마나 많은 사람들과 대화를 했는가에 따라 그 목록의 길이가 결정된다. 결국 그 목록은 한 연구자가 남은 일생동안 풀어야 할 과제가 되는 것이다. 마치 떡을 많이 만들면 떡고물 양이 많아지듯이. 이 과제를 하나씩 해결해 나가다 보면 고물들이 다시 또 생긴다. 이런 과정이 체질에 맞지 않을 수도 있고 괴로울 수도 있다. 그러나 시간과 노력을 투자한 후 성과물이 나올 때마다 보람과 작은 희열을 느낄 수 있다. 그 재미로 연구를 하고 또 그것을 즐기면서 하면 더 좋다. 이 과정에서 나의 새로운 발견이나 주장을 할 때면 더욱 좋다.
그래서 나는 이따금씩 거실 거울에 붙여 놓은 글을 슬쩍 읽어 본다. ‘지지자 불여 호지자 호지자 불여 낙지자’(知之者 不如 好之者 不如 樂之者)라고! 아는 것은 좋아하는 것만 못하고, 좋아하는 것은 즐기는 것만 못하다. 무엇을 하든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즐기면서 하는 것이 제일 낫다. 오늘도 누가 어디 논문 고물 흘린 것이 없나 두리번거리며 집을 나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