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에 입학한 지가 엊그저께 같은데 벌써 졸업사진을 찍는단다. 우리 아들 녀석 이야기다. 코로나 셧다운 관계로 1년을 꼬박 집에서, 또 1년간은 학교에서 수업을 했다. 1년이라지만 아크릴로 사방을 둘러싸인 급식실에서 밥을 먹고, 동료들하고의 대화가 금지된 상태에서 수업만 들어야 했으며, 학교에는 정수기가 있는데도 개인별 물통으로 물을 마시는 등 철저히 고립된 학교생활을 해야만 했다. 그러던 녀석이 어느새 3학년이고 또 졸업 사진을 찍는다니 세월이 참 빠르다. 코로나로 힘들었을 녀석한테도 시간은 예외 없이 흘러가는구나 싶다가도 한참 어울려 공도 차고 별 거 아닌 거에 낄낄대며 내일을 채울 소중한 시간을 뭉텅 잘려나간 듯한 느낌에 아쉬움도 크다. 녀석한테 쉴 새 없이 카톡 알림과 전화벨이 울린다. 어깨너머로 들은 내용이라 정확한지는 모르지만, 아무튼 단체 사진은 ‘깡패(!)’ 콘셉트로 찍자는 데 의견이 모아진 모양이다. 성인이 되어 옛 졸업 앨범을 펼쳐보면 ‘그때가 참 좋았지’ 하고 추억하려면 사진도 다소 엉뚱할 필요는 있겠다 싶다. 그게 꼭 깡패여야 할 이유는 없겠지만 아무튼 아들과 같은 시간을 보내고 있는 반 친구들의 일치된 의견이라니까 존중되어야 한다. 그래도 재미난 점이라면 “우린 뭘 입고 찍을까?”에서 “그래 건달 컵셉이닷!”에 이르기까지 의사결정(decision-making) 과정에서 여학생들이 남학생들에게 압도적으로 영향을 과시한다는 거다. 화려한 언변과 정교한 논리에서부터 동의를 구하고 세를 규합하는 정치력에 이르기까지, 심지어 아들 녀석이 제안한 망치보다는 야구방망이(!)가 더 임팩트가 있을 거라는 디테일에 이르기까지 말이다. 와이프랑 눈이 마주쳤는데 둘 다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와, 요즘 애들 정말 대단하구나! 그래도 괜찮다. 우리 아들 좀 멍청해 보여도 같은 반 여자애들이 똑 부러지니 뭐 그 또한 언젠가 재미난 추억일 테니... 얼굴에 반창고 붙이고 야구방망이를 들고 인상 쓰고 있을 아들 녀석 주변은 이 녀석만큼이나 밝고 맑은 미래로 충만한 우리 아이들이 새겨져 있을 테니... 그런데 모든 졸업 사진이 이렇지는 않은 것 같아 우려스럽다. 바로 우크라이나 졸업생의 경우다. 러시아의 공격으로 폐허가 된 우크라이나에서도 어김없이 졸업생들은 정들었던 교정을 떠나야 한다. 그전에 졸업사진도 찍어야 하고...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의 외곽에 위치한 체르니히우(Chernihiv)는 전쟁 발발 초기에 이미 민간시설의 80%가 파괴될 정도로 심한 내상을 입은 곳이다. 이곳에서 졸업을 하는 학생들은 부서진 탱크나 무너져 내린 학교 건물 더미를 배경 삼아 졸업사진을 찍었다. 웃음기 사라진 이들의 얼굴에는 상실감만이 가득했고 호락할 것 같지 않은 그들의 미래를 상징하듯 하나같이 굳게 다문 입술을 하고 있다. 이들을 앵글에 담고 있던 작가 스타니슬라프 세니크는 “마치 초현실주의 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 같다”고 했다. 두 여학생이 서로 마주 보면서 찍은 사진이나 여러 학생들이 단체로 찍은 사진이나 배경은 하나같이 포격으로 인해 폐허가 되어버린 전장터다. “감정적으로 힘들긴 했지만 학생들이 모두 좋아했다”라고 어느 여학생은 애써 덤덤하게 말하지만 그 얼굴은 주변을 둘러싼 시멘트 더미처럼 창백했다. “우리 모두 여기서 자랐다”며 “우리가 이런 현실 속에 살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고도했다. 우크라이나가 처한 실상을 사진으로나마 세계에 알리고 싶다는 의지로 읽혔다. 알프레드 윌리스라는 영국 식물학자는 고치에서 빠져나오려고 꼬박 한나절을 버둥대며 애를 쓰는 나방을 도와주었다고 한다. 그 과정이 너무나 힘들고 고통스러운 것처럼 보여 나방이 잘 빠져나갈 수 있게 칼로 고치의 옆을 조금 잘라준 것이다. 하지만 그의 도움으로 쉽게 빠져나올 수 있었던 나방은 날개는 화려하지도 않았으며 힘없이 날갯짓을 몇 번 하는가 싶더니 이내 죽고 말았다. 반면에 좁은 고치에서 빠져나오려 온 힘과 정성을 쏟았던 나방은 맑고 영롱한 빛깔을 한 날개를 작지만 힘차게 파닥이며 날아가더란다. 주름살 깊은 어르신들의 미소에는 기품과 인생의 아름다움이 서려 있다. 온갖 희로애락을 견뎌내며 지켜봤기에 비로소 웃을 줄 아는 저 일그러진 얼굴 말이다. 부서진 탱크 위에 어렵게 서있는 청춘들도 부디 이런 삶의 지혜를 잊지 말기를 두 손 모아 빌어본다.
주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