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아지는 산책을 좋아한다
김기택
산책로 여기저기에 코를 들이대다가
수상한 구석과 풍부한 그늘을 콧구멍으로 낱낱이 핥다가
팔이 잡아끄는 목줄을 거스르며
냄새 속의 냄새 속의 냄새 속으로 빠져들다가
애기야, 어서 가자, 안 가면 코만 떼어놓고 간다
엄마가 사정해도 꿈쩍도 하지 않고 코를 박고 있다가
냄새에 붙들려 코가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다
목줄이 아무리 세게 목을 잡아당겨도
냄새에 깊이 박힌 코는 뽑혀 나오지 않는다
콧구멍으로 이어진 모든 길을 거칠게 휘젓는 냄새에
코가 꿰어 끌려들어 간다
수천수만의 코와 꼬리가 뛰어다닐 것 같은 곳으로
이름과 표정과 살아온 내력과 가계와 전생까지
한 냄새로 다 투시하는 코들이 있을 것 같은 곳으로
냄새를 향해 뻗어 내려간 뿌리들의 끝이 보일 것 같은 곳으로
네 발바닥 질질 끌리며 끌려들어 간다
냄새는 점점 커지고 사나워진다
좁은 틈으로 수축했다가 동굴처럼 늘어나는 기다란 구멍이
벌름거리는 콧구멍을 삼키고
콧구멍에 매달린 머리통과 몸통까지 다 삼켜버릴 기세다
어디까지 들어갔는지 몸통은 보이지 않고
남아 있는 꼬리만 풀잎 사이에서 살랑거리고 있다
도와주세요! 냄새에 물린 우리 애기 코 좀 빼주세요!
-​냄새의 위력
그의 후기시가 시작된다는 느낌을 받으며 새 시집을 읽었다. 따뜻한 시선과 세계관, 웅숭깊어진 묘사와 더욱 독특하고 쾌활해진 유머가 새로운 길에 들어선 시인의 시를 예감케 한다. 이 시를 읽으며 요즘의 우리 모습과 풍경을 떠올리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을까? 산책길마다 넘쳐나는 애완견 무리들, 예쁘게 옷을 차려 입히고 말을 붙이며 개와 함께 걷는 사람들. 강아지에 대한 열성은 우리 시대 자녀교육을 떠올리게 하는 면도 있지만, 한눈에 보아도 그것을 훨씬 넘어선 것 같다.
그런데 「강아지는 산책을 좋아한다」라는 제목을 달고 나온 이 시는 우리의 선입관을 보기 좋게 배반한다. 시인이 발견한 것은 뜻밖에, 냄새에 대한 깊은 통찰과 발견이다. 강아지의 코를 저렇게 박게 하는 냄새의 정체란 도대체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 여기서 풍부한 상상력이 일어나고 이때껏 다른 시들에서 볼 수 없는 매력이 생겨난다. 강아지는 엄마가 아무리 목줄을 잡아끌어도 “수상한 구석과 풍부한 그늘” 속 “냄새에 깊이 박힌 코”를 빼내지 않는다. 아니 빼낼 수가 없다. 냄새가 물고 있기 때문이다. 몰입이란 말을 넘어서는 냄새의 위력이다. 냄새는 공격적으로 “콧구멍으로 이어진 모든 길을 거칠게 휘”저으며 코를 꿰어 들어가게 한다.
강아지는 “수천수만의 코와 꼬리가 뛰어다닐 것 같은 곳으로/이름과 표정과 살아온 내력과 가계와 전생까지” 들어있을 곳으로 “네 발바닥 질질 끌리며 끌려들어”간다. 냄새는 점점 더 사나워진다. 강아지 “벌름거리는 콧구멍을 삼키고/콧구멍에 매달린 머리통과 몸통까지 다 삼켜버릴 기세다” 이제 강아지는 꼬리만 풀잎 사이에서 살랑거릴 뿐. 사라지기 직전이다.
그걸 보는 엄마가 다급해진다. “안 가면 코만 떼어놓고 간다”고 으름장을 놓았던 엄마는, 어느새 “도와주세요! 냄새에 물린 우리 애기 코 좀 빼주세요!” 비명에 가까운 유머를 늘어놓고 있으니! 냄새에 관한 거의 독보적인 매력을 가진 시 한 편을 우리는 읽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