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구, 물난리 나가 다 떠내려가고 인자 겨우 정신 차랬어요!” 지난 힌남노 태풍 당시 가장 극심한 피해를 입은 포항시 북구 대송면, 그 중에서도 완전히 침수되어 전재산이 홍수에 휩쓸린 지역에서 박영숙 씨는 남편 김상목 씨와 사투를 벌였다. 물난리가 나서 집안살림이 절단난 것은 그렇다 치고 남편인 김상목 씨가 떠다니는 장롱에 발이 찍혀 중상을 입은 것이 더 큰 화였다. 피해 신고를 하기 위해 찾아간 면사무소조차 수해로 인해 업무가 정상적으로 가동되지 않았고 자동차조차 침수되어 발마저 묶여버렸다. 그 와중에 어머니가 편찮으셔서 전화가 빗발쳤다. 동생들에게 도움의 손길을 바랐지만 넷이나 있는 동생들 중 선뜻 부모님을 위해 달려오는 동생들이 없었다. 어쩔 수 없이 황폐한 정신과 아픈 몸을 이끌고 어머니 시중을 들기 위해 경주로 달려와야 했다. 심지어 동생들이 그런 자신을 알아주고 말고도 상관하지 않았다. 그런 박영숙 씨의 마음에 떠오른 드라마가 있다. ‘아들과 딸(MBC 1992)’이다. 아들과 딸은 남아선호사상에 찌든 집안에 태어난 이란성 쌍둥이가 겪어가는 세태에 대한 이야기들로 당시 60%를 오르내리는 엄청난 시청률을 기록했던 인기 드라마였다. 최수종(귀남 역), 김희애(후남 역). 채시라(미연 역) 등 당대 최고의 톱스타들이 출연했고 오연수, 한석규, 곽진영이 이 드라마로 스타덤에 오르기도 했다. 백일섭이 애드립을 섞어 부른 ‘홍도오이야 우덜 마라 아글씨 옵빠아가 이이있다’라는 노래가 입소문을 타기도 했다. 그 시대적 배경은 박영숙 씨가 맞닥뜨렸던 개인사와 거의 흡사했다. 박영숙 씨는 6남매의 맏딸로 태어나 중학교만 졸업하고 공순이로 생산현장을 떠돌았다. 빡센 노동현장이 힘겨워 공장일을 그만둔 박영숙 씨는 간호조무사 시험을 치른 후 한때는 간호조무사로 부산 등 대도시와 경주에서 생활하기도 했다. 어렵게 번 돈은 집안 살림과 동생들의 학비를 보태는 데 사용됐다. 차별 속에서도 아들을 대신해 언제나 집안일에 적극적으로 나섰던 후남의 모습이 박영숙 씨에게 고스란히 투영된다. 양복 재단사인 남편 김상목 씨를 만나 결혼한 후 하필 당시에 불어닥친 기성복 열풍으로 부부는 고전을 면치 못하다 지인의 권유로 자동차로 물건을 실어 오일장에 파는 장사를 시작했다. 이게 무려 40년 넘게 장돌뱅이로 일생을 보낸 박영숙 씨 부부의 시장과의 인연이었다. 시장 다니는 고된 와중에 친정 부모님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언제나 달려온 것은 대학 나와 잘 사는 동생들이 아닌 바로 박영숙 씨 부부였다. 박영숙 씨는 그때마다 아무 소리 않고 따라 나서는 것은 물론 처가에 무슨 일이 생기면 자신보다 먼저 달려가자 재촉하는 남편이 더없이 고맙고 든든했다며 고마움을 표한다. 드라마 아들과 딸에서 주목할 만한 일은 결국 딸인 후남의 해피엔딩으로 끝을 맺는다는 것이다. 후남은 온갖 차별 속에서도 부모님의 말을 따랐고 동생들을 돌보았다. 그리고 그 결과로 자신을 진심으로 이해하는 동갑내기 석호(한석규 분)를 만나 결혼한다. 시장에서 박영숙 씨 부부는 전국구 유명인사다. 박영숙 씨는 시장 보는 틈틈이 쓴 ‘시장 이야기’로 daum 블로그에서 일약 유명인사로 자리 잡았다. 이 인연으로 포항시 블로그 기자를 지내기도 했고 잡지 ‘여성시대’와 소상공인방송 ‘임현식의 시장 사람들’에 출연하기도 했다. 그 외에도 유명 방송에서 섭외가 들어온 것도 한두 번이 아니지만 고사했을 정도다. 박영숙 씨 부부는 특유의 따듯한 마음으로 시장 사람들과 소통하며 언제나 따듯한 커피를 준비해 나눌 줄 아는 넉넉한 마음의 소유자다. 그런 아량을 가진 박영숙 씨이지만 힌남노에 대한 정부의 대응에는 대놓고 볼멘소리다. 이번 재해는 다분히 재해를 예상하지 못한 채 하천 공사를 제대로 하지 않은 지자체와 정부의 책임이 큰데도 마을 전체 주민들이 받을 보상은 터무니없이 작아 보여서다. 박영숙 씨네만 해도 수천만 원의 피해가 생겼지만 고작 몇백만 원의 보상안이 오르내릴 뿐이다. ‘그럴 양이면 ‘재해지역’으로 선포하지나 말 것이지 정부가 말로만 인심 내고 실상은 나 몰라라 한다‘고 일침이다. 경주신문에 이 말을 꼭 해달라는 당부도 잊지 않는다. 우리 시대 후남이, 박영숙 씨의 말 한마디가 수마 피해자들을 대변하고 있다. 관계자들이 화들짝 놀랄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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