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증왕(智證王)은 신라 제22대 왕이다. 재위 기간은 500~514년이며, 재종형인 소지 마립간(제21대, 재위 479∼500)이 후계자 없이 죽자 64세에 왕위에 올랐고, 우경을 시행하여 농업생산력을 높였고, 502년(지증왕 3)에 순장(殉葬)을 법력으로 금지했다. 503년에는 그 동안 사라(斯羅)·사로(斯盧)·신라(新羅) 등으로 사용되던 국명을 ‘왕의 덕업이 나날이 새로워지고, 사방의 영역을 두루 망라한다(新者德業日新 羅者綱羅四方之義).’는 뜻을 가진 신라(新羅)로 확정했으며, 왕호를 방언인 마립간에서 중국식인 왕으로 바꾸었다. 왕위에 오른 지 15년 만에 78세의 나이로 죽었으며, 시호(諡號)를 지증(智證)이라 하였고, 아들이 제23대 법흥왕이다. 『三國史記』권4 신라본기 지증마립간조에 따르면, 왕은 체격이 매우 컸고 담력이 남보다 뛰어났는데 이름은 지대로(智大路) 또는 지도로(智度路)라 하였다. 『三國遺事』기이(紀異第一)편에 음장이 장대한 지증왕의 배필을 찾아준 개에 관한 이야기가 있다. 지증왕의 배필을 찾아준 개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三國遺事』권 제1, 제1 기이(紀異第一)에 왕은 음경(陰莖)의 길이가 1자 5치(一尺五寸)이나 되어 훌륭한 배필을 구하기가 어려워 사신을 삼도(三道)에 보내 배필을 구하였다. 사신이 신라 수도에 있었던 6부 가운데 하나인 모량부(牟梁部)에 이르렀는데, 동로수(冬老樹) 아래에서 개 두 마리가 크기가 북만한 커다란 똥 한 덩어리를 양쪽에서 물고 다투는 것을 보았다. 그 마을 사람들에게 물으니 어떤 소녀가 고하여 말하기를 “이것은 모량부 상공(相公) 성이 박씨인 이찬 등흔(登欣)의 딸(연제부인)이 이곳에서 빨래를 하다가 은밀히 숲속에 눈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그 집을 찾아 그녀를 보니 신장이 7척 5촌이나 되었다. 이 사실을 왕께 갖추어 아뢰자 왕은 수레를 보내 그 여자를 궁중으로 맞아 들여 황후로 삼았고, 군신들은 모두 경하했다’
『三國遺事』권 제1, 제1 기이(紀異第一) 지철로왕(智哲老王) > 지증왕(智證王) 三國遺事, 智哲老王 第二十二智哲老王. 姓金氏. 名智大路. 又智度路, 諡曰智證. 諡號始于此. 又鄕稱王爲麻立干者. 自此王 始. 王以永元二年庚辰卽位.王陰長一尺五寸. 難於嘉耦. 發使三道求之. 使至牟梁 部冬老樹下. 見二狗嚙一屎塊如鼓大. 爭嚙其兩端. 訪於里人. 有一小女告云. 此部相公之女子洗澣于此. 隱林而所遺也. 尋其家檢之. 身長七尺五寸. 具事奏聞. 王遣車邀入宮中. 封爲皇后. 群臣皆賀. 又阿瑟羅州 東海中. 便風二日程有于陵島. 周迴二萬六千七百三十步. 島夷恃其水深. 驕傲不臣. 王命伊喰朴伊宗將兵討之. 宗作木偶師子, 載於大艦之上. 威之云. 不降則放此獸. 島夷畏降. 賞伊宗 爲州伯.
『경주의 신화 전설집성』(문경현, 최재영, 2008) 49쪽에도 지증왕의 음장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다. “신라 제22대 지증왕은 지철로(智哲老), 지도로(智度路), 지대로(智大老)라 하고, 지증왕(智證王)도 당시의 음(音)으로 지등왕이다. 철(哲)자도 털 자였다. 사달부 갈문왕으로 있다가 달부 매금왕(寐錦王)이 된 왕이다. 왕의 음경이 거대하여 5치였다. 음경(陰莖)은 옥경(玉莖), 양물(陽物) 이라 칭하고 신라어로 ‘좆’이라 한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경주의 신화 전설집성』에 『三國遺事』권 제1, 제1 기이(紀異第一)편의 지증왕에 대한 이야기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국왕의 음경이 너무 커서 그에 걸 맞는 배필을 구하지 못하여 온 조정이 걱정 거리였다. 그래서 조정에서는 이에 배필을 구하기 위하여 전국에 사신을 파견했다. 사신이 모량부(牟梁部/모달부)의 동로수 나무 밑에서 두 마리의 개가 거대한 똥자루를 서로 물고 싸우는 것을 보게 되었다. 사신이 똥 굵도 큰 대빵인데 놀라워했다. 동네에 들어가 물어보니 한 계집애가 말하기를 “이 부(部)의 상공(相公) 즉 높은 벼슬아치의 딸이 이곳에 서답을 빨려고 왔다가 똥이 마려워 숲속에 숨어 누고 간 것입니다”라고 했다. 그래 사신이 상공 댁에 찾아가 그 집 딸을 만나보니 거인이었다. 아마존이었다. 사자가 궁중에 들어와 왕께 보고했다. 왕은 매우 기뻐하여 수레를 보내어 그 아가씨를 궁궐로 맞아들여 왕비를 삼으니 만조백관이 기뻐 하례했다”
개는 사람과 함께 한 가장 오래된 최초의 축양동물이다. 고대 이집트의 개는 신화에 나오는 아누비스 Anubis로 신격화된 신이다. 태양신 라(Ra)의 넷째아들이며, 후대에는 오시리스(Osiris)와 네프티스(Nephthys:세트의 아내)의 아들이다. 저승으로 향하는 문을 열어 죽은 자를 오시리스의 법정으로 인도하며, 죽은 자의 심장을 저울에 달아 살아생전의 행위를 판정하는 역할을 하였다. 죽은 자를 심판하는 신이었다. 또 왕의 미라(mirra, mummy)를 보관한 묘곽의 장식으로 아누비수(개 모형)를 만들어 왕의 무덤을 지키는 신격화된 동물이다. 삼국시대 고구려, 신라의 개도 벽사의 의미로 길사와 흉사를 미리 알려주는 영리한 동물이었다. 고구려 석실 고분인 안악3호분, 덕흥리, 송죽일, 각저총, 무용총, 장천1호분에 그려진 개 벽화는 죽은 자의 시신을 수호하는 진모견(鎭墓犬)으로 수호신의 역할을 하고 있다. 동서양에서 흔하게 내려온 개에 대한 이야기는 사람과 늘 함께한 결과일 것이다.
최석규 경주개 동경이 혈통보존연구원장
경주신문 독자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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