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릇 시가 시행하는 정책에는 타당한 근거도 중요하고 그보다 더 주민들의 의견을 듣는 것이 우선돼야 한다. 많은 시민들에 영향을 줄 일은 정책을 실행하기에 앞서 전문가들의 의견을 들어보는 공청회를 열거나 규모가 작은 경우 최소한 의견을 수렴하는 작업이 선행돼야 한다. 황성공원 숲이 이런 절차 없이 어느 사이엔가 백문동 꽃밭으로 변했다. 꽃밭을 뭐라고 할 일은 없지만 꽃밭이 조성된 후 시민들이 자유롭게 즐기고 산책하던 숲은 달랑 외줄기 길만 남았다. 백문동이 소나무 근처를 온통 감싸고 있어서 산책로라고 만들어 놓은 길 이외에는 불편해서 들어갈 수도 없고 들어갈 경우 백문동을 밟지 않을 수 없는 구조다. 다시 말해 시가 그어놓은 산책길을 오로지 그 길로만 다니라는 추상같은 명령이 도사린 꼴이다. 당초 백문동 꽃밭을 조성하면서 반대하는 시민들 의견이 없었던 것도 아니다. 소나무 숲이 시민의 휴식공간인 만큼 지나친 백문동 조성으로 시민들이 불편하거나 숲과의 공감성을 잃으면 안 된다는 의견이 SNS상에서도 높았다. 소나무의 생육에도 오히려 나쁜 영향을 초래한다는 의견도 있었다. 그럼에도 시는 그 염려를 묵살하고 일방적이고 획일적인 꽃밭 조성으로 지금과 같은 길을 만들어 놓았다. 마침 황성공원을 가장 열심히 다니고 틈나는 대로 황성공원 근황을 알리는 권원수 씨가 페이스북에 지금의 꽃길에 대한 아쉬움을 드러냈다. ‘처음부터 너무 광범위하게 길도 포토존도 없이 심은 것도 문제’라는 권원수 씨의 볼멘소리에 아쉬움이 가득하다. 권원수 씨는 지난 19일에는 황성공원에서 오래된 소나무를 뽑아낸 현장을 고발하기도 했다. 소나무들이 뽑혀 나간 자리에는 가로등 설치를 위한 케이블과 기단 시설이 들어앉았다. 인위적인 산책로 설치를 위해 잘 자라던 소나무를 억지로 뽑아내는 것이 옳은 것이며 사람들과 공유되던 숲을 일방적으로 꽃밭으로 조성해 획일화 시키는 것이 좋은 시정인가 궁금해진다. 10여년 전 4대강 개발사업 당시 한강에 조경공사를 한답시고 아름다운 수변을 온통 파헤쳐 초토화 시킨 뒤 거기에 새로 콘크리트로 수변공원을 만드는 만행이 자행됐다. 자연이 오래 만든 둔덕들과 아름다운 명소들이 그때 대거 사라졌다. 황성공원은 경주에서 몇 남지 않은 오랜 숲이다. 때로는 원래 있던 그대로 두는 것이 인위적으로 무얼 만들어 넣은 것보다 훨씬 낫다는 것을 어쭙잖게 조성된 꽃길에서 극명히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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