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사연으로 모교에 진학하게 되었으며 당시 학교활동은 어떠 하였습니까?(질문) 답변: 해방을 맞은것이 45년,열한살나이였고, 모교에 입학한것은 47년이였습니다.정부가 막들어서고 정국이 아주 어수선하기 이를때없었습니다.초등학교 6학년 단임선생의 영향이 아주 컸습니다. "새나라에는 기술이 필료할것일세" 이 한마디 말씀이 어린마음에 자극이 되어 모교에 입학 하였습니다. 이러한 생각은 지금도 변함이없습니다.이공계가 발전해야만 이나라 경제가 부흥할수가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우리모교는 일제시 경주공예하교로부터 시작되었으나 경주의 유수한 인재라할 선배들이 모교를 졸업했습니다. 경주의 초대 문화중하교 교장셨던 허면선생께서도 모교 1회졸업생이였습니다. 그래서 자부심이 대단하였습니다.허지만 학교사정은 공립이되여 여락하기이를때없는 사정속에 공부를 해야만 하였습니다. 처음교사는 지금의 역전앞 기업은행자리인 그곳에 일제시 철도기관사 기관원이 기숙하던 낡은 베니어판 교실에서 공부하다 입학 이듬해 본교교사 건물의 옆이라 할 서천으로나와 뼈대만남은 기관차고을 칸을질러 여기서 공부를 했는데 창문은 가마니 때기로 가리워져 공부했으며 겨울에는 메서운 하늬바람으로 석탄가루가 눈에날라들어 눈도잘 떠지못한 그런 환경에서 새교사가 생긴다는 희망에서 열심이공부하였습니다. 졸업후 어떻게 하였으며 지금하시는 일은?(질문) 답변: 본교교사에 들어간지 불과 몇달이 못때여 6,25를 격었습니다.중학교 3학년때였지요.포항과 안강, 경주가 실함위기에 있었습니다.학도병으로 나가 형상강을 사수 하였습니다.그때는 펜대신 학모와 여름교복입은 그대로 총과 수류탄으로 적군을 격퇴시켰습니다. 이듬해 거제도 포로수용소에서 복교명령을 받았습니다.모교에 복교했다가 대구에있는 어느 대학청강생으로들어갔다가 향리에서 50여리 떨어진 우라초등학교(산내면)교사직과, 의곡고등공민중학교 교사직에 2년여 근무한것이 계기가되어 도내 북부지역인 봉화고등하교와, 충북 괴산 고등학교, 그리고 경기장호원고등하교,을 거쳐 서울에 입성했습니다.당시는 학교가 아니였고 자동차 보험이라는 회사였습니다. 여기서 10여년간근무하면서 보건대학원을 졸업하고, 서울보건전문대와 서울대학보건학 교수직을 역임하였습니다.89연 양심선언교수로연좌되어 학교를 물러난후 작가로서 문학활동에 임하고 있습니다.문단출발은 당시 우리집과 앞뒷집으로 살았던,박목월선생과 이웃동리출신이였던 소설가 이종항선생, 또모교 역사를 가르켜주셨던 황호근, 국어를 가르켜주셨던 고무신(박종우)선생님들의 배려로 지금은 문학평론과 수필가로서 활약하고 있습니다. 현제 보건관계서적 20여권, 문학관계서적 20여권 기타 10여권 모두 50여권이 저서가 있어며 인트넷상에서 본인의 이름으로 검색하면 나타난다 할수있습니다. 특히 경주의 책으로 "단석산마을이야기" "새천년의미소"가 잇다 하겠습니다. 학창시절 가장추억에남는일은 어떤일이 있습니까?(질문) 답변:통학시절의 추억이 가장 인상에 남습니다.당시는 통근 열차가 대구방면, 포항방면, 부산방면으로 있었으나 열자가 제시간으로 들어오고 떠나기는 어려워, 열차를 노칠세라 새벽에나오고 하학은 연착하면 보통 자정이넘어 집에들어갔으니 복습이나 예습공부란 엄두도 못낼지경이였습니다.늦게 집에도착하면 밥먹기가 바뿌에 슬어져 잠들고 ?흔날 새벽책보를 끼고 그대로 학교에나와야 했습니다. 그러니 학교 수업시간표는 있어나마나 였지요. 평소생활신조는 무엇이며 후배들에게 일러주고싶은 말이 있다면?(질문) 신조를 말하기전에 나의 생활부터 이야기 하겠습니다. 금년 69세(만 68세)입니다.저녁 11시에 취침하고 새벽 4시에 기상을 합니다. 1시간반을 운동시간으로 활애하여 이웃학교 운동장에서 걷기운동을 합니다. 돌아와 1시간반을 다시 외국어 공부를 합니다. 7시반에 조반을 하고 하루 일과를 시작합니다. 이같은 생활을 10여년간 지속하고 있습니다.규칙생활을 하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건강과 공부를 게을리하지 않도록 습관화 해야 합니다. 끝으로 하고 싶은 말은(질문) 젊어서 공부못하면 늙어서 후회한다는 말이 있듯이 학창시절이 가장 공부하기 좋은 행복한때라고 할수가 있습니다.경험하지 못한 후배들은 나이먹은 선배들의 말을 이해하기가 어려우리라 믿습니다. 한번도 경험하지 못한일이니까 말입니다.허지만 식량을 쌓지 않으면 절양때 배고파하는것과 같다고 할수가 있습니다. 사회에 나와 대부분 선배들은 지난날 "왜 학창시절 공부를 하지 않았을가" 라는 자탄의 후회를 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어떻게 원고몇장으로 쓰라하는지도 모러고 적었습니다 읽어보시고 내용은 대략 이러하니 길면 줄이고 짧어면 편집자께서 보태여 적어주십시요. 늘 모교 후배들들을 위해 밤낮으로 노고하시는 선생님들과 특히 애쓰시는 김선생님에게 이자리를 빌어 모교출신자로 감사를 다시한들여마지 않습니다. 늘 행운이 함께하시기를 빌어 마지 않습니다. 11, 3. 서울 동대문구청량리2동 205-194 전화 02 -968 -3482 황 종찬 고3회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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