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년도 나의 대학 신입생 시절 책에서 만난, 아직도 그 때 그 신선한 충격이 채 가시지 않을 만큼 길고 긴 사색의 여운을 안겨 준 두 사람.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다.’라는 법어를 설파하시며 ‘달(月)을 보라는데 달은 보지 않고 손 가락 끝은 왜 쳐다보느냐?’고 어리석은 중생들을 나무라시던 성철스님. 농업혁명, 산업혁명에 이어 `제3의 물결’인 정보화사회라는 미증유의 대변혁을 예고한 미국의 A.토플러. A.토플러는 ‘제3의 물결’에서 첨단지식 정보화사회에서는 전통적인 가족관계의 붕괴나 가치관의 분열 등의 현상이 일어나는데 ‘인류가 제3의 물결에 대해 올바른 자세를 가진다면, 새로운 정신체계를 재구축하여 훌륭한 미래사회에 다다를 수 있다.’라고 했다. 즉 미래사회의 혼란을 잠재우고 인류에게 밝은 미래를 보장하는 길은 물질적 성장보다는 정신세계의 안정이 중요하므로 부처님과 예수님 그리고 마호메트등 성인들의 가르침을 잘 받들어 마음의 평화를 얻는 것이라는 점을 암시하였다. 지난 일요일 19일. 경주박물관대학 문화재 답사로 신라인들이 서방 극락세계로 여기던 선도산 정상의 아미타삼존대불 앞에 서서 산 아래를 내려다 보았다. 태종무열왕릉계 왕릉들과 남산의 웅자한 자태를 뒤로하면 토함산이 조용한 미소로 답하고 저 멀리 울산시가지가 보일랄말락 하였다. 아웅다웅 살아가는 우리들의 삶이 한 마디로 ‘넓디 넓어 끝이 없는 아미타삼존불 부처님의 손바닥 안’처럼 느껴졌다. 갑자기 근래에 지역의 중생들이 ‘부처님 손 바닥’ 안에서 지은 두 가지 업(業)이 생각난다. 하나는 나쁜 업(業)이요, 또 하나는 좋은 업(業)) 이야기다. 매스컴에 의하면 울산과 양산지역에서 근로자들이 연말정산 소득공제를 많이 받으려고 사찰에서 허위로 기부금 영수증을 받아 국가세금을 포탈한 것이 발각되어 많은 사람들이 사법처리 되었다는 유익하지 못한 소식이 들렸다. 그 금액도 합하면 천문학적인 액수라나. ‘부처님 손바닥’이 얼마나 넓은데 그 어리석은 업(業)을 지었는지 안타까울 뿐이다. 물론 빙산의 일각인지도 모른다. 사실 전국의 각 종교단체나 복지법인및 사회단체 등에서 연말마다 끊어주는 수 많은 기부금 영수증의 진실(?) 앞에 부끄럼이 없는 사람은 몇 명이나 될까? 또 한 가지는 좋은 업(業) 소식이다. 김대성이 751년 창건했고, 1593년 임진왜란시 왜군에 의해 불타버렸다가 1805년에 다시 중건된 불국사. 그러나 1910년대의 불국사 전경을 보여주는 흑백 사진을 접하면 국운이 쇠퇴했던 아픔과 안타까움을 금할 수가 없다. 광복 후 눈부신 경제성장의 물결을 타고 1973년 6월 지금의 모습으로 재복원된 세계적 문화유산인 불국사. 그 불국사에서 지난 10월 15일 재단법인 성림문화재연구원을 설립하여 영남권 문화재 발굴조사와 지역민 문화복지에 적극적으로 나선다는 소식은 751년 창건, 1805년 중건에 버금가리만큼 더 할 나위없이 크고 아름다운 업(業)이 될 것이다. 사실 10년 전 성철 큰 스님의 입적 소식에 수많은 사람들이 사찰로 구름같이 몰려 들다가 그 후에 결코 아름답지 못했던 몇 몇 불교사건 때문에 발길을 돌리곤 했는데, 이번에 월산 큰 스님의 당호를 딴 성림문화재연구원 설립은 불교역사는 물론이요 경주의 찬란한 역사에 소중하게 기록될 것이다. 국가나 지방자치단체의 힘과 예산만으로는 도저히 감당할 수가 없는 고귀한 문화유적 발굴조사 및 보존 관리 연구에 불국사가 팔을 걷고 나선 이번 업(業)엔 경주시민은 물론이요, 전 국민이 큰 박수를 보낼 것이다. 어쩌면 불국사의 종무행정이 그동안 달(月)을 가리키는 손 가락 끝만을 바라보던 어리석음에서 벗어나 토함산 위에 둥글게 떠오른 보름달(月)을 똑 바로 쳐다보는, 성철 스님 말씀의 바른 뜻을 깨닫고 실천한 아름다운 업(業)이 아닌가 생각해 보았다. 이번 업(業)을 주도하신 불국사 주지 종상스님과 회주 성타스님의 공덕은 오래오래 빛날 것이다. A.토플러가 그랬다. 첨단과학기술로 물질문명이 아무리 발전되어도 인류평화는 새롭고 질서정연한 정신세계의 재구축이 없으면 불가능하다고. 즉 슈퍼컴퓨터의 능력이 아무리 뛰어나도 예수님과 마호메트 그리고 부처님의 깊고 깊은 혜안과 넓고 넓은 손 바닥은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선도산에 올라 아미타삼존불 부처님 앞에 서서 환하게 펼쳐진 아름다운 광경을 한번이라도 쳐다본 사람은 넓디 넓은 부처님 손바닥 안에서 그런 어리석은 업(業)을 짓지는 않았을텐데... 최근의 두 가지 업(業) 이야기를 떠올리며 난 20 여년전 발간된 성철스님과 A.토플러의 소중한 지혜가 담긴 먼지로 얼룩진 두 권의 책을 또 다시 만지작거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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