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만의 독특한 문화를 만들자" 시인 이근식 선생 "찬란했던 신라 문화를 바탕으로 새로운 시대의 문화를 융합해 경주만의 독특한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 나가야 한다"는 이근식 선생(76). 신라문화에 너무 도취된 우리의 현실이 안타깝고 예지가 부족하다는 선생은 "신라문화를 발판 삼아 창조력을 발휘해야 한다"고 말했다. 일제 말, 건천읍 금척리 한 농가에서 태어난 선생은 한 평생을 현대문학을 공부하고 전파했던 경주의 대표 문학가이자 시인이다. 그리 넉넉하지는 않았던 가정 형편이었지만 문학에 대한 열정은 그 누구도 막을 수가 없었다. 건천국민학교(초등학교), 영남중학교 3학년을 수료하고 해방 후 경주공업중학교와 영남대학교에서 국문학을 공부했다. 당시 어려운 시대에 취직이 어려워 고향에서 농사를 지으며 틈틈이 습작 활동을 꾸준히 해 나갔다. 고 박목월 시인의 아끼는 고향 후배이자 문학 후배로 많은 사랑을 받았던 선생은 40세의 나이에 문화중고등학교에서 처음으로 교편 생활을 시작했고 바쁜 직장 생활 속에서도 틈틈이 문학을 게을리 하지 않은 탓에 72년 박목월 시인의 추천으로 `모량부의 여울`을 비롯한 6편이 문예 전문지인 현대시학을 통해 발표했다. 이는 시인으로 공식적인 등단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대학교 학창 시절에도 문학서클에서 학예부장을 맡아 대구 지역 신문사와 학보사에 글을 실어 문학에 열의를 태웠던 선생은 "암울했던 유·소년기 시절과 건천에서 농사를 지으며 경제적으로 어려웠던 청년기 시절이 있었기에 이근식 만의 독특한 글들이 나왔고 이 글들이 독자들에게 사랑 받고 인정을 받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지난 94년 교직을 마친 선생은 문학인 양성과 지역사회 봉사을 위해 경주문화원에서 경주문예대학을 개강했다. 경주문예대학은 현재까지 17기 300여명의 수료생을 배출했으며 그중 20여명이 등단해 왕성한 문학활동을 하는 등 지역 문학인들의 등용문이 되고있다. "지역에서 문학공부를 하고싶어 하는 후배들을 위해 도움을 줄 수 있는 것이 없을까라는 고민을 하다 경주문예대학을 개강했다"는 선생은 "문학은 마음과 정신에서 나오는 따뜻한 차맛과 같은 것이기에 생을 다하는 날까지 척박한 우리 삶을 시를 통해 이야기하고 싶고 많은 후배들이 문학을 사랑하는 마음을 가질 수 있도록 열심히 가르치고 싶다"는 말을 남기며 단풍으로 곱게 물든 10월의 아름다운 풍경 속으로 걸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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