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을 놓아버린 채
투명한 하늘과 어깨동무했던 날
그는 빳빳한 뼈만 가지고
노여워하거나 슬퍼하지 않는다
뼈와 뼈 부비는 소리
사각사각 나들이 나온 바람마저
무표정으로 바라보며
끼리끼리 위로하며 약속이나 한 듯
무릎 사이사이 뼈 부비는 소리
무슨 말 건내고 있는지
나는 알 것 같다
귀가 없어 듣지 못해도
눈이 없어 보지 못해도
출렁이는 바람결에 물살 일으키듯
온몸으로 출렁출렁 바다까지
귀가 열려
환히 바라보고 있는 저 흔적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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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날 들녁에 우두커니 바람에 날리는 갈대의 진풍경을 그냥 스쳐 지나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만큼 인간세상 가까이에서 늘 함께 해온 갈대인 것이다.
인간도 청춘이 있고 중년이 있고 노년을 맞듯, 깊어가는 가을날 뼈만 앙상하게 남아 흔들리고 있는 갈대의 모습을 시인은 무소유의 자세로 보고있는게 놀랍다.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홀가분하게 굴러가는 마차의 뒷모습을 석양과 함께 바라보듯이, 언제나 자신이 처해있는 삶 앞에서 세상을 진솔하게 바라보면서 느끼고 초월한다는게 쉽지는 않겠지만 이처럼 거리낌 없는 마음가짐이라면 오히려 편안해지는게 아닐까.
시인은 갈대의 풍경을 `빳빳한 뼈만 가지고 / 노여워하거나 슬퍼하지 않는다 / 뼈와 뼈 부비는 소리`라 표현했다. 게다가 `무슨 말 건내고 있는지 / 나는 알 것 같다`는 대목에서 가장 의미있게 와 닿는데 그 심오함을 보여주고 있다는데 눈여겨 볼만하다.
이제는 `온몸으로 출렁출렁 바다까지 / 귀가 열려` 자신의 삶이 무한경지에까지 이르는 초월적 세계관을 열어보여주고 있는데, 그냥 무상무념이 아닌 시인이 지니고 있는 깊은 사유의 덕목으로 자리매김 되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