갤러리 화(龢, 대표 임강혁)에서 다시 한 번 의미있는 큰 전시를 이어간다. 범정(凡丁) 강민수(70) 화백의 ‘계림(雞林)’전이 오는 5월 22일까지 열리는 것. 한편, 이례적으로 작가와의 만남이 전시기간 내 매주 금요일 오후 2시부터 7시까지 기획돼 있다. 점차 농염해지는 봄날, 흰 눈으로 뒤덮인 계림숲은 묘한 대비를 연출하며 전시공간을 장악한다. 강 화백의 1980년대 작품부터 최근작까지 계림 실경을 소재로 때론 살갑고 보드라운 필치의 계림이 펼쳐지는가하면, 때론 거칠고 야생적인 계림이 전시장을 호령하기도 한다. 지금은 흔적도 없이 사라진 계림의 고목들도 화백의 작품 속에선 고스란히 살아있어 옛 연인을 다시 만나는 듯한 묘한 설레임도 준다. 부드러운 인품이 배어나오는 반듯하고 학자적인 인상에 비해 강 화백의 작풍은 매우 거칠고 야수적인면이 있다. 이는 정형화된 정통 산수 실경에다 선생만의 필치를 과감하고 자유롭게 운용하는 것에의 발로다. 입문 초기부터 과감한 생략과 거친 붓 터치가 특징적이었다고 한다. 강 화백은 실경산수화파들에게서 풍겨지는 필의를 내포하면서도 추상성이 짙게 드러나며 주저함이 없는 대담한 필묵을 사용하는데 이는 작가가 자연을 보는 직관력의 자신감에서 오는 것이라 볼 수 있다. 전래의 묘사법에서 벗어나 자유롭고 활달하게 붓을 유희하는 강 화백을 지난 19일 갤러리 화에서 만났다. -범정 강민수 선생의 ‘계림(雞林)’전 오는 5월 22일까지 갤러리 화(龢)에서 첫 선// 작가와의 만남 전시기간 내 매주 금요일 오후 2시부터 7시까지 예정돼 계림의 정령들이 꿈틀거리는 이번 계림전 23점 작품은 1988년 수묵으로 제작된 가장 오랜 계림작부터 최근까지 범정 강민수 화백의 붓끝에서 40여 년 동안 다양한 모습으로 탄생했다. 이 중 100호 이상은 작가가 가장 애착이 간다는 300호 대작을 포함해 8점 정도며 크고 작은 작품들이 출품됐다. 이번 전시는 강 화백이 즐겨 그린 ‘계림’을 집대성하는 첫 전시라는 데 의의가 매우 크다. “계림은 경주의 고적 풍광 중 그림 소재로서 최고입니다. 특히 산수 실경으로서 계림은 고목도 다양하고 계절마다 다채로운 영감을 주는 곳입니다” 이번 전시에선 계림숲의 변화를 읽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강 화백의 수십 년간의 작풍의 경향이 고스란히 나타나있다. 이번 전시작 중에는 유난히 겨울의 계림과 눈 오는 계림 풍경이 많다. 일반 산수풍경에도 설경을 자주 등장시키는 강 화백은 “산수의 풍경이 겨울에 가장 잘 보이거든요. 잎을 떨궈낸 나목의 모습과 바위 등이 적나라하게 드러나기 때문이지요. 담백하면서도 실체가 뚜렷하기 때문입니다”라고 설명한다. 원로화가 조희수 화백은 “계림은 화가의 꿈을 키우는 자연 학습장이었으며 화가로 성장한 다음 경주로 내려온 후에도 계절이 바뀔 때 마다 화폭에 담은 풍경이 계림”이라고 말하면서 ‘추억의 계림’에 대해 회고한 바 있다. “범정은 1970년대 후반 계림에서 만난 이후 지금까지 꾸준히 계림을 수묵화로 그려오고 있는 후배입니다. 계림의 다양한 나무들이 고목으로 사라지는 모습에 아쉬움을 느끼고 있었는데 이번 전시회에서 작가의 작품세계와 함께 시대의 흐름에 따라 변화하는 숲의 모습을 한 눈에 찾아 볼 수 있어 감회가 새롭습니다”라고 전해왔다. 강 화백은 2005년 이후 경주 남산 작업을 할 때부터 주로 죽필을 써왔는데, 직선적이고 강한 필체가 특징인 작품들에선 고목의 거친 수피의 느낌이 강하게 전달된다. ‘먹을 강하게 사용해 극적 대비를 강조하고 배경과 여백의 구분을 명확히 합니다. 대조를 위해 과감하게 단순화시키고 생략하고 여백을 부각하면서 바탕을 생략’했다는 계림에선 같은 듯 다른 양면적 숲을 발견한다. 150호 화폭에 담긴 설경의 계림에는 박수근 화백이 경주에 와서 그린 고목도 보인다. 300호 계림작은 이번 전시에서 가장 큰 대작으로 2016년 구상해 작업까지 한 달여 그린 작품이라고 한다. “먹의 농담과 선의 강약을 단번에 결정지으며 속도를 냈습니다. 그래서 밋밋해지지 않도록 하고 강한 부분부터 작업했습니다” 이렇듯 다양한 시도와 기법의 다양성이 계림의 풍경 곳곳에서 발견된다. 현대적 기법의 운용과 발견은 계림을 더 이상 오랜 숲으로만 보이지 않게 한다. 이번 전시에서는 계림의 다양한 모습들을 시간의 흐름에 따라 재발견하는 즐거움도 선사할 것이다. -범정 강민수 화백...제2의 고향 ‘경주’를 소재로 평생을 수묵산수화가로 살아오면서 우직하리만치 저력의 대작들 탄생시켜 강 화백은 1951년 경북 청송에서 태어나 1972년 안동교대를 졸업하고 2011년 계림초 교장으로 정년퇴임하기까지 40여 년간 교육자의 길을 걸었던 이기도 하다. 경주를 대표하는 한국화 작가로 오랜 기간 교직에 재직하면서도 일찍이 한국화에 입문했던 것이다. 강 화백은 경주의 풍광과 경주지역의 문화재를 소재로 한 작품과 고향의 풍경 등을 자주 그려왔다. 삼베나 모시, 염색천, 오징어껍질(오피도) 등의 다양한 바탕면을 사용한 강 화백의 작품에서는 자연과 문화재에 깃든 역사의 숨결을 보다 효과적으로 담고자 고민한 흔적과 노력이 엿보인다. 기존의 기운생동을 추구하는 수묵화 작품이 아닌 채색화 작품으로도 경주의 소소한 이야기를 담아내며 새로운 감각과 역량을 보여주기도 했다. 또 신라유적의 대표적인 특징을 담아 작품으로 귀결시키기도 했다. 1979년 제1회 신라미술대전에 출품·입상을 시작으로 대한민국 미술대전 및 경북도전 등 다수 공모전에서 수상한 바 있으며, 신라미술대전, 포항불빛대전 심사위원을 역임했다. ‘울릉도, 독도 실경전(2005)’을 시작으로 ‘죽필로 간 경주 남산전(2011)’ ‘주왕산을 그리다(2015)’ ‘문화의 향기전(2018)’ ‘계림전(2021) 등 8회의 개인전과 300여 회의 국제 교류전 및 아트페어, 단체전을 가진바 있다. 현재 한국미술협회, 무명회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한국화 묵연회 회원들을 지도하며 후학양성에도 열정적으로 힘쓰고 있다. 경주예술의전당, 야송미술관, 경북교육연수원, 경주교육지원청에 작품이 소장돼 있다. -동남산에서 시작해 서남산까지 너비 105미터, 세로 1미터의 방대한 대작으로 남산일주대관도 제작.. 파노라마식 엄청난 대작이자 대표작// 일탈의 필치와 자유로운 공간관이 특징 선생은 1976년부터 운원 이재건 화백의 사사와 영향을 받는다. 이재건 화백과의 인연은 수묵화의 입문으로 이어진다. “제게는 그림의 스승이자 아버지 같은 분이셨지요. 화풍뿐만 아니라 삶을 살아가는데도 많은 지침이 됐어요. ‘예술은 지성이다’라는 말씀을 자주 하셨는데 예술은 지성이 겸비돼야 완성된다는 말씀이셨죠”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화업의 길에 들어섰습니다. 50여 년 화업의 출발이었던 것이지요. 교직에 있는 동안에는 주로 밤이나 새벽에 작업했습니다. 1982년 국전에서 수상하기도 하고 미협회원으로 열심히 활동할 정도로 힘든 줄 몰랐고 작업이 늘 즐거웠습니다” 2005년 울릉도· 독도 실경전으로 첫 전시를 가진 강 화백은 초기부터 색을 강하게 사용하며 다양한 색을 활용해 구사한다. 2003년 울릉도 태하초등학교 교장으로 첫 부임하면서 울릉도에서 접한 자연의 느낌을 그대로 반영해 거침없이 표현해낸다. 산수에서는 잘 쓰지 않던 보라색은 당시의 심상을 표현한 색이었다. 1년 동안 머문 울릉도에서의 작업은 엄청났다. 시간이 날 때마다 울릉도의 산과 바다를 섭렵하면서 스케치했다. “울릉도에서 제 자신만의 필력을 발견했습니다. 특별하게 산수를 따로 학습하지 않았기 때문에 정형화된 전통적 화풍이 제겐 없습니다. 제 나름대로 보고 확립한 것이 나의 ‘준(皴)’인데 이때 발견한 것입니다” 강 화백의 준(皴)은 스승인 이재건 화백의 당시 전시평에서 잘 대변된다. “오늘의 산수화가들은 전통적 산수화법의 관례를 깨트리지 않고서는 현대회화의 계열에 나란히 있을 수가 없다. 범정도 단순화된 과감한 준법(皴法)에서 이를 찾아볼 수 있다. 이는 작가가 자연을 보는 직관력의 자신감에서 오는 것이다. 현장의 감동이 실사로 체득된 경지에서의 필운이 화면에 기운생동으로 흐르고 있음이 분명하다”고 설명했다. 또 “흉중의 표현을 붓 가는대로 맡겨 얻어지는 것으로 현장의 감동과 영감의 순간적 표현을 속필로 나타낸다. 직관적 감흥이 식기 전에 그릴 수밖에 없는 표현주의적 성향이다”라고도 평했다. 2009년 국내의 산을 두루 찾아 스케치한 풍경도 모두 100호 이상의 대작만으로 실경으로 그려냈다. 이후 2011년 퇴임전인 ‘죽필로 간 경주 남산전’에서는 2005년부터 2007년까지 제작한 남산유적도와 남산일주대관도를 전시하게 된다. 남산유적도를 그리기위해 한 달 정도 남산의 구석구석을 다니면서 그린 남산 속 곳곳의 유적도는 현장 답사를 통해 탄생한 역작이었다. 남산일주대관도는 파노라마식의 대작으로 동남산에서 시작해 서남산까지 너비 105미터, 세로 1미터의 방대한 작업을 한 폭에 그려낸 강 화백의 대표작으로 손꼽힌다. 2005년 봄부터 겨울까지 1년을 꼬박 골짜기마다 걸어 다니며 스케치를 하고 2006년 그 대장정을 마무리 한다. 2007년 화선지에 옮기기까지 서남산 기슭에 있는 오죽의 뿌리로 죽간필을 만들어 변화무쌍한 남산의 모습을 담는데 꼬박 2년의 제작 기간을 보냈다. 이는 1972년 경주에 정착하면서부터 35여 년간 수시로 남산을 다니며 모아둔 데이터의 축적이었고 수없이 다니며 관찰한 경주 남산의 대 풍경이자 장관이었다. “화선지 두루마리 열 장을 연결하니 길이가 10,550cm(105m)이고 폭이 95cm로 한 눈에 보기에는 어려울 정도의 대작이었습니다. 경주에서 산지 50여 년, 경주가 주는 자연과 문화의 혜택에 조금이나마 보답하고 싶은 마음에서 남산을 굽이굽이 파헤쳐 이 작품을 남기고 싶었습니다” 남산일주대관도는 선생의 화업 역량을 한꺼번에 보여주는 역작임에 틀림없다. 흔히 동양화론적 관념적인 투시법에서 벗어나 상하종횡의 시점 이동을 남산을 일주하면서 바라본 감동 즉 출렁이는 준령의 성격을 잡아내고자 했던 것. 현재까지 이 작품의 제작규모는 국내서 최고의 볼륨을 자랑하는 작품이라고 알려져 있다. 경주는 끝이 없는 작품의 소재지라는 강 화백은 “아직 도달하고 싶은 경지는 끝이 없어요. 갈수록 어렵고 새로워요. 문화재와 연계된 이미지 작업도 계속 하고 싶습니다. 소재가 무궁무진한 이 작업은 지금도 하고 있어요”라고 했다. “경주 문화와 연계된 전시공간이 있다면 그 전시장에서 ‘남산일주대관도’를 한 번 더 전시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경주는 제겐 매우 의미있는 작업 대상입니다. 언제나 경주에 대한 사랑과 열정, 신념을 가지고 그립니다” 강 화백의 그림에 대한 궁국적 결론은 ‘자기 고백적 일기’라고 설명했다. 화가 자신에게 솔직하고 대상에 대한 진솔한 작가의 마음이 투영돼야 한다는 것이다. “어떤 대상을 그리든 솔직하고 진정성 있게 일기 쓰듯이 그립니다. 주위에 있는 재료를 활용하고 재료에는 구애를 받지 않아요. 그러나 역시 먹 작업이라고 봅니다. 수묵이죠. 결국은 먹으로 돌아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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