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동북아에는 신석기 시대 이래 샤머니즘적 문화가 주류를 이루고 있었다. 이러한 샤머니즘적 요소가 문자로 정착시킨 것이 향가였다. 일본 만엽집 속의 향가 역시 동북아의 샤머니즘적 제의문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었다. 몇 천 년의 샤머니즘 사회에 유교와 불교문화가 들어오면서 샤머니즘적 요소를 습합해 나가기 시작하였다. 특히 신라의 향가에는 불교적 요소가 유교와 샤머니즘적 요소를 상당 부분 대체한 상태였다. 불교 문화가 꽃을 피울수록 향가는 샤머니즘적 고유성을 잃고 쇠퇴해갔다. 그러나 일본 만엽집에는 신라와 달리 샤머니즘과 유교적 요소가 강하게 남아 있었다. 만엽집 향가에는 불교적 색채가 거의 보이지 않았다. 한반도의 향가와 만엽집 속의 향가를 검토해봄으로써 불교가 한반도에 끼친 영향을 살필 수 있고 불교 이전의 샤머니즘과 유교 문화를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우리는 만엽집의 향가를 통해 불교가 들어오기 전 동북아에서 주류문화를 이루고 있던 샤머니즘의 모습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샤머니즘과 유교와 불교라는 세 가지 문화요소가 어떠한 과정으로 대체와 습합이 이루어지다가 우리 문화의 뿌리가 되었는지를 알 수 있게 될 것이다. 일본인 역시 만엽집의 작품들이 향가라는 사실을 인식하게 됨으로써 일본 민족의 정체성이 어떻게 이루어 졌는지 깊이 있게 알 수 있게 될 것이다. 한국인과 일본인 모두가 자신의 옛 얼굴을 정확히 알 수 있게 되는 것이다. 향가를 통해 두 민족 간 상호 이해와 우호선린의 한 기반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더욱이 경주시의 경우 일본의 향가의 본거지인 나라와 교또와 함께 향가를 매개로 교류의 폭을 넓힐 수 있을 것이다. 필자가 만엽집을 해독하고 있다 하니 한 유력 언론인이 곧바로 물어왔다. 옛날 이영희교수가 조선일보에 칼럼으로 게재한 `노래하는 역사`에서 언급한 `만엽집이 고대 한국어로 되어 있다는 주장이 맞더냐`는 질문이었다. 이럴 정도로 만엽집의 한반도 언어 관련설은 뜨거운 관심을 보이는 사안이다. 향가가 한반도에서 일본으로 흘러들어간 점은 분명한 것으로 판단된다. 결정적 증거는 신라향가 창작법은 한반도 고대언어를 기반으로 이루어져 있었고, 만엽집 역시 한반도 고대언어를 기반으로 한 향가 창작법을 설계도로 하여 만들어져 있다라는 점이다. 이 사실은 향가가 한반도에서 일본으로 전파되었다는 것을 뜻한다. 신라 향가와 만엽향가에는 한반도 고대언어가 전면적으로 쓰인 게 아니라 보조적으로 사용되어 있었다. 한반도 고대어는 비록 우매한 자를 심원한 향가의 세상으로 이끌기 위한 방편으로 사용되는데 불과하였지만, 고대 언어 연구자들에게는 고대 한반도어에 대한 영감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특히 만엽집 속의 향가는 한반도에서 건너간 도거인(渡去人)들에 의해 다수의 작품들이 창작된 것이 거의 확실 하였다. 백촌강 패배 이후 한반도로 부터의 도거인(渡去人) 유입이 상당수 있었고, 당시 일본 사회에서 한반도어는 문화어로 사용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백촌강 패배이후 100여 년이 지날 무렵 향가가 사라지게 된 데는 한반도 언어를 구사하던 사람들이 점차 소멸된데 기인하였을 것이다. 향가의 존재에 필수적이었던 한반도어의 인적 기반을 상실한 것이다. 향가는 표의 문자와 한반도 언어를 기반으로 만들어지는 작품이었다. 논의를 확장시키면 만엽집은 상당부분 고대 한국어를 기반으로 이루어져 있기에 우리나라의 문화유산으로 보아도 과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그러나 이 점은 고대 일본어가 얼마나 향가에 깊은 영향을 주었는지 별도의 연구 후에 결론 내려져야 할 것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한반도어를 모태어로 하지 않고는 만엽집의 이해에 어려움을 겪을 수 밖에 없다는 점이다. 만엽집의 해독은 한국인과 일본인이 협조가 필수적이지 않는가 생각된다. 향가 창작법에 의한 향가의 전면적 재해독은 필연적으로 닥쳐올 미래일 것이다. 향가는 한일 두 민족 문화의 최고(最古) 원류에 해당된다. 이토록 중요한 것이 지금까지 잘못 해독되고 있었다. 향가가 첫 해독된 지 103년이 흘렀다. 일본의 경우 1070년이나 흘렀다. 이 기간 동안 두 나라의 향가 해독은 모두 표음문자 가설에 기반을 두고 이루어졌다. 한일 양국의 연구자들은 너무 많은 시간과 노력을 쏟아 부었다. 그러나 그것은 잘못된 가설에 의한 것으로 판명되고 있다. 그러기에 향가이든 만엽집이든 다시 원점에서 해독을 시작해야 할 것이다. 항공기 비행에 있어 귀환불능점이란 것이 있다. 비행기가 출발했다가 너무 멀리 가서 연료부족 등을 이유로 다시 출발지로 돌아갈 수 없는 지점을 말한다. 향가는 한일 두 민족에게 귀환 불능점이 있는지 여부를 시험하는 요소이기도 하다. 어느 연구자가 필자에게 말했다. 너무 긴 세월 연구해 놓았기에 비록 잘못되었다고 하더라도 다시 처음으로 돌아갈 수 없다고 했다. 비록 당신의 이론이 옳다고 하더라도 현재의 상황에서는 받아들일 수 없다고 까지 하였다. 한일 두 민족이 반환 불능점에 대해 어떤 차이를 보이는지 관찰해 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이다. 필자는 일본은 어떠할지 모르지만 우리는 반환 불능점이 없는 민족이라고 믿고 싶다. 향가는 표의문자로 기록되어 있었다. 만엽집은 향가였다. 이것이 그간 칼럼의 결어이다.*오늘로써 향가와 만엽집에 대한 칼럼을 마치게 되었다. 졸필을 읽어주신 독자 여러분께 감사드린다. 지난 6개월간 진행된 총 25회의 칼럼 중 부정확한 사실이 있었다면 죄송스럽다는 말씀을 드리며 용서를 빈다. 아울러 필자에게 지면을 허락해주신 경주신문에 깊은 감사를 드리며 향가의 힘에 의해 더욱 큰 발전이 있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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