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즈음 동네 골목 여기저기선 알 수 없는 꽃향들이 은밀하게 흩어져 나옵니다. 바야흐로 만화방창의 시기가 다가왔다는 속삭임들이죠. 봄은 꽃들만의 계절이 아닙니다. 우리 주변에서 무심하게 이 땅을 지켜온 수많은 문화유산들도 기지개를 켜는 시간이거든요. 그 중에서도 신라의 품격을 짐작할 수 있다는 경주장항리사지를 찾아 고즈넉한 봄 기운을 느껴보세요.
한수원 본사 입주 이후 담장 하나를 두고 별개의 공간이 펼쳐지는 양북면 장항2리에는 장항리사지와 국보 236호인 장항리 서 오층석탑이 있습니다. 토함산 동쪽으로 내려온 산줄기에 쓸쓸하고도 적막한 절터 하나가 바로 그곳입니다. 유홍준 교수는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1’에서 성덕대왕신종(에밀레종)종소리, 진평왕릉과 함께 폐사지인 장항리사지를 꼽으면서 ‘이 세 가지를 잘 음미해야 신라 문화의 품격을 알 수 있을 것’이라고 썼습니다.
장항리사지는 현재 법당터를 중심으로 동서에 탑 2기가 남아있습니다. 1923년 도굴범에 의해 붕괴된 것을 1932년에 복원이 가능한 서탑만을 새로 복원했다고 합니다. 절터가 있는 계곡은 대종천의 상류로 감은사터 앞을 지나 동해에 이르고요. 경주를 안다고 하는 이들도 이 곳 장항리사지 폐사지를 아는 이는 드뭅니다. 그리고 잘 찾아가지 않습니다.
폐사지의 연화대좌에 조각돼 있는 주먹 불끈 쥔 천진난만한 사자는 익살스럽게 웃고 있어서 저도 모르게 슬며시 사자를 보며 따라 웃어봅니다. 장항사지 동탑 주변에는 탑의 여러 부재들, 즉, 면석부분 2개, 탑신, 지대석인 하대부분, 옥개석 받침 일부분 등이 흩어져 있었습니다. 석재 여기저기엔 아직 생장하고 있다는 고착 상태의 이끼류가 저승꽃처럼 끼어 영원성을 더했구요. 동탑의 탑신을 어루만지며 그간의 상흔을 위로해 봅니다. 신라시대 뭉툭한 장인의 손끝에서 피어올랐을 예술혼이 손끝으로도 전해지는 듯했습니다. 무심히 나뒹구는 와편에서도 당시 장인들의 손길은 그대로 남아있으니까요. 기와를 만들며 물로 문지른 자국, 타격 자국, 기왓장 뒷면에는 삼베의 섬세한 조직과 삼베로 누른 자국 등이 화석이 된 그대로였습니다.
경감로가 나기 전에는 무심히 지나가다가 이곳 절터를 많이 찾았는데 요즈음은 답사팀들이 찾고 있는 정도라고 합니다. 절터로 오르는 길은 자연석을 이용해 조성된 길을 거쳐 경사가 급한 지형에 그대로 데크로 길을 만드는 등 정비돼 있는 모습입니다. 이처럼 단장되기 전에는 계곡으로 내려가 다리를 건너고 경사가 몹시 가파른 오솔길을 따라 비지땀을 흘리며 올라가야 했지요. 주민들은 경감로가 신설된 이후부터는 탐방객이 줄었지만 토함산 수목경관 숲이 완성되면 토함산자연휴양림과 함께 연계관광지로 더욱 각광받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습니다.
글=선애경 문화전문기자 / 그림=김호연 화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