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은 마천루와 반듯한 길, 노란색 택시와 자동차의 물결 그리고 한 손에 커피를 들고 바쁘게 거리를 활보하는 ‘뉴요커’로 묘사되는 현대도시의 대표적 상징이다. 뉴욕증권거래소가 위치하는 세계 금융의 중심지이자 유엔본부가 있는 국제외교의 무대다. 역사적으로는 아메리칸드림을 찾아 타 대륙에서 건너온 이민자들이 뉴욕항으로 들어오면서 가장 먼저 만나게 되는 자유의 여신상이 세워진 자유와 희망의 도시이기도 하다. 이뿐만이 아니다. 브루클린 다리,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타임스퀘어와 같은 도시의 유명 경관과 명소는 뉴욕을 아름답고 멋지고 매력적인 도시로 소개하는 데 모자람이 없다. 뉴욕을 설명하는 데는 이보다 더 많고 다양한 수식어가 붙을 수 있겠지만 이 도시가 가진 여러 가치 중 필자가 주목하는 것은 바쁨 속에서도 쉼과 여유를 가질 수 있고 새로운 것 속에서도 오래된 것이 빛을 발하는 길과 공원이다. 뉴욕 맨해튼 섬의 중심부에는 남북 4.1km, 동서 0.83km의 대규모 공원인 센트럴 파크가 도심 속 허파와 같이 자리하고 있다. 센트럴 파크를 설계한 ‘프레더릭 로 옴스테드(Frederick Law Olmsted, 1822-1903)’는 맨해튼에 공원을 만들어야 하는 필요성을 설명하기 위해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고 한다. “지금 이곳에 공원을 만들지 않는다면, 100년 후에는 이 넓이만큼의 정신병원이 필요할 것이다” 그의 말은 적중했고, 센트럴 파크는 마천루 숲속의 복잡함과 바쁨에 익숙한 사람들에게 자연과 휴식, 문화를 즐길 수 있는 장소가 되었다. 센트럴 파크만큼이나 뉴욕이라는 도시를 매력적인 공간으로 만든 것이 있다면 바로 브로드웨이라는 길이다. 브로드웨이는 현재 뉴욕의 연극과 뮤지컬 중심거리인 42번가로 인해 뉴욕의 뮤지컬 분야를 일컫는 대명사로 사용되지만 실제로는 맨해튼의 격자형 도시구조를 남북으로 비스듬히 가로지르는 옛날 길을 가리킨다. 동서의 스트리트와 남북의 애비뉴로 규격화된 도시구조와 형식을 깨뜨린 옛길 브로드웨이는 반듯한 길들과 만나는 지점에서 유니온스퀘어, 타임스퀘어와 같은 매력적인 공간들을 만들어내며 지루한 도시에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얼마 전 경주 황리단길 지인의 식당에서 밥을 먹고 내남사거리를 지나 봉황대 쪽으로 걷는데, 몇 해 전 센트럴 파크에서 본 것과 같은 장면을 마주하게 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봉황대 잔디밭에 자리를 깔고 누워 쉬고 있었고 아이들은 깔깔거리며 뛰어다녔다. 젊은 커플들은 잔디 위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담소를 나누는 여유롭고 평화로운 모습이었다. 그 순간 고대 봉분의 공원과 황리단길이 뉴욕의 센트럴 파크와 브로드웨이 같은 역할을 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뉴욕 같은 대도시와 한국의 중소도시가 비교될 수 있겠냐는 질문이 있을 수 있지만 사람들의 기본적인 습성은 같다. 사람들은 걷는 것을 좋아하고 큰 가게보다는 작은 가게에 호기심을 가진다. 그리고 도시의 복잡함 속에서도 넓은 뜰에서의 자유로움과 초록색 자연을 찾고자 한다. 이미 사람들은 황리단길과 봉황대 공원에서 새로운 가치를 발견하고 이를 제대로 활용하고 있다. 황리단길이 아기자기하고 복잡스러운 재미와 즐거움을 제공해준다면 길 끝에 있는 봉황대 지역은 여유와 휴식의 공간을 마련해주고 있었다. 황리단길도 실은 경주읍성의 남문에서 시작하여 남쪽 지역으로 가는 유서 깊은 옛길이다. 옛길과 쉼터가 만나는 이 매듭을 잘 가꾼다면 충분히 뉴욕의 길과 공원 같은 매력적인 공간이 만들어질 수 있다. 하지만 아직 황리단길의 활력이 북쪽으로 뻗어가지 못하고 있다. 센트럴 파크가 주변의 박물관, 미술관, 유명 상점들과 소통하면서 사랑받는 공간이 된 것처럼 봉황대 공원 주변에도 여유와 휴식을 취하던 이들이 들릴 수 있는 아기자기하고 재미있는 가게들이 다시 들어설 필요가 있다. 남쪽의 황리단길은 이제 단순한 길을 넘어 인근 골목으로까지 모세혈관처럼 젊은 기운이 퍼져나가고 있다. 철거로 휑한 땅에 다시 가게들이 들어서고 이야기가 만들어질 수 있다면 남쪽 황리단길의 활기가 북쪽으로도 전달되지 않을까?
주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