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사노바 풍 음악이 듣고 싶은 ‘통통’ 튀는 봄이다. 이 봄 ‘갤러리 화(龢, 경주시 원화로 344)에서는 중견 이상수(54) 작가를 ‘Beside 경주’ 전으로 초대했다.
이상수 작가는 결코 편해 보이지 않는 권좌 ‘The Throne’ 등 선인장으로 표현한 작품을 선보이며 비판적, 사회참여적인 발상과 신선한 전시콘텐츠로 색다른 존재감을 드러내는 조각가이자 화가다.
이번 전시에서 이상수 작가는 조각도가 아닌 펜과 연필을 사용해 경주의 친숙하지만 주목하지 않는 풍광들을 특별한 감성으로 섬세하게 재현해냈다. 그의 회화 작품 앞에 서면 작품에 스며든 작가의 치밀한 손길과 호흡을 함께 느낄 수 있는데, 조각가로서의 면모를 단편적으로 보여주는 작품 두 점도 함께 전시되고 있다.
이번 전시로 이상수 작가를 평하기엔 부족하다. 우리에게 보여주지 않은 그간의 작업이 너무 많은 까닭이다. 이상수 작가는 기발한 아이디어나 해프닝적 요소, 한때의 반짝임보다는 전통적인 작가적 열정을 지니기를 꿈꾼다. 그러나 반짝임도, 포스터모던도 높이 평가하기 시작했다는 이상수 작가는 그렇게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은 달라졌으나 작업은 그렇지 못하다고 고백한다. 쉽게 변화하지 못했고 그것에 대해 좌절하고, 다시 일어서길 반복했었다는 그는, 그래서 그 악명 높은(?) 전업 작가다. 그의 눈빛엔 늘 작품에 대한 열정으로 가득한가 하면, 진한 허기도 함께였다. 비정형에서 정형을, 정형에서 비정형을 찾으며 고향 경주에서 구현해 갈 그의 작품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덕분에 여러 차례 이상수 작가를 만나는 행운을 얻었다.
-주목하지 않았던...또 다른 비사이드(beside)적 경주 풍경, 갤러리 화(龢)에서 선보여 갤러리는 어떤 작가를 만나는가에 따라 그 분위기가 달라진다. 전시 기간 동안 각기 다른 작품들이 관람자를 완전히 다른 세계로 인도하기 때문이다. 원화로 대로변 길거리를 지나치다 문득 발걸음을 멈추게 하는 카페&갤러리 화(龢)는 이상수 작가의 체취로 가득하다. 운이 좋은 날이라면 작가와의 대면을 통해 작품의 내밀한 이야기를 들을 수도 있겠다.
이번 전시는 다음달 11일까지 회화 10점과 조각 작품 2점을 선보인다. 선인장으로 표현된 조각 작품은 조각가로서의 면모를 단편적으로 보여주는 작품들로 행인들의 시선을 단박에 뺏는다. 이 중 조각작품 ‘권좌(The Throne)’에는 관람자가 직접 앉아볼 수 있도록 했다.
그리고 10여 점의 회화작품은 지금껏 보아왔던 경주 풍경의 평범함에서 벗어나 있다. 관람자에겐 다소 생경한 시각으로 비쳐질수도 있을듯하다. 치장된 경주의 정형화된 틀을 벗어나는 작가의 시각에서 그린 작품들에선, 화장기 없는 경주의 민낯을 대하는 느낌이 든다. 태어나고 자란 경주의 풍경을 소재로 하고 있지만 우리에게 익숙한 경주의 풍경과는 사뭇 다른 작품들은 작가의 시선 자체가 경주를 낯설게 보는데서 출발했다.
타자가 주목하지 않는 풍경, 즉 비사이드(beside )적인 경주의 풍경들이 대부분인 것. 우리의 시야에서 다소 비껴나 있는 경주 풍경을 애정어린 시선으로 관찰해 그 속에서 작가만의 미감을 끌어냈다. 그의 시선을 따르다보면 어느새 경주 산야에서 오래된 흑백 사진 같은 새로운 아름다움에 주목하게 된다.
또 보편적 아카데미의 전통 즉, 표현양식이나 채색에서 멀찌감치 벗어난 이번 전시에서 작가만의 독창적인 조형성을 구축해내고 있다. 주재료로는 펜과 연필을 사용했는데, 이전까지 전공한 조각 대신 펜과 연필, 목탄과 아크릴, 파스텔 등의 재료로 화선지와 하드보드지에 표현해내는 새로운 시도에 도전한 것이다.
천북 동산리의 소나무, 금척리 작은 언덕 위 소나무, 계림숲, 서출지, 반월성, 주사암 소나무, 2월의 형산강, 선덕여왕릉 가는 길 등에서의 작품들에선 회고적인 이미지가 잔잔하게 번져 감성을 자극한다.
“전 세밀한 묘사에 능한 편입니다. 그 작업을 잘할 수 있는 신체적 여건이 허락할 때까지 잘 할 수 있는 작업으로서 그림을 충분히 표현해두고 싶어요. 점진적으로는 달라질 수 있겠지만요”
-“소위 ‘촌놈’ 기질의 우직함으로 크게 인정받은 적도 있었습니다” 이상수 작가는 어려서부터 그림을 잘 그렸다. 단연 뛰어났다. 1968년 황오동에서 태어나 자란 그는 경주 토박이다. 고교때 신라문화제 미술대회서 대상을 수상할 만큼 그림에 재능을 보였던 그는 1987년 홍익대학교에서 조각 전공을 시작으로 동 대학원을 수료하고 안산을 거점으로 오랜 기간 조각가로서 작품 활동을 펼쳐왔으며 지금까지 조각 작업을 하고 있다. 경기도 안산을 거점으로 미술학원을 운영하는 등 17년간(30대 중반의 대학원 시기 포함) 작품활동을 왕성하게 펼치며 30대 전후를 보냈다.
“스물아홉때 인사동의 지명도 높은 갤러리에서 신진작가 등용 공모전 작가 40명 중 당선됐죠. 그땐 다 잘 될 줄 알았어요”
그도 한 때 자신만만하고 장밋빛으로 넘쳐 패기가 넘치던 시절을 거쳤다. “마흔이 넘으니 세상이 뜻대로 안되더라구요. 주변의 다른 작가들을 인정하기 시작했어요. 대외적으로 작품 홍보도 잘할 줄 몰랐고 ‘한 방’을 노리기도 했습니다”고 고백한다.
“문화 취향과 구조가 다양해진 현대인들에 저희 세대 작가가 추구해 온 전통과 가치가 혼돈스러워졌죠. 제가 쉽게 시류를 좇지 못했던 것에 비해, 숭고미를 추구하면서도 새로운 일가를 이루는 작가가 더러 있어 부러웠습니다. 제도권 모더니스트 계열의 마지막 세대로 교육 받았고 소위 ‘촌놈’ 기질의 우직함으로 30대까지는 인정받은 적도 있었습니다” 그랬던 그는 12년 전, 마흔 둘에 조형작업물 의뢰로 우연하게 경주로 돌아온다.
-“쉰에 그림을 본격적으로 시작하다보니 조급해져요” ‘파격적인’, ‘생소한’, ‘낯선’ 것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 “미술 경력으로는 중견이지만 그림으로만 보면 늦다고 할 수 있어서 그냥 ‘초보’라고 합니다” 요즈음 그림에 대한 스트레스가 심하다는 그는 독창성과 창의성을 구현해야 한다는 강박이 있다고 고백한다. 다른 화가와는 차별화되는 작품 구상에 대한 부담을 솔직히 토로했다.
좀 더 ‘파격적인’, ‘생소한’, ‘낯선’ 것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하고 있는 것이다. 스스로에 대한 주문도 많고 어렵다는 이 작가는 그림과 조각 생각으로 밤을 지새울 때도 많다고 했다.
그는 조각 작업을 했던 작업장의 한계로, 40대 후반부터는 다른 작업으로의 전환을 꾀하게 되었고 회화를 시작하게 된다. 그 출발로서 가장 잘할 수 있는 재료인 펜과 목탄을 사용해 풍경화로 가볍게 접근하기 시작했다.
“하루 13~14시간씩 그릴 정도로 너무 행복합니다. 그러나 점점 내가 잘 그리는 그림에서, 제 취향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해졌습니다. 차별화와 현대적 회화에 대한 고민이 깊어졌죠. 중압감이죠. 또 다른 재료에 대한 고민, 실험적 돌파구에 대한 중압갑이 지금도 진행중입니다. 새로운 작업장(현곡면 소재)이 완성되면 더욱 실험적인 작업을 확장해서 시도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예술은 시대 반영해야”...“작가의 시각으로 바라보는 사회현상들을 조각으로 표현할겁니다” 이 작가는 또, 우리 사회에 만연한 권력욕과 갈등 등 메시지가 강한 조각 작업도 이어갈 것이라고 했다. 그는 ‘예술은 시대를 반영’하여야 한다며 정치나 사회현상에 관심이 많은 작가로서 사회참여와 함께 예술성이 동반되는 작업을 추구해 온 작가다.
“시대를 반영한다는 것은 작업의 성향일수도, 사조로선 현대미술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우리가 이 시대에 당면하고 있는 가장 큰 이슈를 반영한다는 의미로, 작가의 시각으로 바라보는 사회현상들을 작품으로 표현할겁니다”
한편, 2020년에는 ‘나도 왕이다!(2000, 170 x 85 x 80, 35kg, 합성수지에 아크릴, ‘제19회 대한민국미술대전’ 입상작)’라는 조각 작품이 국가기관인 국립현대미술관에 소장되기도 했다. 날카로운 풍자를 통해 혁명의 타락과 과장을 명쾌히 그려낸 조지오웰의 대표작 ‘동물농장’에서 영감을 받아 제작한 작품이었다.
그는 또 “판매를 염두에 둔 작업도 중요하지만 반드시 알려지고 유명해져야만 훌륭한 화가는 아닙니다. 유명하지 않아도 주목해야 할 작가가 많이 있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될 것입니다”라고 했다.
-에필로그...취재 그 후 쉰을 넘긴 그는 여전히 기존의 관념에 따르기를 싫어하는 반항적 이미지를 풍긴다. ‘매너리즘’을 거부한 발로일까. 쉽게 세상에 길들여지기를 꺼려했던 그가 이제는 사랑하는 여인을 만나 행복해하며 고향 경주에서 ‘순둥순둥’ 살려 노력한다. 매진해왔던 조각 작업도 하고 경주의 풍광을 이곳저곳 들추며 그림도 그리면서 말이다.
그러나 작가로서 날카로운 발톱은 여전히 감춘 채다. 커다란 불덩이 하나를 가슴에 품고 있는 듯한 그의 화가로서 진가는 아직 시작에 불과하다. 아직도 자신을 마이너로 규정짓는 그는 겸손해졌다. 뒤섞여 살 수 있는 여유가 이제는 엿보이는 대목이다. 그는 예술 전반에 대한 담론을 즐기면서 대체로 심각한 표정이었다. 무의미한 비판은 경계하면서.
이미 화화에서도 인정을 받은 터인 그에게 지역 출신임에도 ‘조각이나 하지’ 라는 곱지 않은 편견을 내비치기도 한다. 그러나 이런 과정은 지역의 화단에서도 신선한 자극제로 작용하고 있다. 작가로서 한계치를 끌어 올리는 작업을 시도하고 있는 그에게선 도전하려는 패기를 엿볼 수 있다. 성향적으로 자신을 비주류였다고 자처하는 그는 이제, 작품으로 경주 미술의 ‘주류’로 우뚝 설 것으로 보인다.
“미술을 해서 생존할 수 있으면 너무 좋겠습니다”라는 표현에선 작은 조형물 작업도 감사하게 작업하려는 연유를 짐작할 수 있다. 그의 진한 고민과 실험적 도전이 어디까지 진행될지 예측하기 어렵다. 원로작가와 후배작가를 잇는 중간 역할자로 역할해주길 바라며 여전히 거친 야생의 작가로 남아 줄 것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일까. 그런 이 작가를 많이 좋아해서 친해졌다. 가장 잘한 일로 ‘술 끊고 결혼한 것’이라는 작가의 앞날에 길이 행운 깊어라. #####이상수 작가는 서울 관훈미술관, 큐브갤러리, 갤러리그림손 등에서 개인전을 가졌으며 북경아트살롱, 대한민국청년작가축전, 한국현대조형작가회전, 부산국제아트페어 등 국내외 아트페어와 기획전, 다수의 그룹전에 참여했다. 평택 해군사령부 조형물 설치 외 다수의 조형물 작업에 참여했으며 정부미술은행(국립현대미술관)에 작품이 소장돼 있다. 벽화 작업도 다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