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봄은 악몽이었습니다. 코로나19의 시작이었으니까요. 올해 봄도 그리 사정이 나아지진 않았지만 그래도 우리는 훨씬 희망에 부풀어 있는 것 같습니다. 더디게 꾸물거리며 봄이 다가오고 있어 맘에 들진 않지만 한겨울 시린 기운을 뚫고 피어오르는 이른 봄꽃들을 보고 싶지 않으신가요?
화들짝 성큼 다가온 봄 마중을 위해 꽃 나들이를 나갔습니다. 꽃마중 가는 내내 봄기운처럼 푸근해지고 느슨해져서일까요? 스프링처럼 쏙쏙 솟아오르는 봄꽃들 속에서 어김없이 약동하는 생명력을 보았습니다. 곧 꽃으로 뒤덮일 경주의 산야에는 봄이 물오르고 있었습니다. 올해도 어김없이 우리 곁에 찾아온 경주의 봄은 노랑색으로부터 시작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경칩이 지난 경주의 들과 산을 수놓는 복수초, 산수유, 영춘화 등은 모두 노랑색이고 봄의 대표적 전령들이죠. 그 중에는 노랑보다는 은은한 매화의 색채들이 경주 곳곳을 수놓기 시작합니다. 율동 두대리 성주암자에선 독특한 동백들과 매화가 이미 개화를 시작하고 있었습니다. 기지개를 켜고 있는 봄꽃들의 근황 찾아 성주암에 들렀습니다.
율동 두대리는 서악동 태종무열왕릉에서 ‘소티고개’를 넘어 건천 방면으로 5분여 가다보면 만나는 유서깊은 마을입니다. 마을 주위를 병풍처럼 감싸고 있는 벽도산은 작지만 아늑하게 느껴집니다. 간이역이었던 율동역의 무인철도건널목을 지나고 마을회관 쪽으로 깊숙히 들어가면 이 마을의 당산목을 만납니다. 거기서 곧장 좁고 구불한 길로 오르다보면 오래돼 보이지만 정갈한 작은 암자가 그윽하게 나타납니다. 암자 입구서부터 은은한 매화향이 전해졌습니다. 자주 찾아가는 암자지만 이 암자를 찾을 때 마다 설렙니다. 그것은 사계절 내내 각기 다른 풍경을 감상하는 즐거움 때문일 것입니다.
이 암자는 일명 ‘성주암’이라고 불린다고 합니다. 바로 이 암자 뒤편 너른 바위에는 ‘경주율동마애여래삼존입상’ 석불이 자비로운 미소를 머금고 서 있습니다. 8세기 후반의 마애불인 이 입상석불은 볼수록 정감이 가는 마애삼존석불 입상이지요.
암자 주위의 다양한 꽃들과 꽃길은 어느 한 스님의 발자취라고 하는데요, 마을 주민의 말에 의하면 오래전 지어졌던 이 암자에 1980년대 말에 스님 한 분이 오셨고 스님은 무척 꽃을 좋아해서 희귀한 동백 여러 종과 매화, 목련, 수국, 명자나무, 옥잠화, 녹차나무 등을 심고 지극정성으로 가꿔 사계절 꽃으로 둘러싸인 지금의 성주암을 즐길수 있다고 했습니다. 바야흐로 목련은 꽃봉우리가 부풀어있었고 매화향이 진동하는 가운데 흔히 볼 수 없는 분홍과 짓붉은 겹동백이 꽃망울을 터뜨리고 있었습니다. 경칩 지난 경주 야생의 들과 산에선 바람꽃, 복수초 등 봄의 전령들 ‘쏙쏙’ 피어나고 있습니다. 깊은 우울의 그림자를 떨치기엔 봄꽃 만한 것이 없습니다. 성주암의 봄을 즐겨보세요.
글=선애경 문화전문기자 / 그림=김호연 화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