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페라는 16세기 끝에 이탈리아에서 탄생하여 17~18세기에 온 유럽으로 확산되더니 19세기에 낭만주의와 함께 마침내 전성시대로 돌입한다. 오늘날까지 사랑받고 있는 오페라는 18세기 말부터 20세기 초까지 대략 100년 동안의 전성시대 작품들이다. 전성시대는 오페라마저도 잘 쓴 천재 모차르트(W.A.Mozart/1756-1791)가 열었다고 볼 수 있다. 모차르트 이전의 작곡가들이 쓴 오페라 중 지금까지 무대에 오르는 작품은 별로 없기 때문에 하는 말이다. 이탈리아어로 된 다 폰테 3부작(피가로의 결혼, 돈 조반니, 코지 판 투테)과 독일국민을 위해 독일어로 쓴 마술피리는 가히 불멸의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오늘날에도 뜨거운 사랑을 받고 있다. 밀라노의 라 스칼라 극장은 오늘날 오페라 가수라면 누구나 서고 싶은 꿈의 무대다. 바로 이곳에 로시니, 도니체티, 벨리니와 베르디, 이른 바 이탈리아 오페라 4대 천황의 동상이 놓여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들은 이탈리아 오페라의 극전성기를 이끈 인물들이다. 오페라 종주국 이탈리아는 19세기 중반까지도 오페라 권력의 중심이었다. 로시니(G.A.Rossini/1792-1868)를 수장으로, 그의 제자 도니체티(G.Donizetti/ 1797-1848)와 벨리니(V.Bellini/1801-35)가 서로 경쟁하며 19세기 초중반의 오페라를 이끌었다. 그들은 소위 벨칸토 3총사라 불린다. 특히 도니체티와 벨리니는 광란의 오페라로 프랑스혁명 이후의 혼란한 사회상을 무대에서 극적으로 표현했다. 이어서 이탈리아는 오페라의 왕 베르디(G.Verdi/1813-1901)의 보유국이 된다. 그는 바로크 오페라처럼 성악에 편향된 벨칸토 오페라를 극복하고, 독일의 바그너와 경쟁하며 오페라를 역사상 최고의 경지로 이끄는 저력을 발휘한다. 베르디와 동갑내기인 바그너(R.Wagner/1813-1883년)는 일생을 이탈리아 오페라와 차별화를 시도했다. 이는 음악극의 창시로 이어졌고, 음악극은 극과 음악이 조화를 이루는 종합예술이었다. 바그너의 음악극은 니벨룽의 반지에서 정점을 찍었고, 온 유럽을 풍미했다. 이는 오페라 종주국 이탈리아의 자존심을 건드리는 일이었다. 이때 이탈리아가 전략적으로 내세운 인물이 바로 푸치니(G.Puccini/1858-1924)다. 하지만 푸치니는 베르디를 계승하여 위기에 봉착한 이탈리아의 오페라를 구하는 임무만 수행하진 않았다. 그는 바그너까지도 창조적으로 계승하는 내공을 발휘하게 된다. 또한 푸치니의 상상력은 유럽에만 머물지 않았다. 그는 일본, 중국, 미국을 배경으로 하는 범세계주의적인 오페라를 만들어 냈다.
푸치니의 또 다른 업적은 사실주의 오페라의 장을 연 것이다. 19세기 말 낭만주의에 싫증을 느낀 이들에게 사실주의 베리스모(verismo) 오페라는 훌륭한 대안이었다. 푸치니의 토스카와 외투, 그리고 프랑스의 천재 작곡가 비제(G.Bizet/1838-1875)가 만든 카르멘은 이전의 오페라와는 확연히 구별되는 보통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룬다. 이후 오페라는 오페레타, 뮤지컬과 같은 유사 장르의 탄생을 지켜보며 역사의 뒤안길로 접어든다. 푸치니는 마지막 오페라 작곡가였고, 결국 이탈리아는 구겨진 자존심을 회복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