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 피는 날                                   정민호 구름 안개가 내려오더니오늘 아침에 꽃이 피었다.꽃을 피우는 것은 하늘의 일하늘의 별이 내려와서 꽃잎에 달리고,벌들을 불러서 한바탕 봄을 노래하더니어느덧 꽃은 지고 열매를 맺는다.꽃나무에 피었던 꽃잎,다시 하늘에 올라 별이 되고별은 밤마다 내려 와 꽃을 피우고어젯밤 꿈속에서 지던 그 꽃잎은 오늘 밤 하늘에 올라 별이 되었다. -지상의 삶에 관여하는 하늘 팔순을 넘긴 시인의 1430쪽 짜리 전집을 읽는다. 그 중에서도 마음을 끌어당긴 것은 작년에 낸 열여덟 번째 시집 『엔더슨을 위하여』이다. 동명의 시에서 시인은 “그의 예술을 위하여/하늘에선 잘 익은 열매 하나가/‘툭’하고 떨어지고 있었다.”고 쓴다. 시인의 시관을 읽을 수 있다. 지상의 일들은 하늘의 일과 관련 속에서 이루어진다는 것. 팔순을 넘긴 시인은 지상의 일에 집착하지 않는다. 인간이 우주 속에서 존재한다는 것, 그 너른 시야를 획득하고 있는 것이다. 엔더슨 외에도 이번 시집에는 헤르만 헤세, 버지니아 울프, 로버트 프로스트, 반 고흐, 앙드레 지이드 같은, 치열한 생을 살다간 대가들의 이름이 많다. 그들은 모두 다 뜨거운 예술혼으로 죽음을 넘어서 산 사람이다. 그들은 죽었으나 하늘의 별처럼 빛난다. 시인은 왜 그 분들을 떠올렸을까? 당연히 그분들과 자신을 동일시하기 위한 전략이다. 이제 저 먼 곳의 부름을 알아볼 연치에 이르렀기에 시혼만큼은 그들만큼 뜨겁게 녹이고 싶은 것이다. 실제로 「눈 덮인 산정-헤르만 헤세에게」에서 시인은 “이 눈발 속에서/다시는 후회하지 않으리라, 나의 헤세여!”라고 하여 헤세와 자신을 구분하지 않는다. 그는 “추위 속에 불굴의 여름이 있음을”(「겨울 솜에 잠자는 ‘불굴의 여름’」) 온몸으로 체감할 정도도 활활 타오르고 있다. 그 근저에 순환론적인 세계관이 들어 있다. “들판으로 뻗어 내리는 그의 하늘이/다시 땅도 되고 하늘도 되고 구름도 되고…”(「반 코흐의 ‘스타미스카이’」)의 세계를 보아라. 놀라운 일이다. 시인은 어떻게 지상의 일들이 하늘의 일과 관련된다는 것을 알았을까? “구름 안개가 내려”(하강)와서 “오늘 아침에 꽃이 피”(상승)어난다. 하늘의 뜻이 관여하지 않으면 지상의 일들은 일어날 수가 없다. 그래서 시인은 “꽃을 피우는 것은 하늘의 일”이라 나지막히 읇조린다. 그뿐인가 “하늘의 별이 내려와서 꽃잎에 달”린다. 이 혜안! 지상의 개체(꽃)는 다른 개체(벌들)를 불러 자신의 생을 잘 산다. 그러나 그들은 다시 하늘로 향한다. “꽃나무에 피었던 꽃잎,/다시 하늘에 올라 별이 되”는 것이다. 아, 그렇구나. 우리가 하늘에서 온 존재이기에 다시 돌아가는구나. 천상병의 「귀천」처럼 말이다. 이 시는 시인이 지상과 하늘의 이치를 두루 깨닫고 있음을 보여준다. 지상의 삶은 고단하고 외롭다. 그래서 백양나무 나무껍질 갈라진 틈새로 매미잡기를 하던 아름다운 시절(「그 때 그 나무 한 그루」)를 떠올리기도 한다. 그러나 그는 인생의 겨울 ‘눈덮인 산정’이라는 정신의 극점을 통과하면서, “뜨겁게 떠나가면서/다시 한 번 영원을 노래하고 싶”(「뜨겁게 떠나가리라」)은 것이다. 그것은 지상과 천상이 관련되어 있음을 아는 자의 눈빛에서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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