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향가 창작법’이라는 통 속에 만엽향가를 집어넣고 촬영하면 엠알아이(MRI) 화면처럼 선명한 영상을 얻을 수 있다. 만엽집에 대한 전면적 재해독이 가능해진 것이다. 만엽집을 풀어낸다는 것은 그 자체로서도 중요한 의미가 있지만 또 다른 의미도 품고 있었다. 뜻밖에도 일본의 정사(正史)라 할 수 있는 일본서기의 일부 해독조차 바꿀 수가 있었다. 일본서기는 서기 720년 편찬되었으니 2020년으로 정확히 1300년 동안 읽혀진 책이다. 그 일부에 향가가 포함되어 있었다. 역사가들은 그것을 해독해 낼 수 없었을 것이니 만엽집 연구자들의 도움을 받았을 것이다. 그 해독이 바뀌게 된 것이다. 필자 스스로도 놀랐던 의미의 확장이었다. 문제는 향가 창작법에 의한 해독 결과와 지금까지 풀이한 내용이 전혀 다르다는 점이다. 이는 심각한 의미를 가진다. 정사(正史)란 한 나라의 정체성이자 정신이라 할 수도 있기에 그 해독은 방법이나 결과에 있어 조금의 문제도 있어서는 안 될 것이다. 정사에 관한 것이기에 해독법을 주장하는 사람이 한국인이냐 중국인이냐 하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이설이 나오면 그것은 극복되거나 채택되거나 둘 중 하나여야 할 것이다. 제명천황에서 사건의 일단을 들여다 본다. 제명천황은 나당연합군이 백제를 공격했을 때 백제지원 출병을 결정하고 직접 움직이기까지 한 여성 천황이다. 그녀에게 맏손자 건왕(建王, 651~658)이 있었다. 불행히도 그 맏손자가 7살이 되도록 말을 하지 못하더니 그만 사망하고 말았다. 백제 멸망 2년 전의 일이었다. ​ 일본서기는 이 사건에 대해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日本書紀 斉明 四年(658) 五月 皇孫建王 ...(중간 생략)...天皇時時唱而悲哭. 5월에 황손 건왕이 여덟 살의 나이로 죽었다... 이로 인하여 슬픔을 이기지 못하고 애통함이 극에 달하였다. 군신에게 `내가 죽은 뒤에 반드시 짐의 능에 합장하라`고 명하였다. 천황은 때때로 아래 노래들을 부르며 슬피 울었다.(이하 작품 3수 열거). 일본서기에 나오는 작품 3편은 한문에 의한 풀이로는 풀리지 않는다. 이들을 일본인들이 푼 것과 향가 창작법이 풀어낸 내용을 비교해 보시면 좋겠다. 첫 번째 노래는 다음과 같다. 伊磨紀那屢乎武例我禹杯爾俱謨娜尼母旨屢俱之多多婆那爾柯那皚柯武 일본인 풀이 : 금성(今城)의 작은 언덕 위에 구름만이라도 뚜렷이 끼었다면 어찌 이렇게까지 한탄하겠는가. 창작법 풀이 : 너에게 삼나무를 돌로 두드려 얻은 실 중 한 오라기를 주겠다. 전례에 따라 기어이 저승길 가고 있는 왜인들의 발걸음을 멈추게 하여 주막에서 배불리 먹이라. 그들과 함께 가야할 것이다. 머리를 써. 주막집에 멈추게 해 배불리 먹이라. 나의 뜻을 여러 번 되풀이하노니, 저승길 함께 가도록 하라. 많고 많은 사람들에게 밥을 주발에 담아 먹이라. 흰 밥을 주발에 담아 먹이라. 두 번째도 풀이가 서로 다르다. 伊喩之之乎都那遇舸播杯能倭柯矩娑能倭柯俱阿利岐騰阿我謨婆儺俱爾 일본인 풀이 : 화살 맞은 사슴과 멧돼지를 쫓아가다 맞닥뜨린 냇가의 어린 풀처럼 가냘프다고는 생각지 않았는데. 창작법 풀이 : 너에게 이르나니, 저승길 가다가 우연히 큰 배를 보게 되면 그 사실을 퍼뜨려야 하리. 가다가 왜인을 만나면 주발을 꺼내 (밥을 나누어 주어 함께 물가로 가야 하리. 산 길을 뛰어가야 하리. 저승배 닿는 물가로 가는 길 기필코 머리를 써서라도 다른 사람과 함께 가야하리.세 번째 작품이다.阿須箇我播瀰儺蟻羅毗都都喩矩瀰都能阿比娜謨儺俱母於母保喩屢柯母일본인 풀이 : 비조천(飛鳥川)의 물보라를 일으키며 흘러가는 물과 같이 끊임없이 생각나는 구나. 향가 창작법 풀이 : 물가로 가다가 저승배를 보게 되면 반드시 전파하라. 세차게 흐르는 강에 빠진 개미를 그물질하여 건져내서라도 함께 가라. 이르나니, 저승 가는 배 닿는 물가로 함께 가야하리. 응당 물가로 가는 길 함께 가야 하리. 머리를 써 사람들과 함께 가 몸을 보전해야 하리. 너에게 이르기를 되풀이하나니, 주발에 밥을 담아주어 사람들에게 먹여 함께 가야 하리. 한일간의 풀이 결과는 이토록 차이가 크다. 일본인들의 풀이는 크게 보아서 ‘슬프다’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향가 창작법으로 푼 내용에는 낯선 이야기들이 쏟아져 나온다. 이 사후세계는 그 당시 고대 동북아 공통의 문화였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 이야기는 불교가 들어오기 전 우리땅에도 있었으나 잊어버린 우리의 옛 얼굴일 수도 있다. 일본서기의 해독이 바뀌어져야 할 것이다. 다양한 분야의 검증을 거쳐 내려져야 할 것이다. 현단계에서 향가 창작법에 따르면 우리의 삼국사기라고 할 일본서기조차 새로이 풀린다는 사실을 말씀드리고자 한다. 일본서기에 따르면 ‘제명천황은 때때로 위의 노래를 부르며 슬피 울었다(天皇時時唱而悲哭)’고 하였다. 그녀가 홀로 저승길을 달려가는 손자에게 ‘누군가를 만나면 늙은 할미가 담아준 흰 쌀밥을 나누어 먹이며 함께 가자고 설득해 험한 저승길 함께 뛰어 가라’고 하는 당부였으리라. 비탄의 통곡 이후 1363년이 지났다. 오늘의 한국 아이라면 초등학교 갓 입학했을 어린 손자의 명복을 빈다.>>다음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