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시즌 프로배구 여자부에서 자타공인 최강팀이 시즌 최단 시간 만에 패배했다. 1시간 8분 만에 세트 스코어 0대3(16-25 12-25 14-25), 완벽한 패배다. 절대 강자가 없는 프로 세계에서는 충분히 그럴 수 있다. 약팀이 강팀을 잡는 극적인 반전은 늘 있어 왔지만 이번 경우는 다르다. 가장 큰 이유는 팀의 주축인 쌍둥이 선수들이 출전을 안 했기, 아니 못했기 때문이다.
“강한 자에게만 굽신거리고 약한 이에게는 포악해지는 일, 살면서 절대 하지 말아야 할 일” 사건은 쌍둥이 중 하나가 SNS에 이 글을 올리면서 시작되었다. 자필로 써서 올린 걸로 봐서는 진심인 듯하다. 그 밑에는 이런 글도 있다. “본인은 모르지. 당한 사람만 알지. 난 힘들다고 했고 그만하라고 했는데도 끝까지 괴롭히는 사람이 잘못 아닌가요...” 나중에 드러난 바로 피해자는 쌍둥이, 가해자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선배 선수였다. 가해자와 피해자 구도가 선명해 보인다. 가해자로 지목받은 선수가 갈등이 있었던 건 사실이고, 오해가 쌓여 생긴 해프닝이라고 해명하면서 논란은 일단락되는 듯했다.
그러나 쌍둥이 선수들이 중학교 시절 학교 폭력을 저지른 사실이 뒤늦게 알려지면서 상황은 급 반전된다. 피해자가 알고 봤더니 가해자였던 것이다. “학창 시절 같이 땀 흘리며 운동한 동료들에게 힘든 기억과 상처를 갖도록 한 점 깊이 사죄드린다”, “철없던 지난날 저질렀던 무책임한 행동 때문에 많은 분들께 상처를 드렸다” 둘은 고개를 숙였지만 왠지 씁쓸해진다.
어느 사회나 스트레스는 있다. 사춘기의 중딩들도 마찬가지다. 사회적으로나 인격적으로나 아직 미숙한 이들은 또래와의 관계를 통해 완성된 인격체로 거듭난다. 그 과정에서 갈등과 화해, 그리고 스트레스는 익히 예상 가능하다. 문제는 그 스트레스가 운동성을 띈다는 거다. 톡 건드리기만 해도 폭발해버릴 것 같은 이들에게 사소한 험담, 갈등, 왕따는 견디기 힘든 스트레스로 쌓인다.
철 모를 때 한두 번씩들 경험해 보았겠지만 일은 어떻게 진행되던가? 아프리카 개코원숭이와 같은 상황이 벌어진다. 딱 TV에서 보던 대로다. 서열 1위, 소위 짱인 수컷이 괜히 2위를 때리거나 먹는 걸 빼앗는다. 기습적인 공격으로 피해를 입은 2위는 스트레스를 받기 시작한다. 열 받은 2위는 자기가 당하는 꼴을 옆에서 지켜보던 서열 3위에게 화풀이를 해댄다. 똑같은 방식으로 강도는 더 세게 말이다. 이런 식으로 전파력을 확보한 스트레스는 폭력이라는 형태로 꼴등까지 이어진다. 더욱 강력하고 잔인하게 말이다. 이렇게 스트레스 전이(轉移)는 피해자가 다시 가해자가 되는 방식으로 전개된다. ‘시어머니 욕하면서 닮아간다’는 우리 속담이 딱 이런 경우다. 갑은 을을, 을은 또 병을 괴롭힌다.
냉정하지만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은, 자신보다 약한 대상에게 폭력을 가하는 스트레스 전이가 자신의 스트레스를 완화하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란 점이다. 여드름 가득한 소영웅들이 군웅할거(群雄割據) 하는 중학교 교실에서부터 치열한 경쟁의 연속인 프로 스포츠 세계에 이르기까지 이 잔인한 사실은 여전히 유효하다.
잔뜩 열 받은 인간(내지 원숭이)은 그 스트레스를 풀 유효한 대안을 쉽사리 찾지 못한다. 제일 쉽고 익히 경험해왔던 방식이 다른 누군가에게 폭행을 행사하는 것이다. 스트레스 안 받으려고 남을 괴롭힌다. 결국 ‘전쟁을 종식시키기 위해 전쟁’을 일으키는 셈이다. 어리석지만 사실이다. 전쟁은 결코 전쟁으로 사라지지 않는다는 건 다 아는 데도 말이다.
피해자가 가해자가 되어 또 다른 피해자를 만드는 구조로 몇몇의 스트레스는 풀릴지 모르지만, 조직 전체는 결코 건강하지 않다. 평창 올림픽 때도 이와 유사한 사건이 있었다. 팀워크가 무엇보다 중요한 팀추월 선수들끼리의 갑을 논쟁은 진행형이지만 둘 다 지는 게임인 것만큼은 분명해 보인다.
폭력의 끝없는 돌림노래는 행위 주체의 과오에 대한 분명한 인정(認定)과 자발적 재발 방지 의지(意志)만으로 멈출 수 있다. 그리고 우리 모두는 불가능에 가까운 이 미션을 수행해내야만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