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 향가의 꽃이 피었다. 동백아가씨가 망국의 한을 경험했던 우리민족의 가슴에 불을 질렀듯이 눈물향가도 백촌강 패배로 멍이 든 도거인들과 일본인들 사이에 힛트를 쳤다. 만엽향가를 내용에 따라 분류해보면 압도적 다수를 차지하는 것이 눈물향가이니 어느 정도 대형 힛트를 쳤는지 짐작할 수가 있다. 이번 칼럼에서는 산상억량이 아닌 다른 만엽가인들에 의해 만들어진 눈물가 몇몇작품을 소개하고자 한다. 다소 산만한 느낌이 들기는 하지만, 1300여년전을 살았던 고대인들이 사랑했던 사람을 떠나 보내며 불렀던 눈물가라는 것이 무엇인지 느껴 보셨으면 한다. 2575번가 : 希将見君乎見常衣左手之執弓方 之眉根搔礼 바라나니, 그대의 생전공적을 드러내리. 그대를 드러내리. 그대는 평범한 이들에게는 옷을 주었고, 등을 도닥여 주었다오. 벗들에게는 겸손하고, 의리있게 행동했다오. 노인들에게는 뿌리나물을 먹이고, 등을 긁어 주었다오. 다음 1101번가의 작자는 히토마로(枾本人磨)이다. 칠흑같이 어두운 밤 저승배가 떠나는 강에는 파도치는 소리가 높았다. 이러할 때 눈물향가를 불러 주어 떠나는 이의 발걸음을 붙잡아 떠나지 말라고 호소했던 것이다. 1101번가 : 黑玉之夜去來者卷向之川音高之母荒足鴨疾 칠흑같이 어두운 밤 옥같이 고운 님께서 늦은 밤 떠나간다. 강에는 물흐르는 소리가 높다. 그대 거친 저승길을 달려가네. 3795번가는 망인이 생전에 목숨을 걸고 항상 바른 말을 했다고 꾸미고 있다. 산상억량의 눈물가 이론을 그대로 따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3795번가 : 辱尾忍辱尾默無事物不言先丹我者將依二 욕되어도 참고, 욕되어도 입을 다물면 무사하니 사람들은 말을 하지 않는다오. 그러나 그대는 항상 남보다 먼저 말했지. 고집 부리다가 두번 죽을 지언정. 다음 소개할 1404번가에서는 아내의 아름다움을 말하고 있다. 남편이 살아서는 한 번도 하지 않던 말을 했다. 예쁘다고 칭찬하는 남편의 눈물가에 아내는 발걸음을 떼지 못한다. 여자는 그 시절에도 예쁘다는 말에는 사족을 못썼나보다. 1404번가 : 鏡成吾見之君乎阿婆乃野之花橘之珠尒拾都 거울 속에서 나는 보았지, 그대의 아름다운 모습을. 들꽃에서도 그대를 보았고, 귤을 주으면서도 귤처럼 아름다운 그대를 보았다오. 3802번가 작품은 지질학의 도움을 빌려 해독해낸 작품이다. 강원대 지질학과 우경식 교수가 해독에 참여했다. 고대 동북아를 덮친 소빙하기의 참상이 작품 속에 남아있었다.서기 700년을 전후해 전 지구가 급격히 추워졌다. 지질학자들은 이 시기를 ‘암흑 한랭기(Dark Age Cold Period)’라고 한다. 8~9세기 전세계를 덮친 ‘암흑 한랭기’는 신라와 당나라의 혼란, 바이킹의 남하, 마야 문명의 쇠퇴 등을 설명하는 데 이용된다. 일본도 예외가 아니었다. 암흑 한랭기의 깊은 상처가 향가와 만엽집에도 깊게 새겨져 있다. 신라향가에는 ‘모죽지랑가’, 만엽집에는 본 작품이다. 소빙하기의 흔적이 화석처럼 깊게 패여 남아 있는 3802번가를 보자. 3802번가 : 春之野乃下草靡我藻依丹穗氷因我將友之隨意九 봄이 온 들에 백성들이 풀밭에 쓰러진다. 꼼꼼히 바느질한 붉은 만장. 냉해가 겹쳐 들자 죽지 말라고 애원해도 사람들이 저승사자 무리를 따라가고 마는구나. 202번가는 삼륜산에게 사랑하는 사람을 살려달라고 빌고 있었다. 산을 신으로 받들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사람은 떠나고 말았다. 다행히도 어두운 밤이 아닌 해가 높이 떴을 때 황자가 떠났다. 밝을 때 떠나야 한다는 고대인들의 저승관이 반영되어 있다. 그렇다 하더라도 이별은 슬픈 것이었다. 202번가 : 哭澤之神社尒三輪須惠雖禱祈我王者高日所知奴 곡하며 흘린 눈물이 연못이 되었다오. 신사에는 제사를 지내고 삼륜산에게는 은혜를 내려 달라고 빌고 또 빌었다오. 죽지 말라고 애원했으나 그대는 해가 높이 떴음을 알고서는 길 떠나고 말았다네. 위의 6개 작품들 처럼 고대인들은 사랑했던 사람이 죽으면 눈물가를 만들어 그를 떠나지 못하게 붙잡았다. 노래는 남은 이들의 눈물로 젖었다. 산상억량의 눈물향가 이론이 다소의 변이를 보이지만 기본 줄기는 그대로 전해지고 있는 것이다. 눈물가는 사랑하는 이를 떠나보내는 한의 노래였다. 그래서 눈물향가는 이별의 恨을 이해하지 않고는 이해되지 않는다. 그 한의 근저에 백제 디아스포라들이 겪었던 역사적 체험이 있었다. 눈물향가만 있던 것이 아니었다. 권력투쟁과 사랑의 감동을 표기하는 수단으로도 향가는 이용 되었다. 노래 속에 담긴 역사를 보아야 일본에 간 향가의 모습을 알 수 있다. 다음편 부터는 노래속에 기록된 사랑과 밀애와 권력투쟁의 모습들을 살펴보도록하겠다,>>다음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