객지 생활을 한지 어언 40년이 넘었다. 물론 국토가 비교적 좁고 현대에 들어와서 교통이 발달하여 연고지 경주에 대해 내왕이 쉬워져서 경주를 언제든 들여다볼 수 있는 시대와 생활이 되긴 했지만 주생활 무대는 늘 객지에 있었다는 뜻이다. 그간 경주도 많이 변해왔음을 객지에서 늘 지켜봤었다. 그나마 전국이 산업화에 물들어 지난 문화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는 지역이 많은데 경주는 왕릉과 한옥주택을 필두로 해서 시각적으로 40년 전의 경주를 큰 변함없이 들여다 볼 수 있어 그나마 다행이라는 생각이다. 외관에서 큰 변화가 없었다는 점은 경주가 가지는 꿋꿋한 지조의 정신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
그런데 내면에서는 어떤 변화가 있었을까 궁금해지면서 경주시민의 살림살이에 대해서도 관심이 간다. 한 가지 객지생활을 하면서 자주 들은 얘기인데, 경주가 고향이라고 말하면 으레 ‘경주의 음식이 맛이 없다’는 얘기이다. 솔직히 그런 얘기를 들으면 부정도 하고 싶고 은근히 좀 화도 났었다. 개인적인 사례만 하더라도, 우리 집은 음식을 맛나게 해먹었는데... 경주 음식이 맛이 없다니, 언필칭 경주라는 지역에 둘러싸여 나 역시도 맛없이 먹고 자란 사람이 되어버린 셈이다. 우리 집은 장맛이 좋았고 엄마는 겨울 백김치는 물론이고 김치도 맛나게 담으셨던 기억이다. 그 유전자를 물려받은 경주 누나의 된장을 이웃에 나눠주면 최고라는 소리를 듣는다.
엄마는 기본이라 할 수 있는 된장, 간장과 김치뿐만 아니라 음식을 만들 때도 그야말로 육해공군이 총출동하는 산해진미를 만들어 내실 줄 알았고 우리는 철마다 풍부한 음식과 간식을 먹고 자랐다. 물론 내가 잘 먹고 잘 살았다는 것을 얘기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어떻게 하여 경주음식 맛이 나쁘다는 인식이 생겼으며 이런 인식은 어디서 비롯되었을까를 얘기하고자 하는 것이다. 문화의 큰 줄기를 이루고 있는 의식주 중 식문화는 장구한 역사와 문화가 풍부한 지역에는 당연히 풍성하기 마련인데, 천년 수도 역할을 해왔고 한 때는 백만 인구가 숯불로 음식을 해먹을 정도로 풍성한 도읍지였던 경주의 음식 맛이 없다는 말은 좀 어처구니없는 일 아닌가?
문화가 풍성한 데는 음식문화도 발달할 수밖에 없다. 문화의 근간을 의식주라 이르는 이유이다. 신라천년 음식의 위용은 어디 있다는 말인가? 게다가 경주는 바다를 끼고 있고 태백산맥 끝 줄기에 해당하는 산이 발달해 있으며 형산강이 도심 가운데로 지나가며 주위로 평야도 발달되어 있어서 음식의 기반이 될 만한 물산이 풍부한 곳이다. 우리 엄마표의 음식에서도 기억하건데 다양한 음식이 있었다. 들에서 나는 각종 채소류는 물론이고 산나물에다 특히 풍부한 해산물을 많이 먹은 기억이다. 철마다 다른 해산물이 상위에 다양하게 올라왔고 해물로 이루어진 국과 찌개며 구이와 찜 등이 빠질 날이 없었다.
경주 음식은 해방 후 관광지화 되는 과정을 거치며 어느 순간부터 음식조차 ‘관광지 음식’으로 전락하여 상업화되고 뜨내기들의 돈과 교환되는 단순한 먹거리가 되고 말았다. 황광해는 그의 저서 ‘한식을 위한 변명’에서 한국의 음식은 봉제사접빈객의 정신에서 유래한다고 했다. 유교가 발달한 경주에서 제사음식이나 손님을 접대하는 격조 높은 음식은 사라지고 관광지 음식으로 전락한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그런 한편 산업자본 형성이라는 시대적 명분 아래 강조된 노동이데올로기는 관광을 ‘놀고먹는 가벼운 것’, ‘천박한 것’쯤으로 인식하여 궁극적으로 관광을 폄하하게 되었다. 더구나 철저하지 못했던 초기 관광접객문화는 경주 음식을 일회성 싸구려 음식으로 도배시켜버린 것이고 그런 영향이 ‘경주에 음식 맛없다’는 일반인의 인식 수준을 만들고 말았다. 그런 반면 관광지에선 관광객의 문화나 음식에 대한 기대수준이 높을 수밖에 없어 그것을 맞추지 못한 경주가 결국 부정적인 음식문화 형성에 한 몫 거들었을 것이다. ‘없는 집에 음식 맛 난다’고 하는 말이 있지 않은가? 잘난 경주에 맛난 음식을 인지해줄 턱이 없다.
시대가 변했다. 바야흐로 문화의 시대, 관광의 시대라고 한다. 이미 그러하리라고 믿지만, 혹시라도 경주의 시세가 자꾸만 정체 또는 열악해져가는 듯해 한 마디 붙이면 ‘경주시민부터 인식을 바꿔야 할 때’다. 이제 문화에 대해 자부심을 가지는 만큼 관광에도 자부심을 가지는 경주시민이었으면 한다. 우리의 긍지 높은 문화를 보러 오는 관광객을 당당하게 맞이하는 관광도시 시민으로 누구나 관광에 긍지를 가지고 관광산업에 보람을 가졌으면 한다. 긍지나 자부심은 자기발전의 강한 희구에서 나온다고 한다. 그런 욕구가 맛나고 수준 높은 경주음식을 만드는 힘이 될 것이다. 오랜 문화의식에 어울리는 긍지 높은 경주만의 음식문화가 만들어질 것을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