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리단길을 거닐어보면 격세지감을 느낀다. 과거 문화재 보호라는 미명 하에 이 일대 주민들은 많은 불편과 재산권 침해를 당하며 살아야했다. 건축행위 제한이 너무나도 엄격하고 중첩되어 주민들은 헌집을 제대로 수리도 하지 못한 채 열악한 주거환경에서 고통스럽게 지냈다. 냄새나고 허물어져 가는 집들이 황남동 주택가 길에서 받는 인상이었다. 상전벽해가 딴 말이 아니다. 황리단 길 주변이 바로 그것이다. 당국이 문화재 보호에 관한 현실적인 접근을 하여 주민들의 주거환경 개선에 눈을 돌리고, 주민들은 자발적으로 이에 호응하였다. 차츰 경관이 개선되더니 지금은 전국의 관광지 중 핫 플레이스가 되고, 각지의 젊은이들이 꿈을 찾아 이곳에 가게를 내고 있다. 황리단 길을 중심으로 하여, 황남동, 사정동, 인왕동 일대 등이 국토의 계획 및 이용에 관한 법률에서 정한 경관지구, 그 중에서도 특화경관지구로 지정되어 있다. 특화경관지구는 문화적 보존가치가 큰 건축물 주변의 경관 등 특별한 경관을 보호 또는 유지하거나 형성하기 위하여 지정된 지구를 말한다. 그 외에도 고도보존육성법 상의 건축행위제한이 무겁게 작용한다. 황리단 길은 대부분 보존육성지구에 해당하는데, 지역고도보존심의위원회의 심의를 받아야 건축행위를 할 수 있다. 그런데 황리단 길에 들어서는 건축물을 규제하는 역할을 하는 지역고도보존심의위원회나 경관위원회 등의 심의가 과연 올바른 역할을 하는지 조금 따져볼 필요가 있다. 그것은 바로, 지금 황리단 길과 그 주변에 세워지는 건물들 외관이 그 위원회들이 취하는 규제의 결과로 매우 정형화되어 있는 점에 관해서다. 값비싼 목조의 건물, 그리고 그 지붕에 또 값비싼 골기와를 덮는 건축물 외에는 허용되지 않는 것이다. 이런 규제는 부당한 재산권 침해의 성격을 갖기도 한다. 여기에 참고로 할 수 있는 것이 있다. 서울의 북촌과 서촌의 한옥마을이다. 1920년대에 강한 민족의식을 가졌던 정세권 선생이 사라지는 우리 전통가옥을 안타까이 여겨 삼청동, 가회동, 익선동에 한옥마을을 건축하였다. 이것은 당시에 새로이 왕성하게 수입되던 일본, 서양의 가옥구조 문물을 받아들여 과거의 한옥을 수정한 개량한옥이었다. 기존의 대형 한옥이 마당을 중심으로 건물들이 들어선 ‘중정식’이라면, 그는 마루 개념의 거실을 중심으로 방들이 모여 둘러싸는 ‘중당식’을 구현했다. 이것은 소형의 면적으로 집을 지을 수 있는 구조이며, 생활에 편리한 형태이다. 화장실이 한옥의 내부로 들어오고, 부엌은 입식구조로 바뀌었다. 대청마루는 외부 덧문을 추가해 내부 공간인 거실로 바꾸었다. 많은 세월이 흐른 지금 그가 당시 취한 혁신이 한옥의 표준이 됐다. 그런데 지금 북촌, 서촌 마을의 한옥 형태는 경주시의 건축에 관한 위원회들이 유도하는 한옥의 형태보다 훨씬 다양하다. 왜 우리는 그렇게 느끼는 것일까? 그 기본적인 이유는 북촌, 서촌 마을에서는 목재 외에도 벽돌 같은 건축소재들을 자유로이 사용해 건물의 창의성을 구현할 수 있게 했기 때문이다. 이에 반해 황리단 길 한옥은 복고적이고 고식적이다. 개성이 두드러지지 않는다. 무려 백 년 전 선각자에 의해 형성된 한옥 건축물조차 따라갈 수 없는, 다양성이 부인된 한옥으로 채워지고 있다. 왜 벽돌이나 유리 같은 다양한 소재가 한옥에서는 허용되면 안 되고, 또 골기와에만 집착해야 하는 것일까? 경주시의 건축에 관한 위원회들은 여기에 관한 해답을 제시해주었으면 좋겠다. 한국민이 자랑스러워하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기도 한 창덕궁 안에서도 유리 온실이 고즈넉한 자태를 뽐내고 있다. 왜 황리단 길 주변에서는 온실에도 골기와를 덮어야 한다는, 그래서 온실을 짓게 할 수 없는 따위의 고루한 관념에 사로잡히는 것일까? 시대는 변한다. 변화하는 시대의 앞을 내다보는 안목이 요구된다. 백 년 전의 기준에도 따라가지 못하는 복고의 고리타분한 틀에 황리단 길을 가두어서는 안 된다. 이래서는 미래의 생명력이 없게 된다. 발상의 전환을 하자. 백 년 후에 황리단 길 한옥이 새로운 한옥의 표준으로 들어설 수 있게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창의와 혁신의 정신을 황리단 길에 부어보자. 황리단 길 건축행정에 일대전환이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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