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크리스마스 날의 일이다. 미국 테네시 주에서 건물 여러 채와 주변 자동차들이 파괴될 정도로 심각한 폭발 사건이 일어났다. 흥미로운 건, 연방수사국(FBI)과 경찰이 사건 배경으로 5세대 이동통신(5G)과 관련한 음모론을 제기했다는 점이다. 아무런 전과나 정신병 이력도 없던 범인이 노린 것은 AT&T 건물(미국 제1의 통신사)이었다. 내슈빌 시장 존 쿠퍼 (John Cooper)가 언론 인터뷰에서 밝힌 대로다. 5G는 알겠는데, 그게 음모론과 무슨 상관이냐고? 코로나 바이러스가 무선 주파수인 5G(5세대 이동통신)를 타고 들어왔다는 주장이다. 5G의 특정 주파수는 핸드폰을 들고 있는 우리의 면역력을 약화시켜 호흡기를 통해 코로나에 걸린다는, 황당한 논리다. 누가 이런 주장에 동조를 하겠나 싶겠지만, 지난 4월 영국, 네덜란드 등에서 아무런 이유 없이 5G 기지국 100여 곳이 훼손당했다고 보고되었다. 또 있다. 마이크로소프트 사(社)의 설립자이며 기업인인 빌 게이츠(Bill Gates)가 자신이 개발한 백신을 시험하기 위해 코로나 바이러스를 만들었다는 주장이 있다. 전 세계를 상대로 그것도 아주 비싼 가격으로 팔릴 백신 제조는 중국 우한 바이러스 연구소에서였고 말이다. 이런 주장은 빌 게이츠가 세계 보건기구(WHO), 유니세프(UNICEF) 및 여러 제약 회사에 엄청난 투자를 하고 있다는 근거에서 나왔다. 이런 난센스 같은 주장을 누가 믿겠냐 싶지만, 사라 쿠니알(Sara Cunial)이라는 이탈리아 의원은 의회 내 공개 연설에서 ‘이번 코로나-19 사태는 빌 게이츠로 상징되는 유대인 자본가들의 기획 작품이며, 백신을 통한 인구 감축은 인류에 대한 범죄 행위”라고 성토했을 정도다. 의회 전체가 그녀의 주장에 전적으로 동의하는 것은 아니라는 후속 기사가 속속 발표되었지만 분명한 건, 이런 류의 음모이론(conspiracy theory)은 결코 멈추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가령 수돗물 속에 들어있는 불소는 시민들을 체제 순응적(군대 건빵 속 눈깔사탕은 또 어떻고)으로 만든다거나, 바람이 불지 않는 달에서 성조기가 흔들렸다는 이유로 인류의 첫 달 착륙 장면은 날조(50년이 지났는데도 꿋꿋이)된 것이라는 식의 논리는, 뭐든 쉽게 믿어버리는 우리의 본능 때문이 아닐까 싶다. 음모론을 믿는 사람들은 존재하는 사실에 기초를 하여 이론을 세우는 게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로 음모론에 맞추어 사실을 짜 맞추는 식으로 왜곡하는 것이다. ‘우연’이 ‘필연’이 되는 순간이다. ‘믿음’과 ‘확신’은 사실 다른 이야기다. 믿을 신(信)이라는 같은 토대에서 출발하지만 ‘강하게’라는 글자가 있고 없고는 “그럴 거라 믿어”와 “그것이라 확실[確信]해” 만큼이나 다르다. 앞의 것은 주체와 대상 간의 간극이 없지 않다. 믿었던 내용이 틀릴 수도 있다는 말이다. 믿는 내용의 순도(純度)가 1%라도 좋은 믿음이다. 반면에 뒤의 것은 주체와 대상이 한 몸이다. 내용상 1%만 모자라도 용서되지 않는, 100%만이 확신이다. 문제는 사회적 관계 속에서 생긴다. 가령 일방이 뭔가를 확신한다고 해서 타방도 꼭 그러리라는 보장은 없다. 나에게 내 아들은 인생 최고의 보물이지만, 옆집만 하더라도 내 보물은 그저 이마에 여드름이 난 중딩일 뿐이다. 나의 가치관이며 철학이며 그 무엇이라도 마찬가지다. ‘지구는 평평하다’는 식의 음모이론은 그럼 왜 작동할까? 많은 이유가 있겠지만 그중 하나는 각자 보고 듣는 뉴스가 한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요즘처럼 편한 세상이 없다. 뉴스가 궁금하면 TV나 신문보다 핸드폰에 먼저 손이 간다. 즐겨찾기 해놓은 네이버나 유튜브 뉴스 채널을 누르기만 하면 된다. 90도로 꺾인 벽 모서리 너머에 누가 걸어오고 있는지 이쪽에 있는 나로서는 알 길이 없다. 그래서 보다 객관적인 시각을 유지하고자 우리는 신문이나 뉴스를 보는 거다. 그런 점에서 인터넷 기반 뉴스 매체는 내 성향에 맞게 편집된, 반쪽짜리일 수밖에 없다. 보고 싶은 뉴스만 계속 보다 보면 남도 나와 같을 거라 오해하기 시작한다. 외부 정보를 즉자적(卽自的)으로 만날 수 있는 인터넷 환경에서 양극화는 더욱 극적이다. 믿고 싶은 대로 믿고, 보고 싶은 대로 보게 된다. 정보의 보고(寶庫)에 정작 정보는 없는 셈이다.
주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