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을 쌓고 사는 자는 반드시 멸망할 것이며 끊임없이 이동하는 자만이 살아남을 것이다” 옛 돌궐제국의 장수였던 톤유쿠크의 비문에 있는 구절로, 필자가 경상북도교육청 교육홍보대사로 활동할 당시 교원 대상 연수 시에 교육혁신을 강조하면서 전통을 맹목적으로 수호하려 하지 말고 변화와 혁신을 하는 조직만 살아남을 수 있다는 의미에서 이 구절을 즐겨 인용하곤 했었다. 하지만 돌궐은 동쪽으로는 중국 동북지방에서 서쪽으로는 중앙아시아에까지 세력이 미쳤으나 성을 쌓지 않고 자만하다가 결국은 멸망해 지금은 흔적도 없이 사라진 제국이다.
우리 옛 선조들은 이곳 관문성을 비롯한 여러 곳에 성을 쌓아 적의 침입에 대비해 왔기에 오늘까지 이 땅을 지킬 수 있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되겠다는 생각이 든다.
관문성의 동쪽 끝에 장성인 관문성과는 구별되는 것처럼 보이는 신대리성이 있다. 이 성을 경주에서 찾아가려면 울산을 거쳐 가는 길과 양남으로 해서 가는 길이 있다. 필자는 평생을 경주 땅에 살아오면서도 이곳 신대리성은 이번 글을 쓰면서 처음 찾게 됐다. 검색을 해 보니 양남 쪽보다는 울산 쪽으로 가는 길이 더 가깝다. 울산 방향으로 국도7호선을 따라가다가 매곡산업단지를 지나 마우나오션리조트로 향해 가면 도로 오른쪽으로 ‘기령(旗嶺)’이라고 새겨진 큼지막한 돌기둥을 볼 수 있다. 오늘 찾고자 하는 신대리산성 즉 기박산성 300m 떨어진 지점이다. 주위로 소공원이 조성되어 있다. 안내판에는 기박산성에 대한 간단한 안내와 더불어 이 성이 임진왜란 당시 울산 선비 18인이 나라를 위해 몸과 마음을 바칠 것을 하늘에 맹세했는데 이들의 충의를 기리기 위해 이곳에서 추모제를 올렸다는 내용이다. 기령이라는 명칭은 기박산성을 쌓으면서 그 둘레에 붉은 기를 꽂아 방향과 거리를 표시했기에 ‘깃발을 꽂았던 고개’라는 의미라고 한다.
고개마루 마우나오션 리조트 주차장에 차를 세워두고 5분여 산을 오르면 신대리성에 이르게 된다. 신대리성은 경주시와 울산광역시 경계인 삼태봉의 남측에 있는 둘레 1.8km 길이의 산성으로 경주시 양남면 신대리에 있다고 해서 신대리성이라 하고 울산 지역에서는 기박산성이라고 알려져 있다. 울산문화원에서 발간한 이유수의 ‘울산지명사’에서는 기박산성 이외에 함월산성, 신흥산성 등으로도 기록되어 있다.
이 성은 3개의 작은 봉우리를 둘러싼 테뫼식 산성으로 둘레는 1767m, 면적은 12만4117㎡이며 잔존 상태가 좋은 구간은 최대 높이 3.2m 정도로 성벽이 남아 있다. 석축 기법과 성내의 유물로 보아 7세기 후반에 축조된 것으로 보이는데, 체성이 가장 잘 남아 있는 동쪽 성벽의 경우 상단부와 하단부의 축조 양식이 판이하게 다르다. 하단부의 경우 150㎝ 높이의 8, 9단까지는 길이 35~55㎝, 높이 30~40㎝의 다듬은 석재를 눕혀서 가지런히 쌓았다. 하단에는 10㎝ 정도, 그 상부는 5~10㎝ 들여쌓기를 하였다. 상단부 195㎝ 높이에는 20~60㎝ 크기의 할석을 쌓아서 조악한 축조 수법을 보여준다.
1995년에 영남대학교 문화인류학과에서 지표 조사를 했고, 2015년부터 2016년에 걸쳐서 신라문화유산연구원에서 측량 및 현장 정밀 조사를 실시했다. 조사 결과 성곽 유구로는 체성과 문지 5개소, 배수구 3개소, 조망대로 추정되는 건물지를 포함하여 14개소, 집수지 1개소, 명문석 10개, 조망대 등을 확인했다. 또 이 성은 장성이라고도 하는 관문성과 같은 시기에 축성되었음이 확인돼 그 일부로 보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일부에서는 관문성과 이곳 신대리성 사이 절벽 구간이 이어져 있지 않아 별도의 성으로 보아야 한다는 견해도 있다.
1980년에 이곳 산성에서 명문 각석 여러 점이 발견되었는데 판독 결과 이 성의 축성의 방법이 남산 신성과 같이 일정한 간격으로 분담되었음을 알게 되었다. 발견된 명문각석 중 판독이 가능한 것은 아래와 같다.
骨估南界(골고가 맡은 남쪽 경계), 居七山北界 受地七步一尺(거칠산이 맡은 북쪽 경계 맡은 거리 7보 1척), 能南界(능이 맡은 남쪽 경계), 骨估北界受地四步一尺八寸(골고 맡은 북쪽 경계, 맡은 거리 4보 1척 8촌), 押啄南界(압탁이 맡은 남쪽 경계) 金京元千毛主作北堺受地五步五尺(금경의 원천모주가 짓는 북쪽 경계 맡은 구역 5보5척), 金京道□作北堺五步五尺(금경의 도□가 짓는 북쪽 경계 5보5척), 切火郡北界受地十步二尺七寸(절화군이 맡은 북쪽 경계 맡은 구역 10보 2척 7촌), 退火南界(퇴화가 맡은 남쪽 경계), 西良郡(서량군), □□郡受地五步□尺北界(□□군이 맡은 구역 5보 □척 북쪽 경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