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                                                 김기택 소의 커다란 눈은 무언가 말하고 있는 듯한데나에겐 알아들을 수 있는 귀가 없다.소가 가진 말은 다 눈에 들어 있는 것 같다.말은 눈물처럼 떨어질 듯 그렁그렁 달려 있는데몸 밖으로 나오는 길은 어디에도 없다.마음이 한 움큼씩 뽑혀 나오도록 울어보지만말은 눈 속에서 꿈쩍도 하지 않는다.수천만 년 말을 가두어 두고 그저 끔벅거리고만 있는오, 저렇게도 순하고 동그란 감옥이여.어찌해볼 도리가 없어서소는 여러 번 씹었던 풀줄기를 배에서 꺼내어다시 씹어 짓이기고 삼켰다간 또 꺼내어 짓이긴다. -말에 대하여 소처럼 우리 민족과 친숙한 가축은 없을 것이다. 일자형 집에서는 부엌을 가운데 두고 소와 눈을 마주 보며 생활을 했기에 아침에 일어나 살펴보는 게 소의 안위였고, 촌노의 삶은 쇠죽을 끓이는 게 하루 일과의 시작이었다. 자식들 공부나 빚 때문에 오래 기른 소를 팔고 오는 날 껌뻑, 껌뻑, 슬픈 표정의 그 짐승을 두고 담배 연기를 붐어내며 터덜터덜 돌아오는 우리네 아버지의 발걸음은 편하지 않았다. 어느 때는 팔린 소가 먼 길을 걸어 제 살던 옛집으로 돌아왔다는 이야기를 우리는 허다히 들었다. 소처럼 신의가 있는 가축이 또 있을까? 소가 싸움을 좋아한다고 믿는 사람들은 별로 없을 것이다. 소싸움 구경을 하러 가본 사람들은 알 것이다. 소는 상대방을 거칠게 다루지 않는다는 것을. 뿔을 맞대고도 두 눈은 “서로 미안, 미안하다고”(문인수, 「싸우는 소」)하는 것 같은가. 김기택의 「소」에서도 우리가 눈 여겨 볼 부분은 “소가 가진 말은 다 눈에 들어 있”으며 “말은 눈 속에서 꿈쩍도 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말이 가득 고일 때 소가 하는 일이란 “마음이 한 움큼씩 뽑혀 나오도록 울어보”다가, 더더욱 “어찌해볼 도리가 없”을 때 소는 여러 번 씹었던 풀줄기를 배에서 꺼내 되씹는다는 것이다. 왜 그럴까? 동물의 신체 특성이라고 하면 할 말이 없을 것이다. 다만 우리는 ‘말’에 대한 우리의 태도를 성찰할 순 없을까? 묵묵하게 자신의 일을 해내면서도 말없는 소와 별 것 아닌 일에도 거짓과 과장을 떠벌리고 다니는 우리 입은 많은 것을 성찰하게 한다. 거칠어진 말과 뒷담화, 해도 해도 너무한 말들의 남발. 이런 구업口業이 인간 세상 어디에서나 횡행하고 있다. 소의 해가 시작된 지도 어언 한 달이 지났다. 우직하게 자신의 길을 가는 태도에 더하여, 소처럼 모든 말들을 눈에 담을 순 없더라도 배려심 많은 눈빛으로 남을 세우는, ‘경우에 합당한 말’을 위해 열린 입술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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