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특유의 언어에 ‘박래품(舶來品)’이라는 말이 있다. 배로 들여온 물건이라는 뜻이다. 한반도에서 배로 들어간 물품을 ‘박래품’이라고 했다. 전해지는 말로는 한반도 원산지 가격의 20배 정도로 거래됐다고 한다. 한반도에서 들어간 향가는 어떠한 목적으로 사용됐을까. 초기에 만들어진 작품들을 보면 그를 알 수 있다. 자식을 많이 낳게 해주고, 서로 화목하며, 망자의 영혼이 편히 저승에 갈 수 있도록 해달라고 비는 목적으로 사용되고 있었다. 마치 머나먼 사막 속 신비의 아그라바 왕국에 살던 좀도둑 ‘알라딘’이 요술 램프를 문지르면 ‘지니’라는 거인이 나와 소원을 들어 주는 것과 같았다. 왜인들에게 있어 한반도는 신비의 아그라바 왕국이었고, 향가는 요술램프와 같은 것이었다. 다만 향가는 좀도둑 알라딘과 같은 뒷골목의 아이들이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천황가에서만 사용하던 최고급 박래품이었다. 백제 출병을 추진하던 제명천황(재위 655.2.14~ 661.8.24)이 만들었던 12번가를 살펴보자.吾欲之野嶋波見世追底深伎阿胡根能浦乃珠曾不拾 나는 바란다. 자손들이 들과 섬에 사는 民을 보살펴 주고, 대를 이어 조상을 추모하여 나라의 기초를 깊게 하여 주기를. 아름다워라, 오랑캐들이 화목하게 지내는 바닷가여. 구슬이 땅에 떨어져 있어도 줍지를 않는다네. 천황의 소원이 나열되어 있다. 이처럼 향가는 일반관리나 평민은 사용불가 품목이었다. 오로지 천황가만이 소원을 빌던 박래품이었다. 만엽집 1권 거의 모두는 천황가에서만 사용하던 것들이었다. 그때 일본에 한 아이가 들어갔다. 백촌강 패배 후 배를 탔던 산상억량(山上憶良, 660-738)이라는 세살박이였다. 그는 일본에서 성장하면서 자기보다 먼저 들어와 정착해 있던 박래품 향가문화의 감각을 오롯이 흡수할 수 있었다. 향가 뿐이 아니었다. 함께 현해탄을 건넜던 백제유민들로부터 모국이 망하는 과정에서 시체가 산을 이루던 참상을 전해 들었다. 또한 이국 땅에서 산성을 쌓고 도시를 건설하는 노동 속에서 망국의 디아스포라들이 겪었던 참상을 보아야 했다. 오전의 천한 삶이 오후에는 그보다도 못한 주검이 되어 굴러다니는 장면을 몇 번이고 지켜보아야 했을 것이다. 그것이 억량과 유민이 되어 들어갔던 디아스포라들이 처했던 환경이었다. 백제 유민들에게 눈물향가가 공감 받을 수 있는 한(恨)의 환경이 조성되었다. 가혹한 현실 속에서 살아가던 백제 유민들에게는 죽어서 간다는 저승이 차라리 젖과 꿀이 흐르는 낙원이었을 수도 있다. 누군가가 죽으면 그의 영혼이 가혹한 이승을 떠나 고통 없는 저승으로 ‘편안히’ 갈 수 있기를 빌어주는 것은 큰 선물이 되었다. 향가는 ‘알라딘’의 요술램프와 같은 것이었기에 영혼을 ‘편안히’ 저승에 보내줄 막중한 소임을 맡게 됐다. 산상억량은 향가를 일반 백성들의 눈높이에 맞추어 그들의 한을 달래주던 눈물가로의 전환을 시도했다. 억량이 가지고 있는 향가에서의 위치는 바로 이 대중성에 있다. 그는 백제 도거인(渡去人)들이 가지고 있던 나라 잃고 목숨 잃는 한(恨)의 감정을 작품에 투영시켜 대중화 하고, 이론화했다. 그의 이론은 ‘밑바닥 인생들의 업적을 사실보다 더 아름답게 꾸미라’는 것이었다. 산상억량에 의해 대중화되고 체계화된 향가는 점차 ‘눈물향가’로 발전해 갔다. 사례를 보자. 산상억량의 후원자였던 어느 관리의 아내가 사망했다. 남편의 내조를 위해 천하게 평생을 바쳤던 아낙이었다. 억량이 그녀의 삶을 미화하여 만든 작품 둘을 보고자 한다. 눈높이를 낮추었을 뿐 아니라 눈물가의 이론이 제시되어 있기에 매우 중요한 작품들이다. 천황가의 눈물을 닦아주던 향가가 이제 천하게 일하던 아낙의 벗이 되어주었다. <798번가>伊毛何美斯阿布知乃波那波知利奴倍斯和何那久那美多伊摩陀飛那久尒 ‘그대의 일생 공적을 어떻게 꾸며야 하는가. 천하게 일했음을 두둔하고, 베풀어 주고, 그대에게 알려주어야 할 것이다. 생전의 공적을 알려주는 것은 그대가 편히 저승에 가도록 하고, 험하게 일함에 대해 살아 있는 자와 그대가 서로 화합하게 하기 위함이라네. 그대의 무엇을 오래토록 꾸며야 할 것인가. 그대가 몸이 닳아 없어지도록, 비탈길을 날아다니듯 돌아다니며 오래토록 일했다고 꾸며야 하리’<799번가> ‘넓은 들가의 산에서 계통을 세워 눈물가를 짓는 것은 그대가 편히 저승에 갈 수 있게 하기 위함이라네. 생전의 공적을 꾸며 그대에게 알림은 살아 있는 자와 그대가 서로 화합하게 하기 위함이라네. 왜 꾸며야 하는가. 계통을 세워 기록하여 그대를 이롭게 하고, 일생의 많은 공적을 그대에게 알려 주어 살아 있는 자와 그대가 서로 화합하게 하기 위함이라네’ 고대의 백성들에게는 현실의 고통이 없는 곳이 저승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저승은 죽음의 바다 건너편에 있었고, 그곳까지는 배를 타고 건너가야 하는 험한 길이었다. 억량 이전의 그 길은 천황가의 사람들만 향가의 힘을 빌어 편하게 가던 길이었다. 그러나 백촌강 충격 이후 상황이 바뀌었다. 현해탄을 건너간 우리의 누이가 천황가의 예쁨만 받던 데에서 더 나아가 일본 땅 모든 이들의 눈물을 닦아주는 박래품이 되었다. 그 역할을 해낸 사람 가운데 산상억량이 있었다. 그가 얼마나 대중들의 사랑을 받게 되었는지 살펴보자.>>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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