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김우전 1엄마 아빠 이혼한 뒤 외가 비닐하우스에서 혼자 지내다 굶주린 개에게 물려 죽었다 살점 천 갈래 만 갈래 뜯겼단다 아홉 살이었단다 개는 경찰이 쏜 총알 받고 죽었다 한다 하느님 나라에서 둘은 다시 만났단다 아이는 꿰맨 자릴 보여 주며 씨익 웃었고 개는 송곳니 드러내며 총구멍 보여주고 멍 웃었다 한다 때때로 아이는 총알 지나간 구멍 막아주고 개는 꿰맨 자릴 핥아주며 구름 들판 뒹굴며 논다더라 2엄마는 야근을 나갔다 밖에서 방문 야물딱지게 걸어 잠그고 갔다 방안에서 배고프게 놀다 지쳐 잠든 사이 불이 났다 튼튼하게 잠긴 가난은 손톱이 빠지도록 긁어도 열리지 않았을 것이다 엄마! 부르는 소리 빠져나오지 못하도록 검은 연기가 기도를 틀어쥐자 불은 검붉은 아가리로 작은 몸을 한 입에 삼켰을 것이다 네 살, 또 하난 두 살이란다 역시 하느님 나라에 갔다 마음이 쌔까매진 엄마가 야근 마치고 돌아오는 깊은 밤마다 이마 위로 눈망울 같은 빛, 반짝반짝 내려보낸다더라3수영장에서 엄마가 준 요구르트 한 입에 마셨다 무척이나 시원하고 맛있었을 것이다 새콤달콤한 액체가 작은 위장으로 흘러들어 몸속 구석구석 쥐어뜯자 아이는 영원히 잠들었단다 구 년 동안의 소풍이었단다 아니나 다를까 하느님 나라에 갔다 깨어나자마자 빚 갚는 마음으로 독한 엄마에게 보험금 이 억을 주었단다 철창 속에서 고개 꺾은 엄만 말이 없다더라 -자본주의, 폭력, 그리고 어린이 “정인아 미안해” 최근 네티즌들의 마음을 온통 헤집어 놓은 화두다. 양부모의 학대로 입양 271일 만에 16개월의 짧은 생을 마감한 ‘정인’이가 한시도 가슴을 떠나지 않는다. 온 배가 피로 얼룩지고 췌장이 절단된, 교과서에 실릴 정도의 아동학대로 하늘나라로 간 어린 영혼. 입양되기 전 토실토실한 얼굴의 자지러지는 그 신비한 미소는 대체 어디로 사라졌는가? 이 시가 그리는 어린이들의 풍경 또한 이와 멀리 떨어져 있지 않다. 시는 각기 다른 세 장면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 근저에는 하나같이 자본주의적 욕망과 그 그늘인 무너진 가족공동체가 놓여 있다. 부모의 이혼으로 양육을 받지 못한 아홉 살 아이는 결국 외가 비닐하우스에서 혼자 지내다 굶주린 개에게 물려 죽는다. 또 밖에서 방문을 잠그고 어머니가 야근 나간 사이 불이 나 연기에 질식되어 네 살, 두 살 아이가 죽기도 하고, 심지어 수영장에서 엄마가 준 요구르트를 먹고 죽기까지 한다. 왜 자본주의의, 어른들의 욕망의 희생자가 어린이들인가? 신자본주의적 삶이라는 폭력에서 가장 무방비로 노출되어 있는 존재가 바로 어린이다. 시인은 부모가 욕망에 불을 켜거나 가난 속에서 최소한의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자본에 구속되는 동안 죄 없는 어린 것들이 속수무책 죽어가는 세계를 자본주의의 끝판 ‘오늘’로 읽은 게 아닐까? 시인은 아홉 살 아이의 살점을 물어뜯은 개를 나무라지 않는다. 천국에서 만난 아이와 개가 서로 꿰맨 자리와 총구멍을 보여주며 웃고, “구름 들판 뒹굴며” 노는 장면을 보라. 가축도 그렇지만 말 한 마디 하지 못하고 간 아이는 천사 같다. 불에 타 죽은 두 살, 네 살 아이는 별이 되어 야근 마치고 돌아오는 엄마의 이마 위로 눈망울 같은 빛, 반짝반짝 내려보낸다. 또 천국에서 깨어나자마자 “빚 갚는 마음으로 독한 엄마에게 보험금 이 억을”준다. 그래서 부탁한다. 갈 데까지 간 자본주의여, 그들의 하수인인 어른들이여! 누구도 원망하지 않고 살아가는 어린 천사들에게서, 더 이상 그 천진을 빼앗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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