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97년 2월 이순신 장군은 용렬한 선조에게 ‘삼도수군통제사’에서 파직, 영어의 몸으로 죽기 직전 우의정 약포 정탁이 자신의 목숨을 담보로 한 신구차(伸救箚) 상소로 출옥 1597년 4월 1일 백의종군 한다. 1597년 7월 15일 삼도수군통제사 원균 장군이 칠천량 해전에서 조선수군 1만 명과 주전함 판옥선 백여 척을 잃고 대패하자, 조선수군은 궤멸돼 조선의 운명은 백척간두에 섰다. 이에 선조는 겁을 먹고 조정은 자중지란에 빠지자 백사 이항복은 선조에게 건의하여 사죄를 담은 교지를 내려 이순신을 달래고 삼도수군통제사에 복귀, 사직을 보존토록 했다. 이순신은 백의종군의 와중에 칠천량 전투에서 경상우수사 배설이 빼돌린 판옥선 12척과 조탐선 31척 그리고 어선에 장대를 길게 늘여 전투선으로 가장시킨 30여 척의 선단을 꾸려, 상시 전투태세를 갖췄다. 1597년 9월 16일 세계 해전사에서 가장 경이롭고 불가사의한 명랑해전의 서막을 이렇게 열었다. 일본군 연합함대는 333척의 병참선, 척후선을 합하면 500여척, 수륙양군 10만이었다. 선봉의 1함대 133척은 구루시마 미치후사, 그 뒤를 이어 2함대 70척은 도도 다카토라, 가토 요시하키의 기함 지휘하에 합세했다. 울돌목(바닷물이 ‘울’면서 ‘돌’아가는 ‘목’)은 좁은 해협(폭 200~500m)에 유속은 약 10~11노트(시속 18.5-20.4km)로 매우 빨랐다. 왜의 집결된 함대가 비좁은 수로를 종대로 겨우 빠져 나오자마자 이순신은 먼저 현자총통, 지자총통(사거리 300~400미터)으로 원거리에서 쏴 적선을 관통 박살내고, 이어서 조란환(현대의 클레이모어 산탄격인 새알 크기의 쇠구슬을 한번에 100~200개씩 발사, 판옥선 1척당 일 회 발사량은 2천 개다.)으로 합력사살(合力射殺) 했다. 영민한 이순신 장군은 사전답사 후 가장 좁은 폭 280m의 명량해협(울돌목) 양안에 ‘막게’를 박아 놓고, 수중 쇠사슬 ‘철쇄(鐵鎖)’를 연결해 몰래 숨겨 놓고 기다리다 왜군 대선단의 일진이 울돌목에 들어서자마자 체인에 걸려 좌충우돌 하게 한 후 일제히 함포사격을 가해 단 한 시간 만에 130여 척을 섬멸, 수장시켰다. 이순신 장군이 동아시아 총7년 대전쟁 임진왜란, 정유재란까지 31전 31승의 전설적인 불패신화를 이룬 것은 그 당시로는 전 세계에서 가장 앞선 화약무기로 현대전의 크루즈미사일 격인 대장군전, 장군전, 오늘날의 ‘K9 자주포’ 격인 천자총통, 지자총통, ‘강철비’의 MLRS의 자탄 클레이모어 격인 조란환(鳥卵丸)을 운용했다. 주력선인 <철갑 거북선> 및 <평저 판옥선>에 천자총통, 지자총통, 현자총통, 황자총통 대포, 대장군 대포, 블랑기 대포, 벽력 대포, 대완구, 별대완구, 총통대완구를 장착 원거리 타격법을 썼으며 현대 크루즈미사일의 원조격인 대장군전, 장군전, 중전, 자대전, 자중전을 300(~400)m 밖에서 발사 정확히 적선을 타켓팅해 Hit to Run 방식으로 관통했다. 현대전의 다연장로켓시스템(MLRS)인 승자총통, 팔전총통에다 장편전, 총탄을 동시다발 런칭한 ‘진일시집중타격법’은 세계해전사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다. 임진왜란시 명나라의 진린 장군은 충무공 이순신의 절이도 해전을 산 최고봉에서 자신의 최측근 부장 등자룡과 관전했는데, 일사불란하게 일본군선 170척을 일거에 궤멸시키자 충무공에게 “통제사 그대의 탁월한 능력은 너무나 한도 끝도 없이 거대하오”라고 극찬하였다. 한산대첩에서 원사이드로 처참히 패한 적장 ‘와키자카 야스하루’는 너무나 신출귀몰한 그의 전법에 전율하면서도 한편 흠모했다. 와가자카 야스하루는 이렇게 회고했다. “내가 제일로 두려워하는 사람은 이순신이며, 가장 미운 사람도 이순신이며, 가장 좋아하는 사람도 이순신이며 가장 흠모하는 사람도 이순신이며 가장 죽이고 싶은 사람 역시 이순신이며, 가장 차를 함께 하고 싶은 이도 바로 이순신 이다” 한편, 러일전쟁의 백미 쓰시마 해전에서 러시아의 발틱 함대를 완파한 일본의 전쟁영웅 ‘도고 헤이하치로’ 제독 겸 해군원수는 승전 축사에 답하기를 “이순신 장군이 만약 나의 함대를 갖고 있었다면 그는 세계해상을 지배 했을 것이다. 나를 영국 해군 제독인 넬슨에 비하는 것은 가하나 이순신에 비하는 것은 감당할 수 없는 일이다”라고 극찬하며 경외(敬畏)를 표했다. 장황하게 이 글을 쓴 이유가 있다. 이순신 장군은 전쟁이 터지기 전부터 만에 하나라도 발발할지 모를, 전쟁에 필요한 많은 준비를 해 놓았기에 전쟁을 승리로 이끌 수 있었다. 코로나 19라는 대란은 현재의 일일 뿐, 앞으로 또 일어날 전염성 질환은 또 언제 어떤 형태로 찾아올지 모른다. 이에 대한 대비는 철저한 기초과학과 이를 기반으로 한 의약산업의 육성에 달렸다. 전염병에 관한 한 우리의 명랑해전은 지금부터 준비해야 할 숙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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