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서 언급했듯이 오페라의 발상지는 이탈리아의 피렌체이다. 17세기 초반에 로마에서 반짝 흥행을 주도했지만 교황이 있는 곳이라 규제가 심했다. 여성들이 무대에 설 수 없었고, 당대의 아이돌스타였던 카스트라토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인식이 강했다. 그 결과 전도유망한 작곡자들이 로마를 떠났고, 반사적으로 베네치아가 오페라의 중심지로 떠오르게 된다. 베네치아가 어디던가? 해상무역으로 막대한 부를 축적한 상인들이 도시의 중심세력이었던 곳이다. 우리는 셰익스피어의 소설 <베니스의 상인>에서 귀족 못지않은 그들의 권세를 이미 목격했다. 탄생기의 오페라는 궁정에서 펼쳐지는 연희로 왕과 귀족들이 소비하는 그들만의 오락이었다. 하지만 자본과 더불어 교양까지 겸비한 상인들은 마침내 오페라를 볼 권리를 쟁취해 낸다. 1637년 베네치아에 오픈한 산 카시아노(San Cassiano) 극장은 평민이 티켓을 사서 입장한 최초의 상업극장이다. 평민들도 돈을 내면 얼마든지 오페라를 볼 수 있었던 것이다. 재미있는 건 평민들이 1층 공간을 차지했다는 사실이다. 당시 귀족들은 2층 이상에 위치한 박스석에서 오페라를 관람했다. 1층 좌석이 2층 이상의 자리보다 훨씬 비싼 오늘날과는 판이하다. 그 시절에 베네치아에만 22개의 극장이 생겨났다고 한다. 이렇듯 베네치아는 오페라의 대중화를 실현한 도시이자 명실상부 세계 오페라의 수도였다. 하지만 공(功)이 있으면 과(過)도 있기 마련이다. 오페라의 초기 작품은 그리스 비극을 재현한 예술성 높은 작품들이 주류였지만, 오페라의 주도권이 상인으로 넘어가면서 점점 초심을 잃게 된다. 오페라 극장이 상인 주판알 튕기듯 수익성을 고려하게 된 것이다. 이에 대한 반작용으로 18세기에는 나폴리로 주도권이 넘어가려는 경향도 있었다. 하지만 정통 오페라의 본향으로서 베네치아의 지위는 쉽게 상실되지 않는다. 오늘날 베네치아(영어로 베니스)는 국제영화제나 비엔날레로 더 유명한 예술도시이다. 그런데 그 화려한 명성은 밀라노에게 주도권을 내주기까지 무려 300년 동안 세계 오페라의 중심에 우뚝 서있었던 베네치아의 내재적 예술역량에서 비롯된 것임을 이젠 쉽게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