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천서 정미소가 반 이상 줄었는데 우리 동네엔 아직 남아있지요” 경주에서 국도 4호선을 따라 건천방면 모량리를 지나면 유명한 고분군이 있는 마을이 나타납니다. 바로 금척리(金尺里)인데, 신라시조 박혁거세가 신인으로부터 받았다는 신비의 금자(金尺)가 묻혀있는 곳이라고 전해져 ‘금척(金尺)’으로 불린데서 마을 이름이 유래했다고 하는 마을입니다. 멀리 금척리 고분군 바깥 외부 대로에서 이 마을을 바라보면 마을이 자그마하고 아기자기하게만 보입니다. 하지만 금척리의 위상은 골목안으로 잦아들어야 보이지요. 고분군의 명성만으로 이 마을을 평하기에는 문화 자산과 유산이 널려있는 ‘큰’ 동네입니다. 마을길도 여느 시골길과는 다르다는 인상을 풍깁니다. 넓고 번듯한 골목길이 시원스레 연결되고 마을 어디서든 이야깃거리가 넘쳐나는 알짜배기 명품 동네입니다. 금척리 주민들은 주로 논농사 외 포도농사를 짓고 찹쌀보리단지로도 유명하고 버섯을 생산하는 농가들도 다소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일까요. 골목 한 켠 금척고분길 골목길에선 ‘금척정미소’ 라는 간판글씨가 수 십 년의 세월 탓인지 거의 지워지고 바래저서 어렴풋하게 보이는 정미소를 만납니다. 이곳 금척리 들판에서 수확한 벼와 보리 등 농산물을 찧어왔던 이 정미소는 여느 시골의 정미소보다는 그 규모가 제법 큰 편입니다. 보존 상태도 좋아서 아직 그 기능을 수행하는데 문제없어 보입니다. 정미소는 이 마을의 어느 개인에 양도됐지만 지금도 운영되고 있다고 했습니다. “마을에 이 정미소를 운영하는 분이 계십니다. 건천서 정미소가 반 이상 줄었는데 우리 동네엔 아직 남아있지요. 요즘은 벼 수확시 공동수매로 넘어가 실제로 가공할 것이 별로 없어요. 수매하기 15년 전까지는 일거리가 많았어요. 올해도 보리도 찧고 했지요. 옛날에는 이 정미소에서 국수면도 뽑았어요. 뻐얼건 면발의 국수가 맛있었지요” 길을 지나던 주민들의 전언입니다. 정미소 바로 맞은편에는 양곡 창고도 있었는데요. 아직 이 마을 주민들이 창고로 활용하고 있었습니다. 정미소 외부로 드러나 설치돼 있는 등겨(벗겨 놓은 벼의 껍질) 뽑아내는 기구가 참 정겹습니다. 함석으로 만들어 붉은 페인트칠을 한 이 기구는 칠이 벗겨져 얼룩덜룩 했지만 제 기능을 톡톡히 하는 듯 건장해보였습니다. 이곳은 한 때 이 마을의 핫 플레이스 였겠죠? 쌀을 빻으며 이전 저런 마을 사람들의 내밀한 이야기들도 오갔을 테니까요. 아직 남아있는 시골마을의 정미소들은 전국 많은 곳에서 문화공간으로, 상업 공간으로 환골탈태 하곤 합니다. 오래된 것들을 바라보는 시각이 ‘활용’으로 귀결되는 듯합니다만 금척정미소는 이 마을에서 아직도 유용하게 사용되는 작고 귀한 유산입니다. 글=선애경 문화전문기자/그림=김호연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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