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세밑은 코로나로 차갑고 암울하기만 합니다. 그 흔한 크리스마스 캐롤도 찾아 들어야 할 정도로 경주 시가지는 조용하기만 하고요. 이렇게 올 한 해도 어김없이 저물어가고 있습니다. 부푼 희망으로 시작했던 2020년은 어떻게 지났는지도 모를 정도로 혼란한 시간들뿐이었습니다. 확연하게 달라진 일상 속 풍경은 세 밑 풍경도 변화시켰습니다. 올해 성탄절은 현장 미사와 예배가 없는 한국 천주교와 기독교 역사상 초유의 날로 기록될 전망이라고 합니다. 그럼에도 경주역 광장에는 환하게 불을 밝힌 대형 크리스마스트리가 지난 11월 28일 세워져 점등되었습니다. 예년처럼 다음해 1월 중순경까지 경주역 주변을 밝힌다고 합니다.
이 성탄목은 매년 부처님오신날 봉축탑과 함께 이곳 경주역 광장을 장식해 왔는데요. 벌써 수십 년 째 이어져오는 풍경입니다. 크리스마스트리 점등은 종교적 의미를 떠나 한 해를 마무리하고 경건한 마음으로 새해를 맞이하며 감사하는 마음과 화합의 뜻을 나누기 위해 매년 경주시에서 실시하고 있습니다. 2010년부터는 경주시 재원으로 경주역 성탄목을 세웠고 그 이전에는 기독교연합단체에서 비용을 대고 세웠다고 합니다. 당시 경주역과 기독연합단체는 성탄목의 위치 선정에서 의견이 상충되기도 했다는데요. 기독단체에서는 눈에 잘 띄는 경주역 한가운데를 주장했고 경주역은 고객들의 왕래가 가장 빈번한 곳은 곤란하다는 입장의 차이가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잖아도 일찍 찾아오는 경주의 겨울 저녁이 코로나로 더욱 조용해졌습니다. 텅 빈 역사(驛舍) 주변과 오가는 행인들의 걸음이 뜸한데 저 홀로 불 밝히는 트리는 그래서 더욱 쓸쓸한 성탄 전야를 떠올리게 합니다. 자세히 보니, 성탄목의 하단에는 커다란 산타할아버지가 그려져 있고 ‘추억을 남기세요’라는 안내 문구가 있습니다. 많은 이들이 빼곡하게 각자의 소원을 적어두었습니다. 아마도 경주를 찾는 방문객과 시민들의 피로감이 이제 절정으로 치닫고 있는 것을 반영하는 듯합니다. 이 지난한 시간이 쉽게 끝나지 않을 분위기지만 그래도 희망을 가지고 새해를 맞이해야 할 것입니다. 푸시킨이 노래하지 않았습니까?
‘마음은 미래에 사는 것/ 현재는 한없이 우울한 것/ 모든 것은 지나가는 것이니/ 그리고 지나가 버린 것은 그리움이 되리니//’
길고 어두운 세밑을 환하게 밝힐 크리스마스트리의 불빛은 한 해 동안 노고를 아끼지 않았던 경주시민에게 전하는 작은 희망의 메시지가 될 것입니다. 직접 만나진 못해도 가족과 지인들에게 안부라도 전하며 다가오는 새해를 맞이할 일입니다. 또한 이 성탄목도 경주를 밝히는 작은 등불로 우리 곁에 남아주기를 기원해 봅니다.
글=선애경 문화전문기자 / 그림=김호연 화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