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에서 동북아 전체의 나라들이 서로 얽혀 판을 벌였다. 660년 7월 신라와 당나라가 한 팀을 만들어 갑자기 쳐들어 오자, 백제는 왜국에 지원을 호소해 그들과 싸웠다. 전쟁 발발 6개월 후인 661년 1월 14일, 일본 시코쿠(四國)의 한 나루터에서 기묘한 만엽가 하나가 만들어졌다. 이후 누군가가 만엽가 4516작품을 편집하면서 이 작품에 매우 빠른 순번을 부여하였다. 8번가였다. 이렇게 빠른 번호를 부여한 데는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신라향가 창작법으로 8번가를 달구어 녹이면 다음과 같은 금물이 흘러나온다.
熟田津尒船乘世武登月待者潮毛可奈比沼今者 許藝乞菜
그대가 곡식이 익은 밭(熟田)의 나루터에서 저승 가는 배에 오른다. 삼십인의 저승 무사들이여, 망인을 모시라. 뱃사공들이 달 떠오르기를 기다리는데 밀물이 나란히 소(沼)로 밀려 들어온다. 이제 편안히 저승에 가오시라. 이영차, 힘차게 기예를 펼치라.
‘누구를 위한 작품인가’를 추적하는 것이 본 작품을 보는 포인트다. 서기 661년의 작품이기에 본 작품의 주인공이 한반도에서 일어난 전쟁과 관련될 사람일 수도 있다. 그러기에 잡설을 최대한 줄이고 근거를 위주로 하여 이 작품에 대한 필자의 의견을 제시해 보려 한다.
8번가의 작자는 액전왕(額田王)이라는 여인이다. 일본인들에게 큰 사랑을 받는 여인이다. 그녀는 천무(天武) 천황과의 사이에서 딸을 낳았고, 그 딸은 홍문(弘文) 천황의 황후가 된다. 천황가와 깊숙이 연결된 여인인 것이다.
숙전진(熟田津)이란 어느 곳인가. 만엽집 전체에서 ‘전(田)’이 나오는 경우를 모두 살펴본 결과 숙전진(熟田津)이라는 세 글자를 고유명사로 보기 어려웠다. 그렇다면 숙전(熟田)이라는 한자의 의미를 따져 보아야 한다. 숙(熟)은 ‘여물다’, 전(田)은 ‘밭’이다. 만엽집에서 밭(田)은 공간적 의미로서 죽은 사람이 살던 나라나 지역을 뜻하였다. 숙전(熟田)은 ‘문화적으로 여문 나라’로 해독한다. 만엽집에서는 왜국을 가리키는 문자로 ‘황(荒)’이라던가, 이와 유사한 의미를 가진 글자를 사용하고 있다. ‘거친 곳`이라는 뜻이다. ‘문화가 익은 나라’가 ‘거친 곳’ 일본을 가리킬 수는 없다. 왜국의 입장에서 볼 때 ‘문화가 익은 나라’라면 한반도의 국가들이거나, 당나라가 그 대상일 것이다. 당시 왜국은 백제와 힘을 합쳐 나당 연합군에 맞서 전쟁을 벌이려 하고 있었다. 때가 때인데 왜국의 사람들이 신라와 당나라를 ‘문화가 익은 나라’라고 칭찬할 리 없다. 따라서 본 작품에서의 ‘숙전(熟田)’은 백제를 말하는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숙전진(熟田津)에서의 진(津)이란 배가 정박하는 나루터이다. 진(津)은 사람이 죽은 후 정들었던 이웃들과 이별하고 저승배(船)에 오르는 곳이다.
8번가는 어떠한 목적의 작품인가. 작품의 내용으로 보아 ‘눈물가’로 분류된다. ‘눈물가’란 사람이 죽었을 때 그와 이별하며, 영혼이 편안히 저승에 가게 해달라고 청하는 작품이다.
이를 확인해주는 구절을 적시하겠다. 원문 속 ‘월대(月=달, 待=기다리다)’가 그것이다. 한국어 어순법에 따라 ‘달이 떠오르기를 기다린다`로 해독되어야 한다. 고대인들은 영혼이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 저승으로 간다는 내세관을 가지고 있었다. 만일 달도 없는 밤이라면 배는 어둠속에서 길을 잃어 떠돌게 된다. 때문에 날이 밝거나, 달이 떠오를 때 떠나야 했다. 이 작품이 창작된 날은 661년 1월 14일이었다. 즉 보름달이 수평선 위에 괴괴히 떠오르는 날이다.
이 뿐만이 아니다. 순조로운 항해를 위협하는 풍랑을 제압하기 위해 ‘이(尒)’라는 청언(請言)을 사용하고 있다. ‘이(尒)’는 향가에 힘을 실어 주는 마력의 소리다. 마성(魔聲)이다. 어두운 밤 바닷가에 서서, ‘저승바다여 잔잔하라’고 천지신물에게 외치는 고대인의 소리였다. 죽은 자의 신분은 무엇인가.
그는 왕이었다. 모극(毛可)과 세무(世武)라는 문자들이 죽은 자가 왕이란 것을 말해주고 있다. 毛可(털 모, 오랑캐 임금의 이름 극)은 ‘수염이 난 임금’을 뜻한다. 수염은 권위의 상징이다. 世武(世=>卋, 세 개의 十=삼십, 무사 무)는 ‘삼십인의 저승무사들’이라는 뜻이다. 만엽집에서 사람을 저승으로 데리고 가는 저승 사자는 ‘장(將 장수, 인솔자 장)’이나 ‘무(武 무사 무)’로 표기되고 있다. 모극(毛可)과 세무(世武)를 함께 엮어 풀이해 보면 삼십인의 저승무사들이 수염이 난 왕을 인도하여 저승으로 가고 있었다. 왜 보름날 하루 전에 만들었는가. 661년 1월 14일이었다. 죽은 자의 영혼이 저승배에 탔다. 비록 밤이라 하더라도 보름달이 떠오를 것이므로 어둠은 문제가 될 수 없다. 밀물(潮)도 들어왔다. 보름달이 떠오르고, 밀물이 들어와 저승배가 출발할 수 있는 여건이 갖추어졌다. 영혼이 떠나는 최적의 시각이다. 이러한 때 제명천황과 액전왕이 망인을 저승에 보내주고 있었다. 기록된 그날에 있었던 일들은 바다의 여건으로 보아 실화로 보아야 할 것이다.
그날 일본 황실에 깊숙히 개입하던 여인이 눈물가 하나를 만들어 제명여제에게 바쳤다. 내용은 백제의 어느 왕이 편안히 저승에 갈 수 있기를 기원하는 내용이다. 순서도 만엽집의 앞부분에 놓여 있다. 무엇인가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지는 느낌이 든다. 일본 고대 문학 작품집 속에 느닷없이 한반도 이야기가 들어있는 것 같다.
근세 이후 우리나라에는 밑도 끝도 없는 국뽕류 이야기들이 범람한다. 주로 한반도 문화가 없었다면 일본도 없었을 것이라는 스토리들이다. 프랑스가 없다고 영국문화가 없었겠는가. 국뽕은 방 안에서 혼자 즐기는 만족감이다. 극일이란 쌍방이 인정할 때 이루어지는 기품 있는 것이다. 세계 10대 대국 안에 드는 민족끼리 싸구려 삼류 국뽕에 취해 횡설수설하는 것은 부끄럽다. 일본인들이 마음의 고향이자 정체성이라고 스스로 인정하고 있는 만엽가 속에 한반도 이야기가 들어 있다면 사태가 심각해진다. 일본인 학자 누군가가 단군신화 속 곰이 일본과 관련 있다고 하면 가만있을 한국 학자가 있겠는가. 어두운 동굴 속 호롱불의 심지를 돋구고 한 걸음 더 가까이 다가가 드려다 보아야 한다. 과연 만엽집 속에 한반도 이야기가 들어 있을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