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과 관광철이 되면 경주는 외지에서 온 자동차들로 북새통을 이룬다. 코로나로 전국적인 이동이 줄었다고는 하나, 여전히 유명관광지인 경주는 넘쳐나는 차량으로 교통혼잡과 주차 문제가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교통 문제 해결을 위해 길을 넓히고 공터를 주차장으로 만들어도 모자랄 진데, 도로는 좁히고 주차장을 줄이자는 주장은 이상한 소리로 들릴 수도 있다. 하지만 도로는 넓힐수록 자동차는 더 늘어나게 되고 주차장이 있다는 정보는 사람들이 더 차를 몰고 나오게 만든다. 그렇다고 무작정 차량을 통제할 수도 없다. 그 대안은 친환경교통체계와 보행친화적 도시조성에 있다.
경주는 대중교통 중심의 도시로 변화가 필수적으로 요구된다. 지하철과 같은 대중교통 서비스가 편리한 대도시에 비해 지방의 중소도시들은 개인차량 이용률이 높을 수밖에 없다. 인구수에 비례해서 따져보면 일인당 오염물질 배출은 서울이나 부산보다도 더 높다. 친환경도시의 이미지를 내세우지만 실제로는 대도시보다 못한 상황이다.
그렇다고 문화유적이 도처에 묻힌 경주에 지하철을 도입할 수도 없다. 친환경버스와 같은 대중교통을 적극 도입하고 주요 정체가 발생하는 관광지역에는 버스전용차선을 과감히 도입해야 한다. 극성수기 보문과 시내를 연결하는 버스전용차선의 존재와 짧은 배차간격은 자연스럽게 대중교통이용을 유도하게 될 것이다. 서울에서도 광화문이나 강남과 같은 도심지역에 갈 때는 차를 두고 가는 게 일상이다.
운용방식도 버스공영제를 도입하여 수익성보다는 도시환경개선과 도시민의 삶의 질 향상을 위한 서비스 제공의 관점에서 접근이 필요하다. 대중교통 서비스가 닿기 어려운 지역은 공영자전거, 전동킥보드와 같은 라스트마일 이동수단을 보급하여 교통서비스 음영지역 발생도 보완해야 한다. 외부유입 차량은 외곽의 환승센터에 주차하고 도시 내부는 대중교통을 이용하도록 유도하는 방안도 필요하다. 불국사, 보문단지와 같은 거리가 있는 지역거점들은 향후 도입이 검토 중인 폐선로를 이용한 트램과 같은 친환경교통수단으로 이어주면 된다.
다음으로 대중교통체계 중심도시가 가진 특징인 보행공간의 확대도 함께 진행되어야 한다. 경주의 지역간 이동도로와 일부 순환로를 제외하고는 기본적으로 보도가 도로보다 넓어져야 한다. 보행공간의 확보는 자동차에게 내어준 보행자의 길을 되찾아 오는 것이다. 원래 길의 주인은 사람이다. 지금은 주인인 보행자들은 양 갈래의 좁은 보도 위로 몰렸고 자동차들이 넓은 길을 점령하고 있는 형국이다. 차를 타고 스쳐 지나가는 도시보다 걸어 다니며 도시를 즐기게 만드는 것은 침체한 시내 상권을 살리는 방안이 될 수 있다. 유명한 음식점 하나가 브랜드가 되기보다는 ‘황리단길’, ‘읍성길’과 같이 이어진 ‘길’이 지역의 브랜드가 되고 상권활성화의 핵심 요소가 되는 것을 우리는 이미 경험해오고 있다. 걸어 다니다 보면 그간 놓치고 지나쳤던 보석 같은 곳들을 발견하게 되고 그 곳들이 이어져 걷기 좋은 길이 되면 상권활성화의 단초를 제공하는 것이다. 그리고 보행로는 장애인, 노약자, 유모차 통행을 위한 배려도 필요하다. 휠체어와 유모차가 다니기 쉽도록 이동경로의 단차를 조정하고 쉬어갈 수 있는 벤치와 그늘막을 제공하여 보행친화형 도시로 만들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친환경교통체계와 보행친화형 도시조성에서 놓치지 말아야 하는 것은 지역주민의 입장에서도 편리성을 제공해야한다. 불편을 감수하면서까지 진행되는 교통체계의 혁신이 되어서는 안 된다.
차가 없어도 일상생활이 가능한 환경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자동차 이용이 반드시 필요한 경우도 대비해야 한다. 소방차의 이용, 장애인 주차공간의 확보, 생업과 관련된 자재의 하역과 운송이 가능한 가변적인 도로체계를 계획하고 버스전용차선의 운행도 관광 성수기에 한정하는 등 그 운영에 있어서도 유연한 방식이 도입되어야 한다.
교통체계혁신의 성공을 위해서는 경주시민들의 친환경교통체계에 대한 인식전환과 협조가 무엇보다 필요하다. 찻길을 넓히면 차가 늘어나고, 사람 길을 넓히고 편리하게 만들면 사람이 모이고 교류하게 된다. 친환경교통체계로의 전환과 보행친화형 도시조성에 경주의 미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