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시야가 흐릿하여 책을 보기가 힘들어졌다. 시력 검사를 제대로 받은 후 처방을 받아 안경을 새로 맞추어야 되겠다는 생각에 안과를 찾았다. 증세를 이야기하니 이런저런 검사를 한다. 백내장이 상당히 진행되어 수술을 해야 한다고 한다. ‘몸이 천 냥이면 눈이 구백 량’이라는 속담처럼 우리 신체에서 가장 중요한 기관이 눈이다. 비록 안경을 쓰고는 있지만 그동안 눈에는 별 이상을 느끼지 못했는데 이제 노화가 눈에서 시작하는가 보다. 바로 날짜를 정하여 수술을 했다. 수술을 하면 곧 눈이 밝아질 것이라는 기대와는 달리 수 주가 지날 때까지 시력이 완전히 회복되지 않는다. 그렇지 않아도 코로나 19로 외출조차 자유롭지 않아 갑갑하였는데 독서나 컴퓨터 활용도 제대로 할 수 없으니 살아도 사는 게 아니다. 울적한 마음을 달랠 겸 활성리 석불입상을 찾아 길을 나섰다. 경주에 있는 문화재는 거의 찾아보았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활성리 석불입상에 대해서는 그런 문화재가 있다는 정도로만 알고 있었다. 활성리는 북쪽으로 괘릉, 남쪽으로 말방, 서쪽으로는 죽동 마을 사이에 있다. 이 마을은 장이영(張以英)이라는 이가 개척하였다는데 이곳에 장군수(將軍水)인 활수(活水)가 솟아났다 하여 마을 이름이 되었다고 한다. 활성의 웃말과 아랫마을 사이에 있는 샛말 앞에 있는 샘이 활수인데 이 물을 오래 마시면 장사가 된다고 하여 장군수라고 하였다. 활성이라는 마을 이름도 이 활수에서 유래되었다. 이 석불이 있는 위치는 대강 알고 있지만 일단 네비게이션의 도움을 받기로 했다. 울산까지 가는 산업도로는 여전히 차량 통행이 많다. 최근에 과속 단속 장비가 곳곳에 설치되어 사고가 크게 줄었지만 과거에는 대단히 위험한 도로였다. 도로 주변에는 사고로 사망하거나 다친 사람이 없는 마을이 없을 정도로 악명이 드높던 도로였다. 남자는 태어나서 평생 세 여자의 말을 잘 들어야 한다는 유머가 있다. 성인이 되기까지는 어머니, 장가가서는 아내, 그리고 운전할 때에는 네비게이션 아가씨의 말을 잘 들으면 크게 어긋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네비게이션이라 것을 그대로 믿었다가 더러 낭패를 본 기억이 있다. 활성리 석불입상을 찾을 때도 그러했다. 네비게이션 아가씨의 안내를 따라가는데 위험한 지점에서 좌회전을 하란다. 죄회전을 위해 멈추었다가는 큰 사고를 당할 것 같아 이를 지나쳐 안전하다고 생각되는 곳에서 방향을 바꾸어 겨우 목적지에 도착했다. 길옆 연지암이라는 표지석을 지나 절 마당으로 들어가서 석불을 찾아 두리번거리는데 개가 시끄럽게 짖는다. 1987년 새로 중건한 남향의 대웅전과 서향의 요사채 두 동이 암자의 건물로는 어울리지 않는다. 스님 한 분 나와 개를 달래며 필자를 쳐다본다. 찾아온 사유를 이야기하니 법당으로 들어가 보라고 한다. 대웅전 현판이 있는 건물 안은 여느 사찰의 법당과는 달랐다. 상단에는 새로 조성한 삼존불을 모시고 그 왼쪽에는 신중단, 오른쪽 한켠에 석불입상이 있다. 그리고 서쪽 벽면은 영가단이다. 가장 중요한 자리에 모셔야 할 석불을 구석 자리로 밀어낸 것이 안타깝게 느껴진다. 이 석불은 어느 날 한 보살이 밭 가운데서 목탁소리가 들려오는 꿈을 꾸고 직접 파내었으며, 보살의 이름을 따서 암자 이름을 연지암으로 했다고 전한다.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96호로 지정된 이 석불은 전체적인 조각 수법은 감산사 아미타여래입상과 미륵보살입상과 비슷한데, 신라 하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광배는 신광과 두광 모두 이중으로 선을 돌리고, 그 밖으로는 화염문이 새겨져 있다. 불상의 머리에는 상투 모양의 나선형 머리 묶음이 있고, 귀는 어깨에 닿을 정도로 길고, 짧은 목에는 삼도를 표현하였다. 가사는 통견인데 목에 3중으로 테를 둘렀다. 옷주름은 돋을새김으로 표현하였는데 허리까지 반원형으로 하고 그 아래에서는 Y자형으로 갈라지고 있다. 양 다리는 타원형으로 옷 주름을 표현하였고 양팔에 걸치는 옷 주름은 상당히 굵고 두텁게 조각하였다. 왼손은 들어 올려 약그릇과 같은 것을 들었으며, 오른손도 배에 들어 올려 둘째손가락은 펴고 나머지 손가락은 서로 붙여 밖을 향하였다. 발목 아래는 확인할 수 없게 되어 있다. 얼굴 부분은 마모가 심하여 근래에 다시 보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전체적으로 체구가 균형이 잡힌 당당한 모습이며, 왼손에 약사발을 들고 있어 아픈 사람의 소망을 꼭 들어준다는 약사불인 듯하다. 그러나 마을에서는 이 불상을 미륵불이라고 하는데, 그 연유를 아는 이가 없고 문헌에도 나타나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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