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 신라의 수문장이 되어 서라벌의 맥을 잇고자 노력했고 죽어서는 남산의 수호신이 되리라’던 고청 윤경렬(古靑 尹京烈, 1916~1999) 선생의 흔적은 선생이 제작했던 작은 토우에서부터 남산 골짜기의 고졸한 석탑에 이르기까지 아직도 우리 곁에서 선연하다.
향토 사랑을 실천한 큰 스승 고청 윤경렬 선생, 신라 문화를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 하나로 평생을 문화재 지킴이로 살다 간 정신을 기리기 위해 후학들이 마음을 두는 따스한 그 곳, 경주시 인왕동 268번지 양지마을(양지길 39-3)에 선생의 고택이 있다. 삭풍에도 볕이 따스한, 그래서 햇빛마을로 불리는 동네의 자택은 향후 전문적인 수리와 기념관 건립이 추진될 예정으로 초읽기에 들어갔다고 한다.
고청 선생의 숨결이 살아있는 고택의 사랑채에는 고청 선생의 생전 사진, 자화상을 비롯한 유화작품과 토용들이 자리하고 있다. 선생이 우리 곁을 떠나신 지 어느덧 20년이 흘렀다. 선생의 업적은 태산보다 컸기에 빈자리는 넓기만 하다. 선생의 제자들이 주축이 된 고청기념사업회(회장 김윤근, 관장 윤광주)에서 2010년경 고청기념관 건립 추진을 위한 첫발을 내딛었다는 소식이 있은 지 올해로 10년째다. 그 10여 년의 시간동안 기념관 건립은 뚜렷한 진척없이 여러차례 설계가 수정되었다. 최근, 3억5000만원의 예산(문화유산국민신탁 지원금 2억7000만원, 도·시비 보조금 6000만원, 고청기념사업회 2000만원)으로 조촐하게나마 단층으로 내년 3월경 착공할 수 있을 것이라는 소식을 접한 것은 만시지탄이었지만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다.
지역민의 고청기념관 건립에 관한 소망과 관심은 지대하다. 아직도 고청 선생의 모습과 활동들이 기억에 생생하다는 시민들은 하루라도 속히 기념관 건립을 염원하고 있던 차제에, 고청기념사업회 자료와 아드님인 윤광주 선생에게서 그간 기념관 건립추진경위와 당위성에 대해 들어보았다. 고청 선생께서 그토록 사랑하셨다는 경주 남산의 끝자락 양지 바른 이곳에서 영원한 신라인이자 문화인이셨던 선생의 열정과 뜻을 기리는 공간이 내년 봄날 착공되길 기대해본다.
-타계할때까지 신라문화 보존하고 가꾸는 일에 매진, 지금의 많은 문화운동의 근간 이뤄 선생의 업적과 활동을 일별해 소개하기는 송구하나 소략해본다. 고청 선생은 1916년 함경북도 경성군 주을면 중향동에서 태어났다. 1949년부터는 경주로 옮겨와 한국풍속인형연구소에서 신라 토용에 해당되는 토제인형과 토제완구를 제작했는데, 선생의 아드님인 윤광주 선생은 이 대목에서 “개성에서 조선인형연구소를 운영할 때 개성박물관 관장이었던 고유섭 관장의 권유로 ‘우리 것을 공부하려거든 경주로 가라는 권고에 따라 경주로 오셨다. 그 영향이 지대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그리고 ‘박물관’이라는 단어가 생소했던 시절인 1954년 진홍섭 경주박물관 관장과 함께 국내에 처음으로 경주어린이박물관학교를 개설해 강의를 시작한다. 선생이 박물관계의 ‘소파 선생’으로 회자되고 있는 배경이다. 어린이박물관학교를 탄생시켜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이 땅의 기둥이 될 어린이들에게 우리문화에 대한 순수한 열정을 부여했다. 전통문화, 문화재, 음악 등 다채로운 프로그램을 경주지역 어린이들에게 제공해 지역 문화재에 대한 사랑과 지식을 확장시켰다. 이를 토대로 수많은 후학들이 박물관, 교육계, 지역 문화현장에서 두각을 나타내며 활동하고 있다. 선생의 열정이 고스란히 후학에 이어져 사회 곳곳에서 우리문화를 찾고 알리고 지키며 우리 문화의 길라잡이로 활약하고 있는 것이다. 또 1956년엔 뜻있는 몇 사람과 힘을 모아 신라문화동인회를 창립해 오늘에 이른다.
이외에도 선생은 풍속인형연구소 ‘고청사’를 설립해 각종 인형과 기념품을 생산해 경주를 찾는 관광객들에게 신라문화의 추억을 전하기도 했다. 또 경주 남산을 600여 차례 오르내리며 자료를 모아 정리하고 ‘경주남산고적순례’ 등을 출간해 세계문화유산으로서의 경주 남산을 국내외에 널리 알렸다. 경주남산보호를 위해 경주남산불적 알리기, 남산 문화재 연구 등 당시 미처 관심을 가지지 못했던 문화재 보존과 연구를 통해 대중에 알리기 위해 진력했다. 1999년, 고청정사에서 향년 83세로 갑작스레 타계하기까지 한시도 일손을 놓지 않았고 긴 밤을 지새웠다. 타계할 때까지 신라문화를 보존하고 가꾸는 일에 매진했으며 지금의 많은 문화운동의 근간을 이뤘다. 선생은 1980년 동아일보 해님어린이 보호상, 1982년 외솔상 실천부문상과 한국문화예술상(문화부문), 1989년 경주시문화상(문화부문), 1993년 금복문화예술상(특별상) 등을 수상했으며 2001년 대한민국 문화보국훈장 은장에 추서됐다.
-고청기념관 건립 추진은...당초 계획보다 축소된 규모로 내년 3월 착공예정 2002년 8월 한국자산관리공사 권리소유인 고청기념관건립 예정부지 중 일부 경매에서 고청기념사업회 준비위원회에서 입찰해 등기이전을 완료한다. 당시 고청기념사업회 회원들 모금액은 1311만원이었다. 같은 해 11월, 창립총회에서 기념관과 추모비 건립 등의 중요사업을 확정짓는다. 2006년 10월‘하늘도 내교실 땅도 내교실’이라는 기념비를 건립한다.
2009년 11월에는 고청 10주기 추모식을 개최하고 제1회 고청상 시상과 추모음악회, 학술발표 등을 개최했다. 한편, 선생의 타계 후 자택과 공방이 한때 경매로 넘어가는 등 난관에 직면했으나 선생의 업적과 사랑을 기억하는 많은 이들과 문화재청, 문화유산국민신탁의 도움으로 2010년 10년 만에 옛집을 되찾기도 했다. 고청 옛집을 문화유산국민신탁에서 매입해 고청고택을 국가유산으로 관리하게 된 것이다. 2011년 1월 문화유산국민신탁과 고청기념사업회 간 고청고택관리업무협약을 체결하고 고청사업회 소유 인왕동267-3(91평) 부지를 문화유산국민신탁에 기부한다.
2014년 고청사 보수공사(문화유산국민신탁,문화재돌봄사업단,고청기념사업회 공동)를 하고 고청기념관 설치제안서를 문화유산국민신탁과 경주시와 경북도에 제출한다. 2017년 고청사업회에서 고청기념관 기본설계계획안(1,2층으로 약 80평)을 마련해 문화유산국민신탁에 제출해 문화재청의 신축 승인을 얻는다. 2018년 시굴을 완료하고 5필지-439평에 대해 발굴을 결정한다. 지난해 2019년 발굴을 완료하고 고청기념관 건축 재승인(문화재청)이 된다. 그러나 올해 다시 축소 변경돼 재설계에 들어갔고 지난 9월경 설계(단층, 31평으로 축소)가 완료돼 문화유산국민신탁의 계획상에는 내년 2021년 3월 착공예정이라고 한다. -고청기념관...선생이 하고자했던 많은 이야기 담아 숭고한 뜻 잊지 않아야
고청기념관은 ‘고청 선생이 남기고 간 가장 큰 유산인 경주의 혼과 신라의 숨결을 이어간다’는 것을 기본적인 방향성으로 제시한다. 선생이 남긴 그림 한 폭, 원고지 한 장, 토우로 전해지는 신라인의 미소가 소중한 자료로 보존되고 박물관 교육을 비롯해 신라문화연구의 메카로 역할하기 위해선 향후 자택의 전문적인 수리와 함께 기념관 건립을 서둘러야한다.
그것이 선생의 위업에 대해 후학으로서 미약하지만 가장 기본적인 책무기 때문이다. 선생이 하고자했던 더욱 많은 이야기를 담아 숭고한 뜻을 잊지 않아야 하는 기념관은 어린이 박물관 산실인 고청 고택에 대해 역사적 가치와 이해를 하고 기념한다는 것이 기본이다. 국립경주박물관을 중심으로 경주 왕경유적과 경주 남산을 잇는 경주의 새로운 문화 관광 길잡이 역할을 하며 남산 지구를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시킬 수 있는 토대를 마련했던 역사문화교육을 전승하고 경주 문화를 이해하는 사랑방 교실을 운영할 계획이다. 갤러리, 문화사랑방 교실, 공방 등의 공간을 통해 고즈넉한 정취를 느끼며 선생의 저서 및 발간물을 통해 문화적 사고를 교류하는 커뮤니티 공간으로 기능하고 어린이 박물관학교의 산실이자 남산 연구의 발원지로 가꾼다는 것이다.
기존의 고택에서는 대청마루를 활용해 사랑방 교실을 운영하고 서재는 고청이 집필하던 모습을 재현한다. 제작실에는 토우, 토용, 소불을 제작, 재현한다. 31평 정도(당초 1차 설계시 80여 평에서 2차 설계시 60평으로, 다시 3차 설계엔 약 30평으로 규모 축소됨)의 신축건물에는 고청 및 제자들의 작품을 전시하는 갤러리와 문화상품을 판매하는 디자인실, 아트상품을 제작하는 작업실로 구성한다는 것이 기본적인 골격이다.
한 시민은 “신라의 미를 찾고 그것에 정당성과 가치를 부여해 우리 문화의 격을 한층 높인 선생은 필생토록 신라예술의 빼어난 아름다움을 올곧게 알린 선각자였다. 이제 역사의 뒤안길로 묻히기 시작한 선생의 문화재 보호활동과 어린이 교육사업의 성과를 밝히는 것은 우리 후학의 엄중한 책임이자 도리다. 영원한 신라인으로 불리기까지 경주에 쏟은 사랑과 노력은 제대로 평가돼야하고 그 정신은 계승해야 한다”라고 했다.
내년 착공을 시작으로 그 이후에도 지역민들의 지속적인 관심과 애정이 절실해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