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차가 무심히 간이역을 지나쳐버릴 때
앞장선 달이 지워진 입술 선 그리며 생긋
뒤돌아 보았지요
서해 갯벌 지나 서포리 소금밭 펼쳐지듯
차창 밖이 온통 하얗습니다
소금가마니 등에 업고
서요하의 칠흑밤 건너셨다는
호태왕의 일대기가 가마니째 부려지고
알알이 눈을 뜨며
물앵도꽃 피워무는 소금알들
심심해진 달은 또
大興安嶺 허리께를 더듬다가
한층 더 높은 곳까지 올라서서
청동손거울 하나 꺼내들고
제 모습을 비추이며 서 있었는데요
맑은 몸 다 드러내어 그녀,
천오백여 년쯤 말갈기 휘날리며
달려나온 사내 하나 품어 안고
서 있었는데요 이때 삐죽
호기심의 키를 디민 가로수 몇 채
잠 없는 몸 들썩이고
쨍! 하며 금이 가는 청동거울
마음 오래 걸어두지 못한 채 기차는
철커덕 철커덕 제 발굽소리 징을 박으며 천천히
다음 정거장을 건너가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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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시인들에게 드물게 보여지는 역사의식의 현장성을 읊은 시 한 편을 만난 기쁨을 여기서 만끽하고자 한다. 김은결시인은 경주변두리 안강출신 시인이다. 시인의 심덕이 그러하듯 신라여인같이 조용하고 안온하다.
그런 성격의 시인이 저 먼 만주땅 광개토대왕의 웅혼한 기상을 오늘에 되살려 노래하다니 새로운 개안(開眼)을 보는 듯 하다.
필자하고 지난 해 겨울 눈 덮인 만주기행을 감행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 긴 여정의 장거리 열차를 타고 눈 덮인 철로 위를 한없이 미끄러져 가기도 했다. 아마 그 광활한 만주벌판을 가로지르며 느낀 심사를 시로 보여주고 있는 것 같다.
필자가 시인이나 예술가적 삶이 위대하다고 느끼는 것은 바로 자신의 삶이나 느낌, 생각의 편린들을 마음그릇에 담을 수 있다는 것, 마음그릇에 담은 것을 이 세상에 내보인거나 남기고 떠나도 그 사람의 정신사는 남아 우리들에게 오래 전달된다는 행위의 삶이라 여겨지기 때문이다.
이런 말이 있지 않은가. 살찐 돼지 보다 삐쩍마른 소크라테스가 낫다고. 영혼의 깊이에서 퍼올린게 문학작품이며 모든 예술작품이고 보면,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는 말이 조금도 틀리지 않을 것으로 안다.
이 시에서도 보면, 열차에 실려가고 있는 시인의 심사(心思)가 동영상을 보듯 투명하게 다가온다. 달은 무한천공에 떠 있고 창밖풍경은 눈이 덮혀서 하얀데 그 표현은 절정을 이룬다.
바로, ‘심심해진 달은 또 / 大興安嶺 허리께를 더듬다가 / 한층 더 높은 곳까지 올라서서 / 청동손거울 하나 꺼내들고 / 제 모습을 비추이며 서 있었’다는 기막힌 표현이 그것이다. 과 의 비유도 그러하거니와 ‘서 있었’다고 의인화 하고 있으니 말이다.
이 시의 생동감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맑은 몸 다 드러’낸 그녀, 즉 달에게 ‘천 오백 여년쯤 말갈기 휘날리며 / 달려나온 사내 하나 품어 안고 / 서 있었’다는 대목에서 시인의 상상력은 더욱 고조되고 있다. 바로 고구려의 땅에서 얻어낼 수 있는 풍정(風情)이리라.
오래 머물지 않고 떠나는 열차를 ‘마음 오래 걸어두지 못한 채’, ‘제 발굽소리 징을 박으며 천천히 / 다음 정거장을 건너가고 있었’다는 행간속에서는, 잡을 수 없는 시간의 흐름속에 시인 자신 뿐만 아니라 모든 물상과 인간사가 흘러가고 있다는 흐름을 넌지시 제시해 주기도 한다.
그렇다면,시인이 말하고 있는 은 어디 있는가. 광개토대왕이 북벌정벌에 나섰을 때 러시아땅과의 경계를 이루고 있는 산맥이 대흥안령이다. 그 변두리쯤 되는 만주땅 벌판임을 인식하고서 달이 ‘大興安嶺 허리께를 더듬’고 있다는 공간설정을 하지 않았을까. 이런 경우를 보더라도 역사의식이 내면에 깔리지 않고는 이렇게 절실하면서 풍요로운 한 순간의 기상을 노래할 수 있었겠는가 말이다.
시인들이여,이처럼 확실한 시를 쓸 일이다. 가만히 앉아서 마음속에 그려지는 동그라미만 가지고 시를 쓰는 시대는 아니잖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