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명 속에서
노숙자처럼 차가운 시멘트 바닥에
하나는 눕고 하나는 앉아
문 열리길 기다린다
새벽마다 이어져 온
오랜 만남이
이제는 익숙하게 손 맞잡고
서로의 체온으로 서로를 녹이며
문이 열리면
외출에서 돌아온 다정한 부부처럼
어깨 나란히 하고
집 안으로 천천히 걸어 들어가고 싶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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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일상을 다루고 있으면서 예사롭지 않게 번쩍이는 직관력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사물에 대한 인식이 시를 쓰는데 있어서 필수덕목이라면, 이 시는 우리의 일상을 한층 높은 품격으로 올려놓는데 조금도 손색이 없는 작품으로 읽힌다.
일찍이 미당은 박재삼시인을 문단에 내어놓고 ‘변소에 가서도 시를 생각하라!’고 했는가 하면, 황동규시인은 ‘시는 구체적일 때 진실과 만난다’고 했다. 끊임없이 열심히 해 나가라는 부단한 노력 그것에 진정성이 있다는 말일 것이며, 확실한 인식에서 세계관을 열어 보일 때 생명력이 있음을 의미하는게 아니겠는가.
이른 새벽에 누워 있는 신문과 앉아있는 우유의 풍경이 멋진 대조를 이루면서 한편으론 서로 상응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데서 예사로 보아넘기지 않는 시인의 직관력이 돋보인다. 그 표정들을 ‘노숙자처럼 차가운 시멘트 바닥에 / 하나는 눕고 하나는 앉아’있다는 의인법으로 아주 절묘하게 표현하고 있다.
그것은 또 ‘새벽마다 이어져 온/ 오랜 만남’의 습관처럼 되어 ‘익숙하게 손 맞잡고/ 서로의 체온으로 서로를 녹이며’ 일상화 되어버린 그것들을 친화적인 감수성으로 빚어내고 있다. 또한 그들의 기다림은 인간과 같이 집 안으로 들어가는 것으로써, 그게 그들의 바램이며 존재의 역할로 시인은 인식하고 있는데 그것도 ‘외출에서 돌아온 다정한 부부처럼 / 어깨 나란히 하고’서 말이다. 아주 기발한 착상이 매력적으로 읽힐 뿐만아니라 시적 품격을 고조시키고 있다.
예사로운 듯 보이는 일상사가 예사롭지 않게 울림을 던져주고 있는 것은, 작품을 구가하는 능력 또한 남달리 돋보이는 데서 오는 시인의 개성적인 목소리 다름아닌 것이다.
먼저 소개한 바 있는 신인으로서 가장 탁월한 표현능력과 기발한 착상으로 씌어졌다고 견해를 밝힌 임수련씨의 시 못지않은 탁월한 언어조탁의 백미를 이루고 있는 정남향씨의 작품에 주목하는 것은, 요즘 신진시인들의 보편적 정서 이상의 능력을 발휘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우선 사물의 존재를 깊이있게 바라보는 안목이 신선해서 좋고, 긴장을 풀지않고 다스려나가는 역량이 탄탄해서 믿음직하다. 현대시의 새로운 가능성을 엿보게 하는 작품임을 밝혀 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