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아리를 닦는다
옛집 뒤주 옆에서
아파트 볕바른 곳에 옮겨 두고
어머니처럼
할머니처럼
마음이 아프거나
가슴이 답답할 때면
항아리를 닦는다
잿물로 옷을 입힌
작은 항아리
언제나 봄볕처럼 따뜻하고
가을처럼 넉넉한
항아리를 닦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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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옛 정서가 살아 숨쉬는 듯하다. 잊혀져 가는 것에 대한 훈훈한 정감이 따뜻하게 울려온다. 시인은 ‘어머니처럼 할머니처럼’ 항아리를 닦는다고 했다. 그것도 ‘옛집 뒤주 옆에서 / 아파트 볕바른 곳에 옮겨 두고’서 말이다. ‘잿물로 옷을 입힌 / 작은 항아리’이다.
이 시에서 가장 심금에 와 닿는 구절은 ‘ 봄볕처럼 따뜻하고 / 가을처럼 넉넉한’ 항아리 닦는 일이다. 항아리는 무엇인가. 우리네 삶과 생활정서가 담겨져 있는 따뜻하고 넉넉한 마음이다.
이런 고유정서를 쉬이 찾아볼 수 없는 요즘의 사금파리 같은 세태에도 불구하고 시인에게는, 아니 우리들에게는 익숙하면서 낯선 존재로 여겨지는 것은 왜일까.
새로운 것만이, 편리한 것만이 판치는 세상에 시인은 말한다. ‘마음이 아프거나 / 가슴이 답답할 때면’ 항아리를 닦는 습성이 현대인들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질까. 혈통마저 단절되어가고 있는 모난 세상에 둥근 항아리를 따스한 피의 순환처럼 여기는 시인은 이토록 우리의 것을 붙들고 있는 것이다.
그것이 우리의 참된 마음 참된 가치관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