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나는 발가벗긴 채
쓰레기 더미 속에 있다
질식한 오물냄새, 추적추적 비 내리고
내 억장 무너져 내린다
간이휴게소나 편의점, 그 막다른 골목길에서
후루룩 쩝쩝 국수나 건져내는 엑스트라
내 배역 짧게 끝나버리고
휘익 단말마 내지르며 지그재그로
추락하여 쌓인 내 허연 뼈들
절규하며 깔아뭉개진
아아, 이 악몽을 떨쳐내고 다시
시작할 수만 있다면
시작할 수만 있다면
꽃 피는 봄날 무성한 숲으로 일어서서
새들의 휘파람소리 휘리릭
불러들이고 싶은 것이다
------------
필자가 경주땅에 직접적으로 인연이 닿아 시혼에 불타는 많은 사람들의 시작품을 매주 20편 정도를 1년 가까이 100편 넘게 보아왔는데 가장 탄복할 정도로 빼어난 시를 말하라면 나는 서슴지 않고 임수련씨의 을 말할 수 있는 것은 왜일까?
단정한 용모와 수련(水蓮)같이 맑고 깨끗한 시인의 닦은 품위때문일까?
요즈음 범람하는 신인들 시의 물결속에 나는 솔직히 이만한 시를 잘 만날 수 없었던 게 그 요인의 하나일 것이다. 꼭히 신인들의 시에만 극한시킬 성질의 것도 아니다. 시인이 되어서도 10년 넘고 20년이 넘으면 뭣하겠는가. 잘 빚은 도자기처럼 유려해야 진정한 예술작품이라 할 수 있기 때문이리라.
내 개인적 견해일 수도 있겠으나, 우리가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흔히 접하는 일상의 별것 아닌 듯 보이는 ‘나무젓가락’에서, 시인은 놀라운 직관, 그리고 능란한 문장력으로 압도하고 있으니까 말이다.
예를 들면, ‘후루룩 쩝쩝 국수나 건져내는 엑스트라’ 이런 표현 앞에 누가 감히 길을 막겠는가. 시를 읽고 해설하는 즐거움에도 탄성이라는게 있듯이, 아마 시인으로 문학평론가로 대실력가인 경주대 손진은교수도 이 시에서만큼은 긍정과 찬사를 아끼지 않을 줄로 안다. 이 시 ‘나무젓가락’에서 표현하는 의도가 무엇이겠는가. 일회용이 무성한 시대의 중심에 우리는 살아가고 있으며, 그런 허무의식이 쓰레기오염으로 지구를 망치고 있는 판국이기도 하다.
또한, 시인의 상상력은 단순한 현실반영이라는 이것에만 국한시키지 않고 있다. 비록 일회용으로 버려졌지만 그(나무젓가락)도 ‘악몽을 떨쳐내고 다시/시작할 수만 있다면’이라는 강한 생명력의 욕구, 더 찰진 말로 하자면 원시에로의 회귀를 꿈꾸는 본능이 이 시의 큰 공간으로 자리잡고 있다.
바로,’꽃 피는 봄날 무성한 숲으로 일어서서/ 새들의 휘파람소리 휘리릭 /불러들이고 싶은’ 부활의지에 가득 차 있는 것이다. 원래 나무젓가락은 숲의 살아있는 나무에서 태생되어 나온 것이니까.
하잘것 없는, 한번 버려지면 그뿐인 ‘나무젓가락’을 통해 인간세상의 비정(非情)까지 함께 껴안고 있는 안목은 더욱 이 시를 중후하게 하고 있다.
필자를 깜짝 놀라게 한 작품이었음을, 그리고 나는 근간에 신진시인의 이만한 시를 잘 못만난 터에 만난 쾌거라고 감히 말할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