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월중선 선생의 예술혼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가야금병창 가사집이 출간돼 국악계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 경북무형문화재 제19호 장월중선류 가야금병창 전수조교인 월은 임종복 선생이 최근 ‘장월중선류 가야금병창 가사집’을 펴냈다. 가야금병창은 단가나 판소리 중의 한 대목 또는 민요를 창자 자신이 직접 가야금으로 반주하면서 부르는 전통음악의 한 갈래다.
장월중선류 가야금병창 가사집은 △장월중선 창작 가야금병창 △장월중선류 전승 민요 가야금병창 △장월중선류 단가 가야금병창 △장월중선류 판소리 가야금병창 △초보자를 위한 팔도민요 및 신민요 가야금병창 등으로 구성됐다.
임종복 선생은 이번 가사집에서 기존의 장월중선류 가야금병창의 곡목들을 다듬어 가사를 명확히 수록하고, 판소리를 가야금 병창으로 재창조했던 장월중선 선생의 유업을 이어 기존의 전승곡과 새롭게 편곡한 곡들을 추가했다.
새롭게 편곡해 게재한 곡은 총 6곡으로 심청가 중 ‘심봉사 곽씨부인 묻고 자탄하는 대목-주과포혜’ ‘심청이 물에 빠진 후 선인들이 탄식하는 대목-행화는’ ‘뺑덕어멈 심술부리는 대목 - 뺑덕어멈 심술타령’ ‘천자께서 꽃봉 속의 심청을 만나는 대목 - 일일은 천자님이’ 등 4곡과 장월중선 선생이 생전에 즐겨 부르던 판소리 단가 ‘인생백년’과 ‘사철가’에 가야금 반주를 입혀 가야금병창으로 편곡한 2곡이다.
임종복 선생은 아버지로 인해 자연스럽게 국악에 입문했다. 고악기 수집이 취미였던 그녀의 아버지는 ‘한국인이라면 반드시 우리 음악을 알아야 한다’며 자녀들에게 국악을 접하게 했다. 먼저 국악을 시작한 언니들의 가야금 소리와 판소리를 들으며 자란 그녀는 1973년 광주시립국악원에서 당대 유명한 선생에게 판소리와 가야금, 춤 등 국악을 본격적으로 배우기 시작했다. 그러다 1983년 결혼 후 남편의 직장 관계로 광주에서 포항으로 거주지를 옮기게 됐고, 경주에서 활동하고 있던 장월중선 선생과의 인연을 맺게 된 것이다. 장월중선 선생에게 가야금병창과 가야금산조를 사사 하며 선생의 깊고 진한 예술세계를 본받고자 노력했던 그녀는 1994년 경북무형문화재 제19호 전수 장학생을 거쳐 1999년 전수조교로 선정됐다.
장월중선 선생 타계 후에는 선생의 장녀이자 모친으로부터 박동실제 판소리 심청가를 사사받은 정순임 명창에게 박동실제 판소리 심청가를 사사했다. 이후 현재 장월중선류 가야금병창 전승목록에 없는 눈대목을 선정해 박동실제 판소리 심청가 선율에 가야금반주를 입혀 가야금병창으로 편곡했고 기존 전승곡을 더해 ‘심청가 눈 대목 완창’을 완성했고, 연구 자료로 남기기 위해 지난해 음반 장월중선류 가야금병창 ‘심청’을 제작·발매한 바 있다.
김성혜 경상북도 문화재 전문위원은 “전통을 계승하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지만, 계승을 넘어 창작을 시도하는 것은 미래 지향적인 사고를 지닌 예인이 아니면 실행하기 어려운 일”이라면서 임종복 선생의 음반 작업을 의미있고 가치있는 작업으로 평가했다.
앞으로 다양한 공연과 연구를 통해 장월중선류 가야금병창 심청가가 발전하고 전승되도록 노력하겠다는 임종복 선생은 장월중선류 가야금병창이 길이 전승됨으로 많은 이들이 선생의 예술세계를 이해하는 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길 바랐다.
“장월중선 선생님의 소리는 단아하셨고, 소리 기교에는 기품이 있었어요. 공부가 어렵다고 할 때마다 선생님은 ‘한번 해서 안 되면 열 번하고 열 번해서 안 되면 백 번하고, 천 번하고 그러다 보면 될 것’이라는 말씀으로 늘 격려해주셨습니다. 앞으로 장월중선 선생님께서 생전에 해왔던 음악적 작업을 이어가 장월중선류 가야금병창의 레퍼토리를 넓히고 계승·발전에 이바지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