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이지 않은 것들 모두 하나로 보이네 어깨 닿은 나무들 그러하고 제멋대로 앉은 돌멩이들 그러하고 풀이파리 흔들어 대는 바람 그러하네 숨가쁜 골짜기 중간쯤 혼자면서 혼자이지 않은 사람들 그러하네 물은 물대로 길은 길대로 저의 길 찾아 몸 낮추던 것 몸 섞어져 이미 혼자가 아니듯 순하게 살고 싶어 하네 -------------- 두보가 말하기를 세상이 깜짝 놀랄만한 시를 쓰겠다고 했다. 시인의 사명을 잘 말해주는 한 대목으로 새겨들을 만하다. 어느 문학평론가는 ‘나쁜 시가 있습니까?’라는 질문에”있죠. 자격도 없으면서 시인축에 끼이고 싶은 과욕이 빚은 시입니다. 설명하는 시입니다.’ 그리고 ‘시인은 평생 면허가 아니고 좋은 시를 선보일 때만 시인입니다. 시 좀 적게 썼으면 좋겠습니다. 자기자신에게 까다로워지라는 당부 말씀입니다.’ 라 했는데 그 모두가 일맥상통하는 말이다. 시를 좀 적게 써라는 말은 액면 그대로 부피를 수량을 말함이 아니다. 두보가 말한 것처럼 ‘세상이 깜짝 놀랄만한 시’를 쓰기 위한 보법인지도 모른다. 시인이 걸어가는 길은 칠불암이다. 칠불암이 아니면 어떤가. 칠불암이기에 더 의미있게 다가온다 해도 좋을 것이다. 이 시가 만만찮은 것은 대상에 대한 놀랄만한 깊은 통찰력이다. 이만한 시가 나오려면 적어도 김치나 식혜, 젓갈처럼 곰삭아야 한다. 눈앞에 펼쳐보이는 세계, 즉 세상의 모든 것이 될 수 있다. 나무, 돌멩이, 바람, 사람, 물, 길 등의 이미지표현에 있어서도 ‘어깨 닿은 나무들’, ‘제멋대로 앉은 돌멩이들’, ‘풀이파리 흔들어 대는 바람’, ‘숨가쁜 골짜기’, ‘혼자면서 혼자이지 않은 사람들’, 구구절절 뛰어난 직관력과 순발력이 돋보인다. 그 모두를 합쳐 ‘순하게 살고 싶어’한다고 귀결 짓는다. 아무렇게나 생각을 널어놓는다고 해서 시가 아니듯, 시가 시이게 하는 중심에 이 시가 놓여있다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엉터리시가 있다면 그건 삶이 산문적인 것과 다름 아닐 것이다. 앞에서 말한 그 비평가는 또 ‘우리의 삶은 대개 산문적인 삶이고 간접적인 삶’이라 못박았다. ‘아무나 글을 쓰고, 아무나 책을 낼 수 있는 세상이지만 시인은 아무나 되는 게 아니’듯 아무렇게나 시를 써서는 안 된다는 충고도 덧붙여 본다. ‘아무나 할 수 없는 확실한 중심이 있는 시, 그리고 여백을 가진 시’를 참시라 보는 견해다. 아무나 글을 쓰고, 아무나 책을 낼 수 있는 세상이 큰일 아닌가. 이것도 하나의 공해인 것을 왜 모를까. 아무나 글을 쓰지 말아라는 뜻이 아닌, 제대로 훈련된 보법을 터득해 나가는 글쓰기를 말함이며 책 펴내는 것 역시 심사숙고히 해서 알량한 웃음 흘리기처럼 되어서야 바람에 고무풍선 날아가는 꼴이니까 하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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