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들어 귀가 잘 안 들리는 것 같다. 마스크를 쓴 상대의 입모양을 볼 수 없으니 내 인지력도 크게 떨어지는 모양이다. 평소에도 말귀가 좀 어둡다고 와이프가 핀잔을 주는데, 요즘처럼 죄다 마스크를 쓴 경우는 더욱 상대의 말을 알아들을 수가 없다.
상대방이 말을 할 때 자연스레 그 얼굴 방향으로 집중하는 이유는 우리 인식 메커니즘이 공감각적(共感覺的)이기 때문이다. 가령 눈은 활짝 웃고 있어도 입꼬리가 움직이지 않으면 ‘아하, 저 사람은 일부러 괜찮은 척하는구나’를 단박에 알 수 있다.
누구는 얼굴을 ‘얼의 꼴’이라고 했다. 팔이나 다리는 굵고 얇은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다 똑같다. 반면에 얼굴은 어떤가? 여태 한 사람도 똑같은 얼굴을 못 봤다. 얼이나 혼(魂)은 사람 수만큼 많기 때문이다. 그러니 당연히 상대방과의 교류는 서로 얼굴을 확인하는 데서 시작되는 것이다.
그만큼 얼굴은 개개인의 다양한 감정을 담고 있다. 눈이나 코(놀라운 사실을 들었을 때 눈뿐 아니라 콧구멍이 커진다), 입은 물론이고 심지어 귀도 감정을 충분히 전하고 있다. 학창 시절 짝사랑하는 상대가 지나가면 괜히 귀가 발그스레해지는 경험은 누구나 있다.
핸드폰이나 SNS로 소통하는 요즘은 이모티콘(emoticon:감정(emotion)+조각(icon)의 합성어)의 도움을 받아 감정을 실시간 주고받는다. 예상 못한 충격적인 뉴스를 듣고 놀랐을 때, 왠지 혼자 있고 싶을 때 보내는 이모티콘은 백 마디 말보다 더 효과적일 수 있다.
우리가 자주 사용하는 이모티콘은 서양인들의 그것과 제법 다르다. 언어는 각 문화권마다 문화 속에 담긴 지리나 사회적 배경, 무엇보다 사고방식의 차이에 따라 다양한 차이가 나기 때문이다. 이모티콘 역시 언어의 일종이니까 당연히 다를 수밖에 없다.
우리가 속한 동양 문화권에서는 ‘나’보다 ‘우리’라는 관계가 더 중요하다. 서양 문화권에서는 반대로 개인의 개성과 보다 자유로운 의사소통을 중요시한다. 영국 글래스고 대학의 레이철 잭(Jack) 박사 연구진이 동·서양인 15명을 뽑아 컴퓨터 그래픽으로 만든 다양한 표정을 보여주면서 어떤 감정을 표현한 것인지 물어봤더니, 동양인은 주로 눈을 보고 상대의 감정을 판단하고 서양인은 주로 입을 보고 감정을 읽어내더란다.
그래서일까, 이모티콘도 국적(國籍)이 있다. 가령 우리는 ^^, ㅜㅜ 등 눈 모양으로 감정을 표현하는 반면, 서양은 :)나 :(처럼 눈은 가만있고 입 모양으로 표현하는 식이다. 하기야 우리에겐 상대적으로 중요한 눈을 점 두 개로 표현하는 것도 재미있다. 우리에게 익숙한 헬로 키티는 눈과 코는 있는데 입이 없다는 사실을 서양인들은 어떻게 받아들일지 궁금하다.
반면, 지금 서구 사회에서는 가뜩이나 마스크 착용에 부정적인데 상대의 입을 볼 수 없어 대화를 하거나 감정을 읽는데 더욱 힘이 든다고 한다. 월스트리트 저널에서는 코로나로 마스크 착용이 일상화되자 입 대신 눈으로 웃는 ‘스마이즈(smize:미소(smile)+응시(gaze)의 합성어)’를 소개하고 있다. 입 대신 눈으로 상대의 감정을 읽자는 취지다.
눈으로 고객의 감정이나 요구를 재깍 들어줘야 하는 호텔이나 식당 같은 서비스 업종에서 스마이즈는 매우 효과적이다. 과할 정도로 입 꼬리를 귀 밑까지 당긴 환영 인사에 익숙한 이들이 ‘눈웃음’을 연습 중이라니, 코로나 영향이 안 미치는 데가 없다. 입꼬리 근육은 아무런 감정 없이도 가짜 미소를 지을 수 있지만, 눈 주위 근육은 행복한 감정이나 친절한 마음이 있어야만 움직여진다니 많은 노력이 요구된다.
눈이 되었건 입이 되었건 간에 하루빨리 얼굴 보며 이야기할 날이 오길 바란다. 평범한 것이 소중하다는 사실은 꼭 일이 터진 다음에서야 알게 된다. 목이든 팔이든 삐고 다쳐봐야 묵묵히 제 역할을 해왔음에 놀라게 된다. 마스크가, 비누로 손 씻기가 그렇게 중요하다는 걸 지금처럼 난리가 나서야 알게 되었으니 감사할 지경이다. 하지만 이제 충분히, 아니 넘치게 알았으니 이젠 일상으로 돌아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