캔버스 위에 부드러운 흙을 한 겹 한 겹 고착시키며 시간을 켜켜이 쌓아 올린다. 작가는 도착지로 가는 길을 찾기 위해 땅을 가르고 물길을 내고 다리를 이으며 세상을 만들어 간다. 내밀한 지난밤들의 비밀을 무겁게 지켜주었던 든든한 수호신들과 활짝 핀 꽃들이 그녀의 안부를 묻는다. 한낱 백일몽이라 하더라도 그들이 있어 힘이 되고 위로가 된다. 최자은 작가의 개인전 ‘Hi There’이 대구 대백프라자 갤러리 A관에서 오는 13일부터 18일까지 펼쳐진다. 이번 전시에서 작가는 자신을 비롯해 현실의 무게에 짓눌리고 불확실한 미래에 불안해하는 우리들에게 건네는 안부의 메시지를 담았다. “동물의 수를 세며 잠들던 어린 시절, 그 많은 밤을 지켜주었던 수호신들은 아직도 저의 꿈속을 유유히 걸어 다닙니다. 길을 헤매고 지쳐있는 저에게 그들은 늘 무언가를 알려주는 듯하지만, 우둔하게 저는 알아채지 못하고 방황만 거듭하죠” 최자은 작가의 작품 ‘something or nothing’에 대한 설명이다. 이번 전시는 5년 전 ‘위로’를 주제로 한 작가의 첫 개인전의 연장선이다. “우리에게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오늘을 살아내야 하는 나름의 이유가 있습니다. 게으름 피우며 살지는 않았지만, 현실은 늘 팍팍하죠. 너무 갑자기 자라서 잃어버린 것이 무엇인지조차 까마득한 우리를 위로하고 싶은 것이 한결같은 저의 바람입니다” 그녀는 화폭에 지도와 노선도를 붙이고, 표식을 채워 넣는다. 비록 성장과 발전에 관대하지 않는 오늘날 현실 속에 살아가고 있지만 적어도 캔버스 속 자신이 만든 세상에서는 길을 잃지 않길 바라는 작가. 흙을 발라 긁어낸 생채기와 중첩해 바른 채색은 계절이 쌓이면서 더욱더 단단해지고 있다. 시간이 지나면서 저절로 아무는 상처와 같이 말이다. “어른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누구나 마음속에는 어린아이 시절의 여린 속살이 있음을 압니다. 그것을 인정하고 따뜻하게 쓰다듬어 줄 수 있을 때 비로소 걸어 나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작가는 이번 전시가 자신과 비슷한 상황에 부닥친 우리들을 보듬어 줄 수 있고, 위로해 줄 수 있는 전시가 되길 바랐다. 서울대 철학과 박현정 박사는 “최자은 작가의 작품은 위장이나 도피, 거짓 전망과 무책임한 약속이 아닌, 스스로를 지켜 준 내밀한 자신, 모든 과거와 모든 미래를 열어가는 자신을 상기시켜준다”면서 “외재화 된 내면 앞에 선 자가 길러내는 자기 긍정의 순간을 담고 있다”고 평했다. 푸른 하늘과 하얀 구름, 발길 닿는 곳곳마다 가을 정취가 묻어나는 이 계절과 너무나도 잘 어울리는 전시 ‘Hi There’. 작가는 소소한 일상과 그 속에서의 개인적인 감정을 놓치지 않는 세밀함으로 대중들과 공감하고, 소통하는 작가이고 싶다고 말한다. 최자은 작가는 1978년 대구 출신으로 대구에서 초중고를 나왔다. 동국대 미술학과를 졸업했으며, 원광대학교 회화문화재 보존 수복학과를 수료했다. 현재 한국미술협회, 경주 수채화 협회 회원으로 개인전 2회와 초대전, 단체전, 국내외 교류전 및 아트페어 등에 참여하며 활발한 작품 활동을 이어나가고 있다. 대구 전시에 이어 오는 20일부터 31일까지는 경주 렘트갤러리에서 진행된다. 이번 전시 ‘Hi There’은 2020년 (재)경주문화재단 지역예술인 지원사업(시각예술분야) 전시지원금의 일환으로 사업비 일부를 지원받아 진행된다. -전시문의는 010-2540-8535.
주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