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구초심(首丘初心)’이란 여우가 죽을 때 머리를 제가 살던 굴을 향해 돌린다는 말로, 죽음을 앞두고 고향을 그리워하는 마음을 비유한 한자성어다. 즉 근본(根本)을 잊지 않음, 죽어서라도 고향땅에 묻히고 싶어하는 마음을 뜻한다.
추석이 다가오고 있다. 추석(秋夕)은 음력 8월 15일에 치르는 명절로 설날과 더불어 한국인에게 가장 중요한 연중 최대 명절로 중추(仲秋), 중추절(仲秋節), 가배일(嘉俳日), 팔월 대보름 한가위 등으로도 부른다. 어쨌거나 한 해 중 가장 넉넉한 때가 추석이고 그런 만큼 고향을 생각하는 마음도 각별해질 수밖에 없다. 풍성한 마음으로 찾는 고향에서 한 해 동안 고생한 보람을 찾는다.
이런 벅찬 마음과 달리 올해는 코로나19로 인해 전례 없는 추석을 맞을 것 같다. 심지어 코로나19의 확산을 막기 위해 이번 추석은 고향으로 가지 말자는 캠페인까지 벌어지는 상항이다. 성묘도 지역 대행업체를 이용하라는 권고를 내리고 있다. 자영업자들이 힘들어 하고 시장은 활기를 잃어 가고 있다. 추석 전 사회적 거리두기를 2단계로 완화했다지만 여전히 경계해야 한다. 어김없이 고향을 찾았던 사람으로서는 이런 말 자체로 가슴이 먹먹해진다.
필자는 지역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서울로 와 대학원 석·박사 과정을 마쳤고 서울에서 직장잡고 결혼하고 아이들 키운 다음 우여곡절을 겪었지만 이제 어느 정도 안정된 생활을 하며 은퇴를 몇 년 앞두고 있다. 그래서인지 이제는 슬슬 은퇴 후의 삶을 고민하며 은퇴 후 고향 경주에로 돌아가 살면 어떨까 가늠해보기도 한다. 필자 또래 수도권 친구들이나 선후배들 역시 마찬가지다.
이런 우리 자신을 향해 고향 경주로 돌아갈 것이냐고 물어보면 십중팔구는 현재 살고 있는 곳에서 살겠다고 대답한다. 이유는 다양하지만 주로 부인이 시골생활을 싫어한다는 것과 본인이 고향 친구들과 정치적 성향이 맞지 않아 막상 돌아가면 마음고생이 심할 것이라는 것이 대부분이다. 이런 판단의 근거에는 다분히 SNS의 보급이 한 몫 했다.
예전과 달리 SNS의 발달은 경주와 서울간 혹은 다른 도시들과의 격차를 완전히 허물어버렸다. 나만해도 고향친구들과 매일 카카오톡이나 페이스북을 통해 서로의 안부를 물으며 정서적으로 매우 가까워졌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바로 이 SNS 때문에 친구들 혹은 친인척들 간 마음의 골도 깊어지고 멀어지기까지 한다. 그 중요한 이유는 정치적 견해의 극명한 차이 때문이다.
필자는 가급적 정치적인 이야기를 개인 페북이나 밴드에 올리지 않는 편이다. 마지못해 해야 될 경우에는 최대한 모나지 않게 빙 둘러 말하는 것이 습관이 되었다. 필자가 가입된 고등학교 동기밴드에는 정치이야기와 종교이야기를 올리는 동기는 바로 강제퇴장을 시킨다는 방침을 정했고 서로 사상과 양심의 자유 이전에 배려와 존중, 상호 화목을 더 지켜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미 우리는 이전 대통령의 탄핵과 여러 정치적인 사건을 겪으며 정치적 갈등을 겪었다. 이번 코로나19 때도 특정 종교인들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서로 다른 견해차로 깊은 골이 생겼다. 그것이 고향친구들, 지인들과도 모두 연결되어 있음은 말할 필요도 없다.
이렇다 보니 고향 가서 살겠다는 사람은 점점 더 줄어든다. 고향 인구증가나 지역경제 활성화 같은 거창한 주제를 가지고 말하자면 경주가 가장 유효한 귀향, 귀촌 대상을 이런 문제로 잃고 있는 셈이다. 심정적으로 가까운 출향인들을 고향에 다시 불러서 내가 태어나고 자란 곳에서 여생을 마무리하고 풍요로운 노년의 삶을 살고 있도록 만들 지혜는 없을까?
코로나19는 사회적 거리두기 운동을 통해서 현재에 머물러서 사색하고 사유하게 해주지만 고향이나 친구에 대해서도 거리를 두게 한다. 그런 반면 코로나19는 참고 인내해야 한다는 것도 동시에 알려주고 있다. 민주주의는 참으로 지난하고 어려운 과정인 것 같다. 억지 주장도 힘겹지만 들어줘야 하고 나와 다름을 인정해야 한다. 다름이 틀림이 아니고, 절대선이란 것은 현실세계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학습을 해야 한다. 좀 더 넉넉하게 지혜로워야 한다. 대한민국은 모든 것을 녹여내고 융합하면서 성장해 왔다. 고향의 넉넉한 인심으로 출향인들의 많은 부분을 수용하고 포용해야 더 나은 세상으로 나아갈 수 있다. 그것은 출향인에게도 마찬가지다. 고향을 개선의 대상으로 여기지 말고 이해하고 품어야 할 대상으로 여겨야 한다.
출향인은 어릴 적 추석이 그립다. 이젠 그렇게 되기 어렵다는 것을 알기에 더욱 그립다. 더더욱 코로나19 시대의 추석이라 더 그렇다.